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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May 09. 2024

악몽

살아 있다면 잊자!




잠에서 깼다. 그러나 여전히 침대에 등을 붙인 채, 병든 들개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다.      


거실에 불이 켜졌음을 느꼈다. 이내 싱크대 그릇 달그락대는 소리도 들리지만, 바위에 짓눌린 듯한 몸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이 느낌, 경험이 있다. 잠과 죽음의 경계! 지옥으로 통하는 뚫린 구멍에 빠져드는 느낌!


공포가 엄습했다. 깨어나야 했다. 그러나 도무지 눈을 뜰 수 없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가슴에 바늘구멍조차 남김없이 숨구멍을 막아버린다.      


눈두덩이는 아교풀로 붙여 놓은 듯 틈이 벌어지지 않는다. 발버둥을 치려고 했지만, 기침은커녕 숨소리조차 낼 수 없다. 몸은 더 깊게 빠져든다. 밤인지 새벽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회색빛 어둠, 인간의 흔적조차 사라진 텅 비어버린 재래시장,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달린다. 앞을 가로막는 정채불명의 쓰레기 더미, 주위를 돌아봐도 넓은 도로에 아무도 없다. 고요가 소름이 된다.      


지옥 같은 공포와 어둠, 벗어나기 위해 달리는 나, 그러다 어디론가 빨려드는 듯한 몸, 반갑게도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달려온다. 버스를 타야 이곳을 벗어날 것만 같다. 버스가 섰다. 버스 속은 이미 만원이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인간들에 떠밀려 떨어진다. 검은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는 멀어져갔다. 돌아서자 이내 땅바닥이 질척거리며 발을 빨아들인다. 달렸다. 숨이 차오른다.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생각뿐이다.      




악몽을 꾸고 있다고 경험으로 알았다. 재차 꿈이라고 단정 내린 후 정신을 차리려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때마침 집을 나서려던 아내가 들어와 ‘아직도 자요?’ 하며 손을 잡는다. 아내 목소리가 반갑기 짝이 없다. 평소처럼 로션을 바른 손이 부드럽다. 매끈한 감촉은 물론, 미미하게나마 온기까지 전해왔다. 어제까지 기를 세운 채 서로를 향해 팽팽한 시위를 아낌없이 날리던 기억, 그래선지 더 반가웠다. 화해까지 할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을까.     


잠과 죽음의 중간,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서 허덕이는 나를 살리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다가온 그녀가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뜰 수가 없다. 아내가 손을 놓으려 했다. 내가 그랬다.


“눈을 뜰 수 없어, 손 놓지 마요.”


그렇지만 눈은 여전히 강력 접착제로 붙인 듯하였다. 재차 잠이 달려든다. 잠들지 않으려 버틴다. 안간힘으로 버텨야 했다. 아내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주어 잡았다. 아내도 심각성을 느꼈던 것인지 함께 힘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잠은 물러서지 않는다. 다시 잠에 빠진다면 영영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점차 이러다 정말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야말로 잠과의 사투다.     


살아야 했다.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눈 뒤에서 끌어당기는 잠은 놓아주지 않는다. 팔을 들어 엄지와 검지로 눈을 벌렸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희미하게 아른댄다. 순간 재차 눈을 꼭 감고 다시 힘주어 눈을 떴다. 천장에 둥근 등이 보인다. 아…, 살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뜰 수 없을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켰다. 창을 통해 본 세상은 더없이 밝다. 태양이 편견 없이 골고루 세상을 비춰주고 있음을 알았다.    

  

몸은 지금까지 애써 버티던 에너지가 빠져나간 듯 허물어질 것 같았다. 재차 잠에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목을 뒤로 젖혔다. 방금까지만 해도 곁에 있던 아내가 없다. 손을 잡아준 것도 꿈이었나? 아내가 날 살리려고 와준 것인지, 내가 살려고 아내를 찾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손의 감촉이 기억하고, 아내 목소리까지 똑똑하게 살아났다. 이내 실망감이 몰려들었다. 아내와 화해까지도 꿈이었다.


아무렴, 현실을 직시하자. 죽음을 유혹하는 침대에서 벗어나야 했다. 비틀대며 거실로 나오자, 벽시계가 9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그렇다면 아내는 절박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분명하였다.     


요 며칠 날카로운 심정이 되어 몸을 함부로 굴렸더니 에너지 고갈을 맛본 뒤에 꾼 꿈이었다. 한 번뿐인 생애, 무턱대고 살아가며 희망이란 기름이 번들번들 칠해진 종교 따위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손가락으로 안간힘을 쓰는 내게 죽음이 던지는 경고라는 생각이다. 낙담과 실의에 빠진 채 내일을 꿈꾼다는 것은 이상이란 환각제를 심하게 들이킨 것일 거다.      


버릇처럼 머리맡 메모지에 꿈을 기록한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제법 긴 영상이 펼쳐졌다. 몸서릴 치며 생수에 얼음을 가득 넣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난 꿈이 얼음물에 쓸려 내려가는 듯하다. 내 마음이 밝아지려면 집안을 밝혀야 했다. 거실 커튼을 걷자, 집안으로 햇살이 들어와 밤새 숨죽이던 화초에 닿는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염치없는 뱃속이 허기와 속 쓰림으로 반항한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위를 살폈다. 오랜만이다. 아내가 당근과 토마토를 넣은 주스를 만들어 놓고 집을 나간 듯하다. 최소한 이를 만들 때만이라도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나를  생각하였으면 좋겠다. 온기가 남아 있는 주스를 잔에 가득 부어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몸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길고양이 발걸음 소리가 들릴까 고요가 밀려들자 외로움에 몸서리를 친다. 방금 꾼 꿈이 재차 살아나려 한다.



브루투스를 켜고 음악을 틀었다. 때마침 김경호가 부르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성대결절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가수다.      

‘너의 생일마다 꽃을 안겨줄 네게 그런 사람이 나일 수 없는지….’ 이런 우울하고 답답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가사라니….


일어나 약을 챙겨 먹는다. 10여 년째 먹는 혈압약이다. 술을 좋아해 간장약도 빠트리지 않는다. 다행이도 운동 덕분인지 당뇨는 문제가 없다. 한때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했다. 몸무게가 두세 달 만에 7kg이나 빠졌을 때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가빠 헉헉대며 스스로 심각성을 느끼곤 하였다. 대학병원 정년퇴임 기념집을 만든 인연인 단골 의사께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우리 병원 환자 중에서 피가 가장 묽어요!”

“누가요?”

“니가요.”

이 모두가 쉬이 잊어버리지 못하는 성격인 탓이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다.


“행복은 건강과 짧은 기억력이다.”


학업은 바닥을 기면서, 살아가는 데 있어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팔팔 살아 있는 바이러스다.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가 ‘행복론’에서 말하듯 ‘명성과 명예, 허영심’이 문제였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을 관조하게 되고, 맹목적인 움직임이 허망한 것인지 깨닫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무소유와 비움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란 것은 이론일 뿐, 단언컨대 나는 여전히 낡고 삭아가는 저급한 삼류 인생일 뿐이다.      

옆에서 집사를 향해 냥냥거리는 고양이들로 인해 현실로 돌아왔다. 냥이 두 놈 밥그릇 챙기고, 물그릇 씻어서 다시 대령하였다. 밤새 갈겨 놓은 오물 정리하고 나니 정말로 배가 고팠다. 다행스럽게 밥솥에 밥이 한 그릇 됨 직 남아 있다. 만들어놓은 지 이삼일 된 닭개장을 데웠다. 김치와 김, 젓갈을 한 접시에 덜어내 대충 밥을 챙겨 먹는다.      


아침은 이삼일 지난 닭개장으로 해결하였다. 진한 국물이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책을 펼쳤다. 눈이 감긴다. 꿈에 대한 공포도 그러하거니와 병든 닭처럼 대낮에 잠에 빠질 수 없다. 서둘러 샤워했다. 역시 인간은 물을 만나야 세포 하나하나 살아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악몽에 시달리며 영혼마저 탈탈 털린 터라 하루 일정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하등 의미 없이 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바닥을 치는 기력조차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는 컴퓨터를 켜라. 폴더를 찾아 밀린 원고를 열어 퇴고를 거듭하였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글 쓰는 직업은 빌어먹기 딱 좋다. 작년과 달리 아직 공모전 당선 소식도 없다. 일거리 역시 올해 들어 한 건 들어왔지만, 겨우 콘텐츠만 짜서 넘겼을 뿐, 진행은 요원하다. 아마도 6월 중순 본격적인 더위에 맞춰 엉덩이 땀띠를 훈장으로 달아야 할 듯하다.      


대기업 과장 한 달 봉급을 벌기 위해 두 달을 고민해야 하는, 그나마도 갑의 입장에 맞춰 전력투구해야 가능한 일이고 보니, 간혹 서글픔이 밀물 같다. 위로한답시고, 60대 중반, 이 나이에 그나마도 감지덕지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하마 손을 놓는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은둔(隱遁)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 값을 토색(討索)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상념을 깨듯 아내로부터 톡이 떴다. 할 일 없으면 다시국물 만들어 놓았으면 한다. 문장은 부드럽지만 명령조로 받아들인다. 당연하게 할 일 없는 줄 빤하게 알고 하는 소리다. 한 번 만들어 놓으면 국이나 찌개, 조림에도 다양하게 쓰인다. 물론 내 정성과 요리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명령할 수 없는 일은 분명하다. 이참에 잔치국수가 당긴다. 그렇게 국물멸치, 다시마, 무, 양파, 새우 가루를 넣고 팔팔 달여서 장만해 놓았다. 나도 국물에 양념간장을 올려 국수 대충 말아 점심이랍시고 때운다.      


시계를 보니 정말로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잠시 머뭇댔을 뿐인데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서둘러야 할 일이다. 더 꾸물대다간 나의 벌꿀오소리와 한 집에서 마주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게 되면 나는 오늘 바깥 공기를 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백수 남편이 하릴없이 밖으로 내도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벌꿀오소리는 나를 그토록 애지중지 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내가 면 요리를 좋아하는 까닭은 순전히 어머니 탓이다
벌꿀오소리 명에 따라 다시국물 만드는 중. / 강길을 걷다가 마무리에서 맛본 막걸리와 고등어


각설하고, 다시국물 식힌 것 냉장고에 넣고, 점심 먹은 설거지와 국물 우려냈던 냄비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조리대와 싱크대는 물론 가스레인지 위에도 이물질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하게 닦았다.    

  

서둘러야 한다. 재빨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휴대전화, 카드 지갑, 약간의 현금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모처럼 하늘이 맑다. 미세먼지도 좋은 편이다. 이제부터 악몽을 떨쳐내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즐기리라 생각하였다. 몸이 무거웠지만, 그나마 날씨로 인해 상쇄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오후 4시라곤 하기엔 너무나 쨍쨍하다. 휴대전화기 시계를 봤다. 이런 젠장! 오후 2시 40분이다. 분명 거실 전자시계가 14시였는데…? 아차! 14시면 오후 2시가 아닌가.      


결국 14시를 오후 4시로 본 이 어리바리한 늙은 나그네는 1만 보에서 계획을 수정해 2만 보를 걸어야 했다. 더불어 날씨는 더없이 좋더라. 돌아오는 길, 단골 청국장 식당에 들러 고등어구이와 함께 막걸리로 나를 응원하고 또 하루를 달랬다.      


해가 참 많이도 길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과 아내가 저녁을 먹고 있다. 냥이들만 졸졸 따라다니며 반긴다. 물론 간식 내놓으라는 행동이지만 말이다.      


길을 걷다 보면 소도 보고 중도 본다



나에게 지켜야 명예가 남아 있지 않아도 좋다.

부디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만 지나가길 진열대에 놓인 달마대사를 향해 빌었다. 더불어 오늘은 부디 악몽에 시달리지 않게 해달라고만 빈다. 제발...

'존재가 존재한다면'이란 조건을 달긴 하였지만 말이다.


















추신 : 나는 여전히 몸도 정신도 건강하게 살만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명예롭지 못한 성공은 양념하지 않은 요리와 같다고 한다. 늙었다고 해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형편없는 요리를 먹을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나는 이제야 중년과 노년사이의 ‘Third Age’로 진입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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