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의 전환을 기다리며
노루 떼가 요양원 밖으로
다급하게 뛰어나온다
길 위에는 어린나무들이
흰 나비를 맞이한다
빌딩의 붕괴가 유령처럼 가볍다
돌과 돌의 충돌
잔해들이 융단처럼 깔린 숲
회전문은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폐허는 쉽지만
도무지 폐허를 만나기 어렵다
신호의 전환을 기다리며
허락된 벽을 찾는다
총알이 몇 군데 박힌 왼쪽 가슴
시간의 격차를 두고 달아나는 토끼들이
검게 탄 벽을 환대하는 동안
밤하늘에 새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나약한 깃털에 불이 붙었다
대지에는 불꽃이 떨어진다
늙고 힘없는 불꽃이 과육처럼 쪼개진다
수레바퀴는 삐그덕거리며
아무 일 없듯 다시 노동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