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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22. 2024

용옥 씨의 이야기 2

 금세 아들 메누리도 왔어요. 막네 철호 식구요. 메누리가 아들보다 먼저 달려오는데 얼마나 정신없이 왔는지 쓰렙빠를 신고 왔어요. 그 슬립퍼요. 

철호까지 오고 나니까 애들이 나보고 들어가라고 야단이예요. 원래 마나님은 영감님 빈소에 있는 게 아니래요. 그런 게 어디에 법이 있나요. 왜 나를 못 치워서 야단인가 했더니 딸애들이 내 편에 메누리를 들여보내려는 심산이었던 거예요.


종옥이가 제 올케한테,

"올케가 엄마 좀 모시고 들어가."

하니까 종숙이 마저 나서서,

"그래. 올케가 모시고 갔다가 혼자 계시게 하지 말고 같이 있어. 저녁도 같이 들고. 해 먹지 말고 시켜 먹어."

해요. 그러니까 메누리가,

"형님들이 들어가세요. 내가 여기 있을게요."

하잖아요?

내가 금방 알아듣고 일어나서 가자 가자 하면서 앞장서서 나왔어요. 이 애 친정아버지가 암이 와서 며칠을 병원 잠을 잤답니다. 인저 수술하면 나으신대요. 그래도 아버지 수술 날을 잡아놓고 큰 일을 당했으니 고단하면 큰 일이지요. 뭘 쉬엄쉬엄할 애가 아닌데 저를 제일 귀해하던 시부의 상이니 오죽할까요. 딸들이 눈치껏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원하게 못 나오고 신을 오래 신는 걸 내가 좀 누워야겠다고 등을 밀어서 왔어요.


집에를 당도해서 엘레베이터를 내렸는데, 

"어머나, 많이 고단하세요?"

물어요.

"여기 좀 계시면 먼저 좀 들어갔다 올게요."

헤서 그러라고 했어요. 집을 치우려는 게지요. 속이 얼마나 깊어요? 

됐다고 해서 들어갔더니 아침 자시던 방은 말끔히 해놓고 상을 치우는지 차리는지 부엌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요.

내가 곤한 줄을 몰랐는데 베개를 꺼내 머리를 대니 눈꺼풀이 깜빡 내려와요. 좀 잤나, 상 내려놓는 소리에 눈이 떠져서 오늘이 어젠지 그젠지 내일인지 정산이 가물가물한데 메누리가 살살 흔들면서,

"어머니, 진지 자셔요."

하는 소리에 정신이 확 들어와요. 이 양반이 돌아가셨구나. 그제야 가슴이 메어지면서 숨을 쉴 때마다 꺽꺽대는 울음이 나옵디다. 


엊저녁을 먹다 말다 했다고 새벽같이 아침 상을 차리는지 밥 삶는 냄새에다가 참기름 내가 솔솔 나요. 죽을 끓이나 봐요. 만사가 귀치않고 입맛도 다시기 싫었지만 메누리가 상을 들여오기 전에 얼른 일어났지요. 

부엌으로 가보니 숟가락으로 명란을 바르고 있어요. 명란죽을 끓이나 봐요. 껍질을 바르다 말고 날 보고 배시시 웃는데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있어요. 저나 내나 뒤척이느라 못 잔 걸 이 애 혼자 상을 차리는 걸 보니 맘이 짠해요. 쉬게 한다고 데려왔는데 시가는 시가라 누워있질 못하니.

쟤를 멕이려면 내가 먹어야겠다 싶어서 있는 반찬을 싹 꺼내서 상을 차렸지요. 명란죽을 간간하니 아주 맛나게 끓여 왔습디다. 내가 나서서 상을 치우고 아니라고 하는 걸 억지로 방에 데려다 뉘고 나오니 부엌에 발라논 명란껍질을 이쁘게 모아논 게 보여요. 


시집을 갔더니 그 귀한 명란을 으깨서 쪽파랑 마늘을 다져 넣고 참기름 하고 깨를 뿌려 바리만 한 단지에 채워놓고는 끼니때마다 김 씨 상에만 올립디다. 

어디 영란젓만 그랬나요. 

나는 보기만 해도 아깝고 귀한 걸, 이 양반 식구들은 메누리가 어찌 그리 하찮고 미천했을까요. 남의 성씨라 그랬나 생각했는데 내가 살아 보니 그래서 더 고맙던 걸요. 


마음이 그래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이 났다 식었다. 미운 마움에 혼자 자맥질하던 날은 왜 없겠으며 당신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나 보라고 이를 앙 물던 날은 왜 없었을까요. 

그러나 상 아래로 고꾸라지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요. 뭐가 얼마나 급하다고 말 한 마다를 안 남기고 갔는지. 약이라도 한 번 쓰고 주사라도 한 방 맞고 갔으면 애들 저렇게 안타깝지는 않을 것을 같다가.

천국이 좋다더니 그 양반도 세상 사는 게 만만치 않았던 거지요. 

먼저 좋은 데로 가고 내가 뒤에 남은 거 보면 어쩌면 그 사람이 속으로는 더 힘들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쥐가 고양이 생각을 다 하고, 이러니  내가 참 바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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