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뿌듯 Sep 07. 2024

29. 할머니랑 사느냐, 꿈을 좇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1등을 당해버렸다

 중학교의 마지막 해. 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라서 같은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선생님과의 단독상담 시간이 여러 번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좀 하는 자원(?)을 시내의 학교로 가지 못하도록 담임선생님의 역량이 총동원되었다. 왜냐하면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은 여주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지은이도 여주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지은이는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썼기 때문에, 시내 고등학교 문예부를 지도하는 선생님에게 스카우트당했다. 같은 무리였던 수영이도 집이 여주시내로 이사를 가기로 되어 있어서 지은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다. 신대륙을 탐험하는 탐험가들처럼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학교에서 모험을 시작하는 두 친구가 부러웠다.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티켓은 나에게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

      

 나도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고 싶었지만, 할머니랑 사는 형편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생부터는 본격적으로 늦은 시간까지 야자를 해야 하는데 밤늦게 끝나서 나를 데리러 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의 막차를 탄다 해도 대신에 도착하면 늦은 밤이라서 혼자 집까지 올 수가 없었다. 나이 많은 할머니를 매일 밤늦게 마중 나오라고도 할 수 없었다. 주 6일을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만큼 경제적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자주 다녀간 시기였다.      


 하지만, 어차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지은이와 매일 볼 수 없는 것도, 더 넓은 곳으로 가서 공부하는 것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이었다. 깔끔하게 미련을 버렸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내 삶과 공부를 이어가자고 다짐했다. 나의 옆에는 나를 세상에서 최고로 생각하는 나의 할머니가 있으니까. 할머니도 보살펴야 했고, 나도 할머니의 보살핌이 여전히 필요했다.

      

 이상하게도.. 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아빠와 새엄마는 고등학교 진학에 있어서 나에게 거는 기대가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그럼 도대체 그 많은 핀잔과 걱정 섞인 비난은 왜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아빠와 새엄마의 관심으로 나는 할머니랑 살면서도 여주에 있는 큰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이 가만히 있을 때는 열심히 채찍질을 가하면서도 막상 달리기 시작해야 할 때는 방관하는 느낌? 그런데 나도 이러한 방관에 동조했다. 할머니랑 떨어지기 싫기에 포기해야 하는 커다란 기회!  



 그리고 다짐했다. 나를 부정하고 미워하는 그들에게 나의 역량을 보여주기로.

 

적어도,


"네가 할머니랑 살아서 이 모양 이 꼴이야!!!!"



라는 이야기기 그들 입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2학기 기말고사는 고입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이들 대부분은 고입에 들어가지 않는 시험을 대충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나도 영향을 안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중학교 마지막 시험을 그렇게 치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평소대로 공부를 했을 뿐인데... 받은 성적표의 등수는 1등!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는 1등을 했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1등을 당한 느낌? 아무도 달리기 싫은 경기에서 혼자 열심히 달린 나. 미련한 건가, 아둔한 건가. 1등을 하고도 이 찝찝한 느낌은 뭐지?


 이제 본격적으로 인생의 분기점에 온 느낌이었다. 다 함께 같이 가는 것들로부터의 해방. 그전까지는 부모님의 부재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왠지 지금부터는 티가 많이 날 것 같은 이 느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자신의 능력만큼 나아가야 하는 그런 시기가 온 것이다. 그 첫발부터 왠지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내 페이스대로 가기로 했다.


 아니 가야만 한다.


 그러니 가자! 내가 살고 있는 여기! 할머니 옆에서!





* 개학하고 제대로 된 두 주네요. 길거리의 나무가 점점 옷을 입어가고 있습니다. 늦여름 같은 가을을 잘 맞이해 보아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24화 28. 아빠를 싫어하나요? 좋아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