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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01. 2024

1960년 겨울, 경동

 용옥이 남편 길홍을 처음 만난 것은 1960년 겨울이었다. 

동인천 역전에 있던 포목점 양지상회는 부인네들의 사랑방이었다. 중매일을 겸하는 포목점 주인 양 씨 편으로 용옥과 길홍의 사진이 먼저 오갔고, 그렇게 일이 성사되어 시모 될 이와 신랑자리가 용옥의 집으로 피차 간선을 보러 것이었다. 


 고씨 용옥의 집은 동인천의 경동에 있었다. 

경동의 고씨 일가는 가좌동 개건너 일대의 간석지에서 소금 농사를 짓는 염전 만석꾼 집안이었다. 용옥의 부친은 슬하에 아홉 남매를 두었는데, 위딸을 제외하고 밑으로 일곱 남매를 모두 서울로 대학을 보냈다.

부친은 둘째 딸인 용옥을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게 했으나 인천고녀를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접게 했다. 대신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는 일로 소임을 다하게 했던 것이다.


 용옥의 나이 스물셋으로 당시로서는 과년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흠이 되지 않을 만큼 인물이 좋았다. 고녀를 졸업한 여성답게 귀태가 나는 데다 타고난 인물 말고도, 눈썹을 밀어 반달같이 가늘게 호를 그려 넣은 신식 화장까지 더해서 신여성의 도도함을 지닌 아름다움이 있었다.

모친인 지 씨 부인은 둘째 딸을 웬만하게 혼인시킬 생각이 없었다. 좀 늦은 게 대수랴 싶게 가리고 골라가며 사윗감을 물색하던 중에 화평동 고개에서 접골원을 하는 김원장의 맏아들로 선자리가 들어온 것이다. 김원장은 타지 사람으로 전쟁 전에 경기도 어디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인사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사실 지 씨 부인은 김원장댁이 탐탁지는 않았다고 한다. 가문은 본 데 없으나 관이 있으니 그만하면 되었다고 양 씨가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도 그랬다. 김원장 안주인의 인품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박이 행세를 하며 얼마나 휘젓고 다녔는지 동인천 근방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단한 풍채에 철마다 양장을 맞춰 입고는 인형극장으로 배다리 한증막으로 노상 택시를 불러 타고 나다닌다고 했다. 최고로 좋은 과일을 찾는다고 경동 청과상회를 궤짝마다 쑤시고 다녔고, 아무 날도 아닌데 지겟꾼을 앞세워 갈비를 짝으로 들여가는 집밖에 없었다. 지 씨 부인은 듣기만 해도 어수선한 점잖은 집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다행히 신랑자리는 서울에서 법대를 다니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재원이라고 했다. 매파 말로는 그쪽 집안의 재물이 상당하고 인심이 넉넉하므로 서울에 집을 사서 신접살림을 내줄 생각이더라고 했다. 


 매파인 양 씨가 목이 쉬도록 바람을 잡아 성사된 맞선은 신랑자리가 방학을 맞기를 기다려 12월의 어느 토요일로 날이 잡혔다. 양 씨가 용옥더러 얌전하게 한복을 해 입으라고 하는 걸 지 씨 부인이,

"시골 처자처럼 한복은 되었다. 고녀를 나온 여성답게 양장을 하여라."

라고 해서 용옥은 위아래로 두 벌 짜리 양장을 맞춰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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