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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Nov 05. 2024

화평접골원 2

 길홍은 본성이 사나운 이는 아니었으나 성질이 불같고 참을성이 없었다. 평소에는 순하다가도 한 번 부아가 나 난장을 치면 식구 중 누구도 말릴 생각을 안 했다. 용옥이 보기에는 오히려 시모가 며느리 보란 듯이 우쭈쭈 해대며 쟤가 저러니 성질 건드리지 말고 죽어 살란 듯이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길홍은 화가 가라앉고 나면 이북사람이라 성질이 급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그가 용옥에게 화를 내는 일은 잘 없었으나 다만 제 처가 바깥출입을 하는 일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화평동 본가는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이층으로 된 구조였다. 

아래층을 반으로 갈라 안채와 접골원으로 나눠 쓰고 있었고 위층을 여섯 칸으로 조각조각 개조하여 김원장의 개인실과 입원실로 사용했다. 

병원에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다. 철저히 사무용으로 집안 식구들은 번호조차 몰랐고 전화가 오면 조수일을 보는 사환아이가 받았다. 

그 전화기로 길홍은 매일 낮에 전화를 해서 용옥을 찾았다. 


용옥이 제 때 전화를 받지 못하면 길홍은 괜한 사환아이를 꿩몰이 하듯 다그쳤고, 그러면 사환아이는 식모일을 보는 순자를 쥐 잡듯이 잡았고, 그러면 순자는 김 씨 부인을 찾아가 눈물바람으로 불을 놓았다. 그러면 김 씨 부인은 옳다구나 핑계를 잡은 김에 앞뒤 볼 것도 없이 용옥을 찾아내 머리채를 잡았다. 


주일이면 용옥은 고씨 자매들이 오순도순 다니던 싸리재 고개에 있는 교회를 갔다. 친정 식구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길홍은 교회 앞까지 쫓아가 순자를 시켜서 자매들이 보는 앞에서 용옥을 끌어내왔다. 

벗들과 배다리 근처에 서있다가 시모와 마주쳤을 때는 시모가 친구들 앞에서, 이걸 지 서방이 머리를 깎아서 방에 가둬놔야 정신을 차릴 텐데, 하며 소처럼 끌고 갔다.

용옥을 편드는 일이라면 밥상부터 던지고 보는 길홍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이 일만큼은 나서지 않았다.


동인천 역전 시장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걸 사환아이까지 와서 실갱이를 한다고 좌판을 엎어 버렸다. 몰래 나온 것도 아니고 시장을 간다고 순자에게 이르고 나온 길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순자를 두고 발 빠른 사환아이가 용옥을 찾겠다고 뛰어왔다가 생긴 일이었다. 

전화통에서는 불이 나고 시모는 악을 쓰고 김의원은 불호령에 시누까지 길길이 뛰고 있다는 것이다. 사환아이가 국수를 뒤집어쓰고 울고 갔고 국숫집 주인이 용옥을 보내주지 않아 시모가 와서 좌판 값을 치르고 또 머리채를 잡았다.


김 씨 부인은 함경도 사투리로,

"아아, 이 아가 아주 못쓰겠어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못 쓰겠다는 '이 아'는 용옥을 말하는 것이었다. 집에서만이 아니고 나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 말을 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특히 양 씨에게 얼마나 귀에 피가 나도록 해댔는지 중매를 선 이가 사돈 자리인 지 씨 부인에게 고해바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시집온 지 반년 만에 지 씨 부인이 뉴똥 한복을 떨쳐 입고 두 아들을 대동해 기별도 없이 화평접골원에 들이닥쳤다. 벼르고 벼른 듯 빈 손으로 와서 들어가지도 않고 대문에 선 채,

"못 쓰겠거든 버리세욧!"

하고 딸의 이름을 호령하다 돌아갔다. 


점잖은 줄 알았던 양반의 기세가 만만치 않자 시모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듯했다. 처가에서 용옥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길홍 역시 기가 꺾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 씨 부인으로서는 만족할 만했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는 일이 있었다. 

용옥은 이미 결단코 고분고분한 인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용옥의 넌씨눈에 성마른 김 씨 일가의 남모르게 타는 속을 지 씨 부인이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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