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용옥으로서는 시가의 드잡이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개화가 됐다한들 색시가 혼인을 파투내고 본가로 돌아가는 법은 없었다.
그랬기에 지 씨 부인 역시 본때만 보여주고 갔을 뿐 끝내 용옥을 데려가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참고 살았을 용옥은 아니었으나 남편 길홍의 처신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겸상을 하던 중에 길홍은 김치보시기를 뒤져 찹쌀떡만 한 삭힌 대구살을 쑥 꺼내 용옥의 밥숟가락 위로 얹어 주었다. 김치 반 통을 썰어야 두어 개 나올까 말까 해서 귀하게 여기는 밥반찬이었다. 생전 먹어보지 못한 용옥이 벌건 대구살에 기겁을 해,
"에그머니나, 징그러워라."
하며 도로 길홍의 밥으로 던져놓자 길홍이 귀엽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명란젓을 소복하게 집어 대구반찬을 내친 그녀의 밥숟가락 위에 다시 얹어 주었다.
출근을 한 길홍에게서 용옥 편으로 도시락을 싸 보내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시모가 부리나케 꾸덕하게 말린 홍어를 구해다 쪄서 양념장을 뿌리고, 소고기로 산적을 구워 순자 편으로 보낸다는 걸 용옥이 길홍의 성질에 아서라 하자 더 말을 못 하고 며느리에게 들려 보냈다.
그 길로 길홍은 용옥을 데리고 화평동 고개 인형극장으로 벤허를 보러 갔다. 영화가 하도 길어서 중간 참에 밥 먹을 시간을 준다더니 실상 그랬다. 다들 어떻게 미리 듣고 도시락을 싸왔는지 영화관에 밥 냄새가 진동했다. 두 사람도 영화 중간에 시모가 정성 들여 세 칸 찬합에 담아준 도시락을 먹었다.
아무리 살뜰히 챙겨주는 신랑이 있다해도 돈 한 푼 없이 바깥출입이 금지된 채 달이 지나자 용옥은 견딜 수가 없었다.
용옥의 부친 되는 경동 본가의 고사장은 아들은 물론 딸들 역시 자유로이 활보하게 했다. 철철이 양장을 해 입혔고, 계절마다 한 번씩 서울 나들이를 다녀오게 했고, 삼복에는 딸들이 무리 지어 수영복을 입고 인천 송도로 해수욕을 가게도 했다.
대청마루 텔레비전 문갑 위에 전대를 놔서 장부에 기입만 하면 마음대로 돈을 들고 갈 수 있게 해 놨었다.
그렇게 자란 용옥이 때 아닌 귀양살이를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침 순자의 횡포가 나날이 더해져서 식모 일을 하는 아이까지 시누 노릇을 하겠다고 덤비는 꼴이 났다.
순자는 슬슬 간을 봐가며 용옥을 부려먹으려 들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시모에게 일어 바치기 바빴다. 일이 서툴다고 용옥의 손등을 후려치기까지 하더니 급기야는 언니라는 호칭을 그만두고 새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윗사람 행세를 자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혹여 길홍에게 이를까 봐 눈치를 보는 순자였으나 그것은 용옥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였다.
용옥은 무신경하다고 할 만치 배포가 남다른 인사였다. 식모 아이의 하대 정도는 고심 거리도 아니었다. 바깥출입을 아무리 막은들 나가면 그만이지 그도 큰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용옥은 배달부 편으로 본가에 기별을 넣어 럭키 구리무와 코티 분을 넉넉하게 사 보내라 했다.
아무리 그녀라도 본가에 돈 얘기를 할 수는 없는 법이라 대신 물건을 보내게 한 것이다. 서울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동생이 시집간 언니의 청이라고 화신백화점까지 가서 물건을 싹쓸이하다시피 사서 택시를 대절해 실어 보내 왔다.
용옥은 구리무 하나를 순자에게 주어 호칭을 도로 언니로 바꾸어 놓은 다음, 그녀를 시켜 양 씨를 오게 했다. 그녀는 남은 물건을 양 씨에게 맡겨 포목점에서 값을 덜 쳐 팔게 했다. 허풍이 들어간 중매로 한 짓이 있는 양 씨는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시가에 쉬쉬할 것도 없었다. 시모가 길길이 뛴들 체면에 양 씨를 불러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수다스러운 중매장이의 눈 밖에 났다가는 동리에 소문이 나는 것은 무론하고 길홍 누이의 혼사까지 어려워질 수 있었다.
자고로 중매장이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좋은 끝이 없다는 것을 김 씨 부인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시모가 머리채를 잡으면 용옥은 길홍이 들으라고 악 소리를 냈다. 길홍이 없을 때는 바깥채 병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항상 환자가 있는 병원인지라 김의원의 불호령이 왔다.
그럴 것도 없이 병원 쪽으로 소리를 칠라치면 시모가 먼저 기겁을 해서 용옥의 입을 막았다.
돈이 들어오자 용옥은 럭키 구리무에 코티 분을 찍어 바르고 누가 뭐라든 처녀 적처럼 나들이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