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홍은 본성이 사나운 이는 아니었으나 성질이 불같고 참을성이 없었다. 평소에는 순하다가도 한 번 부아가 나 난장을 치면 식구 중 누구도 말릴 생각을 안 했다.
용옥이 보기에는 오히려 시모가 며느리 보란 듯이 우쭈쭈 해대며 쟤가 저러니 성질 건드리지 말고 죽어 살란 듯이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
길홍은 화가 가라앉고 나면 이북사람이라 성질이 급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그가 용옥에게 화를 내는 일은 잘 없었으나 다만 제 처가 바깥출입을 하는 일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화평동 본가는 이층으로 된 구조였다.
아래층을 반으로 갈라 안채와 접골원으로 나눠 쓰고 있었고 위층을 여섯 칸으로 개조하여 김원장의 개인실과 입원실로 사용했다.
병원에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다. 사무용으로만 쓰는 전화로 식구들은 번호조차 몰랐다. 전화가 오면 조수일을 보는 사환아이가 받았다.
출근을 한 길홍은 낮에 그 전화기로 전화를 해서 용옥을 찾았다.
용옥이 제 때 전화를 받지 못하면 길홍은 사환아이를 꿩몰이 하듯 다그쳤고, 그러면 사환아이는 식모일을 보는 순자를 쥐 잡듯이 잡았고, 그러면 순자는 김 씨 부인을 찾아가 눈물바람으로 불을 놓았다.
그러면 김 씨 부인은 핑계를 잡은 김에 용옥을 찾아내 머리채를 잡았다.
주일이면 용옥은 고씨 자매들이 오순도순 다니던 싸리재 고개 교회를 갔다. 친정 식구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길홍은 교회 앞까지 쫓아가 순자를 시켜서 자매들이 보는 앞에서 용옥을 끌어내왔다.
벗들과 배다리 근처에서 만났다가 시모가 친구들 앞에서, 이걸 지 서방이 머리를 깎아서 방에 가둬놔야 정신을 차릴 텐데, 하며 소처럼 끌고갔다.
용옥을 편드는 일이라면 밥상부터 던지고 보는 길홍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이 일만큼은 나서지 않았다.
역전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걸 사환아이가 와서 용옥과 실갱이를 하다가 좌판이 엎어져 버린 일도 있었다.
몰래 나온 것도 아니고 시장을 간다고 순자에게 이르고 나온 길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순자를 두고 발 빠른 사환아이가 용옥을 찾겠다고 뛰어왔다가 생긴 일이었다.
전화통에서는 불이 나고 시모는 악을 쓰고 김의원은 불호령에 시누까지 길길이 뛰고 있다는 것이다.
사환아이가 국수를 뒤집어쓰고 울고 갔고 시모가 와서 좌판 값을 치르고 또 머리채를 잡았다.
김 씨 부인은 함경도 사투리로,
"아아, 이 아가 아주 못 쓰겠어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못 쓰겠다는 '이 아'는 용옥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 말을 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매파 양 씨에게는 얼마나 귀에 피가 나도록 해댔는지 중매를 선 이가 사돈인 지 씨 부인에게 고해바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시집온 지 반년 만에 지 씨 부인이 뉴똥 한복을 떨쳐 입고 두 아들을 대동해 기별도 없이 화평접골원에 들이닥쳤다. 벼르고 벼른 듯 빈 손으로 와서 들어가지도 않고 대문간에 척 선 채,
"못 쓰겠거든 버리세욧!"
하고 딸의 이름을 호령하다 돌아갔다.
점잖은 줄 알았던 양반의 기세가 만만치 않자 시모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듯했다. 처가에서 용옥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길홍 역시 기가 꺾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 씨 부인으로서는 만족할 만했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는 일이 있었다.
용옥은 결단코 고분고분한 인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용옥의 넌씨눈에 성마른 김 씨 일가의 남모르게 타는 속을 지 씨 부인이 알 턱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