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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리 Oct 29. 2024

오만한 밤

신호의 전환을 기다리며

오만한 밤



최규리




노루 떼가 요양원 밖으로 

다급하게 뛰어나온다


길 위에는 어린나무들이 

흰 나비를 맞이한다


빌딩의 붕괴가 유령처럼 가볍다


돌과 돌의 충돌

잔해들이 융단처럼 깔린 숲

회전문은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폐허는 쉽지만

도무지 폐허를 만나기 어렵다


신호의 전환을 기다리며 

허락된 벽을 찾는다


총알이 몇 군데 박힌 왼쪽 가슴

시간의 격차를 두고 달아나는 토끼들이

검게 탄 벽을 환대하는 동안


밤하늘에 새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나약한 깃털에 불이 붙었다

대지에는 불꽃이 떨어진다


늙고 힘없는 불꽃이 과육처럼 쪼개진다


수레바퀴는 삐그덕거리며

아무 일 없듯 다시 노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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