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잊는 법부터
눈앞에서 열쇠꾸러미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고개를 들자 주인 여자가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솔향집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열쇠를 돌려 잠긴 문을 열자, 오래 고여있던 공기가 흘러나왔다.
낡은 장롱, 혼자 눕기에 적당한 싱글침대, 벽에 걸린 빛바랜 액자, 책꽂이에 어정쩡하게 꽂힌 잡지와 책 몇 권... 이것이 내가 마주한 방의 첫 모습이었다.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짐가방을 구석에 내려놓자, 나무로 된 바닥이 낮게 삐걱였다. 창 밖을 서성이던 가을바람이 틈을 비집고 흘러들어왔다. 그 바람 속엔 따뜻한 햇살과 청명한 하늘빛도 함께 섞여있었다.
잠시 후 적막을 깨우는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렸다.
“방은 마음에 들어요?”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 민박집주인은 이내 몸을 반쯤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짙은 먹색의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젖은 행주를 쥔 채로.
“저는 박선옥이에요.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아, 식사는 매일 아침 여덟 시, 저녁은 일곱 시에 드려요. 점심은 제공 안 되고요. 대부분 낮에는 나가서들 드시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된 것처럼 입에서는 간단한 대답만 흘러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일 아침에 여기 마을 회관 앞에 동네사람들 다 나와서 감을 딸 거예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일손이 귀한데, 혹시 시간 되시면 바람도 쐬실 겸 한번 나와보세요. 구경만 해도 괜찮고요.”
권유로 들리면서도, 꼭 나와달라는 부탁처럼 들렸다. 선뜻 대답을 고르지 못하자, 그녀가 가는 눈을 뜨고 내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에 마지못해 지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네. 특별한 일 없으면 나가볼게요.”
“그래요. 회관은 여기서 걸어서 오 분이에요. 집 앞에 있는 길 따라 쭉 직진하면 돼요. 아침 공기가 선선하니까, 얇게만 입고 오지 말고. 그럼 쉬세요.”
문이 닫히고 나서야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는 점심이 없구나, 같은 사소한 정보들이 어쩐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둥처럼 느껴졌다.
생활은 시간을 중심으로 굴러가니까. 여덟 시와 일곱 시. 그 사이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천천히 생각하면 된다.
짐을 풀기 시작했다. 옷 정리를 위해 서랍을 열자,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노트 하나가 놓여있었다. 회색빛이 도는 얇은 표지에 해진 모서리는 살짝 일어나 있었다.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노트를 집어 들었다. 첫 장을 넘기자 연필로 흐릿하게 쓴 글씨가 보였다.
'여기선 잊는 법부터 배워요.'
짧은 문장, 여백이 많은 필체.
나는 그 문장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잊는 법이라... 나는 아직 잊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견디지 못했고, 버티다 무너졌다.
텅 빈 아파트에 들어가 불을 켜면, 불빛이 괜스레 집안만 더 넓어 보이게 비췄지, 마음은 캄캄한 밤 보다도 더 어두워졌다.
식탁 한쪽에 놓인 작은 접시, 다 먹지 못해 남긴 국, 말라붙은 설거지통, 이혼 서류 위에 찍힌 도장의 선명함, 그리고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목소리까지.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노트의 다음 장을 펼치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볼펜을 꺼내 새로운 제목을 적었다.
소리의 목록.
다온골에 도착한 오늘, 지금까지 내 귓가를 스쳐간 소리의 목록을 적어 내려갔다.
- 나무로 된 현관문이 닫힐 때 나는 삐걱이는 소리
- 마을에 울려 퍼진 아이들 웃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
- 바람에 부딪히는 감잎의 바스락 거림
- 장독대 뚜껑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
- 책을 안고 스쳐 지나가던 낯선 발자국 소리
글씨가 한 줄, 두 줄 늘어날수록 숨이 조금 가벼워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선 어쩌면 이렇게 기록하는 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볼펜을 내려두고, 빈칸을 만들어 두었다. 그 칸이 스스로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볼펜을 들어 적어 내려갔다.
- 아이의 웃음소리
- 졸린 목소리로 부르던 “엄마”
- 잠들기 전 꼭 읽어달라던 동화책의 첫 문장
손끝이 떨렸다. 적지 않으려 했던 단어를 결국 적었다. 아들. 일곱 살. 전남편이 양육권을 가져갔고, 합의 과정에서 나도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었다.
아이는 밤마다 “엄마, 오늘은 같이 잘 거지?”라고 물으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고, 나는 대답을 흐리며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지나온 날들 사이로, ‘잘한 선택’과 ‘버린 것’이 뒤엉켜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만, 조금만 더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라고 되뇌었는데, 익숙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파트에서 이곳까지,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아무렇게나 맞춰두었다. 음악과 광고, 누군가의 밝은 말투가 쏟아지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생각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호에 걸려 잠시라도 음악이 끊기는 순간이 오면, 여지없이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차올랐다.
“엄마, 빵 부스러기 떨어졌어.”, “엄마, 오늘은 내가 져줄게.”
남들이 들으면 웃을 만큼 사소한 대화였지만, 내겐 하루를 버티게 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펼쳐 첫 장에 적혀있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여기선 잊는 법부터 배워요."
이 문장은 누가 쓴 것일까, 이전에 머물다 간 사람일까. 나중에 박선옥 씨에게 슬쩍 물어볼까, 굳이 물을 필요가 있을까. 알고 싶다는 마음과 모른 채 두고 싶다는 마음이 엇갈렸다.
노트를 몇 장 더 넘기다 보니 얇은 영수증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마을 슈퍼 이름과 함께 ‘작업장갑 1, 종이컵 1’이 적혀 있었다. 날짜는 작년 가을. 메모처럼 낙서가 하나 더 있었다. ‘9시, 회관 앞.’ 나는 영수증을 다시 노트에 그대로 끼워 두었다.
거창한 단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닌, 생활의 흔적 같은 것. 이전에 그 누군가도 내일 같은 아침을 위해 장갑을 샀었구나. 별것 아닌 생각이, 묘하게 나를 현실로 붙잡았다.
짐 정리를 마저 했다. 내일 아침에 입을 얇은 바람막이, 긴 양말, 달아오른 손을 식힐 작은 물티슈를 챙겨서 한쪽에 모아 두었다.
알람을 일곱 시 반에 맞추었다. 여덟 시에 식사라 했으니, 그전에 일어나 대충 씻고 준비하면 되겠지. 도시에서처럼 주어진 시간을 쪼개 쓰는 게 아니라, 여기선 정해진 시간에 몸을 맞추면 된다. 그 단순함이 고맙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했다.
전화기를 켰다. 잠금화면에 아이의 사진이 떴다.
생일 케이크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던 모습, 눈을 감았다 뜨며 입김으로 촛불을 끄기 직전의 표정. 나는 무심코 사진을 넘기다가 멈췄다.
마지막 통화 기록. 전남편. 며칠 전 짧게 통화를 했고, 아이의 목소리는 뒤에서 희미하게 들렸었다.
“엄마, 나 내일 체육대회야.”
아이의 말에 나는, “그래, 영상 꼭 보내줘”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보내준 영상을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아이가 힘껏 달려가다 넘어지는 장면에서 멈춰버렸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 멈췄고, 그다음엔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넘어지는 순간의 작은 울음과 주변의 소란이, 그날 밤 텅 빈 집 안의 모든 소리를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 일곱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노을이 물러나고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는 시간. 식사시간이니 어서 나오라는 박선옥 씨의 목소리가 솔향집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주방에는 이미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주인 박선옥, 낡은 책을 안고 나를 스쳐 지나갔던 그 낯선 남자, 그리고 인근 마을에서 식당을 한다는 박선옥 씨의 아들이었다. 아들은 스물아홉쯤 되어 보였고, 성격이 좋아 보였으며 웃음이 수월했다. 낯선 남자는 그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는데, 마치 익숙한 자리처럼 편안하게 수저를 쥐고 있었다.
“어서 와서 자리에 앉아요.”
박선옥 씨는 밝게 말했지만, 어쩐지 공기가 단번에 풀리진 않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수저를 잡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의 주인인 박선옥과 그의 아들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낯선 남자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진 않았지만, 짧게 맞장구를 치거나 필요한 말만 건네며 묘하게 자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그의 존재감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식탁에는 된장찌개와 제철 나물, 구운 생선이 올랐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이 번져나갔지만, 나의 어색한 미소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들과 나 사이엔 낯선 벽이 세워진 듯했으니까.
식사가 끝나자 모두가 자연스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무거워진 배와 마음을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자마자, 바깥의 활기와 방 안의 고요가 극명하게 갈라졌다. 낯선 곳에서의 첫 저녁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살아남기. 내일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회관 앞까지 걸어가는 일,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일,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일, 이름을 묻고 이름을 말하는 일, 말하기 싫은 건 말하지 않고, 말해야 하는 건 짧게 말하는 일. 그런 것들일 것이다.
불을 끄고 누웠다. 천장에 박힌 못자국이 어둠 속에서 점처럼 보였다. 멀리서 ‘내일 일찍 나와’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회관 쪽인가 보다. 그 소리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안내였을 테지만, 내게는 처음 듣는 낯선 리듬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 보니, 발치에 면으로 된 작업장갑과 메모가 놓여 있었다.
'아침 공기가 차요. 장갑 챙기세요. — 선옥'
나는 장갑을 들어 올려 손에 대어 보았다. 메모가 적힌 종이는 반으로 접어 노트 속 영수증 옆에 함께 끼워 뒀다. 내 것이 아닌 기록들 사이에 내 하루가 끼워졌다. 이 사소함에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아주 작게 맴돌았다.
“엄마, 감은 왜 쓴 거야?”
어느 해 가을, 시장에서 떫은 감을 잘못 사와 입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던졌던 질문.
나는 그때 “덜 익어서 그래”라고 말하고는 웃었었다.
내일 감을 따러 나가면, 혹시 누군가와 그때처럼 웃을 수 있을까... 내일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거다.
그 자리에 서서, 내 목소리를 꺼내도 괜찮은지,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지, 회관 앞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알람이 제대로 맞춰졌는지 다시 확인했다. 일곱 시 반. 화면을 끄자 방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내일 아침 마주할 것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여덟 시의 아침 식사, 오 분 거리 회관, 낯선 인사들, 감잎의 바스락 거림...
잊는 법은 당장에 배울 수는 없겠지만, 견디는 법부터는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도.
그 밤, 꿈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지금껏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따뜻함을 품은 손길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눈물이 잦아들고 마침내 숨결이 가까워졌을 때 익숙한 알람소리에 모든 것이 희미한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베개를 가득 적신 눈물만이 밤의 이야기를 기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