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트바히르에서의 아름다운 기억과 겔리볼루 방문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아가 창밖을 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많다.
어젯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엔 별이 있던 것도 같은데...
지난밤 멋진 야경만큼은 아니더라도 맑고 청명한 아침을 기대했는데 음침하게 잔뜩 흐린 하늘에 바다색 마저 어둡다.
먹구름들 사이로 해의 붉은 기운이 조금은 보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장관은 아니다.
짙푸른 에개해 너머 멀리 보이는 차나칼레의 뽀얗던 건물들도 오늘 아침엔 우중충해 보인다.
서서히 여행을 마무리하며 튀르키예를 떠나야 하는 내 마음과도 같이 우울하다.
아침 8시 30분, 식사 시간이 되어 2층 주방으로 내려가니 이게 웬일인가?
식탁엔 수십여 가지의 음식이 잔뜩 차려 있다. 많은 음식으로 테이블이 작아 사이드테이블에도 과일과 야채들이 올려져 있다.
그런데 아직도 덜 나온 음식이 있는지 주방에서는 주인 레샤트(Resat)씨가 요리를 하고 있다.
과일 종류만 해도 감을 비롯해 사과, 자두, 블루베리, 오렌지, 만다린, 포도, 배 들이 준비되어 있고 쨈 종류도 이름 모를 쨈이 몇 접시나 된다.
특별히 권해주는 참깨 마요네즈 소스를 먹어보니 고소하고 달며 약간 짭짤한데 빵에 발라먹으니 아주 맛나다.
레샤트씨는 이것보다 조금 묽은 참깨 마요네즈를 매일 아침 식전에 두 스푼 씩 먹고 있는데 건강에 아주 좋다며 자랑을 하신다.
우리나라에서도 들기름을 식전에 한 스푼씩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얘길 들은 적 있는데 그런 음식과 비슷한 것이 튀르키예에도 있나 보다.
너무나 정성스럽게 그리고 다양하게 차려진 아침 만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차려진 음식을 그냥 앉아서 먹는 게 미안할 정도다.
취향을 고려해 커피와 차이까지 계속 채워주시며 혹시라도 부족한 게 없는지 계속 살피신다.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함께하자고 권하자 옆 소파로 오셔서 함께 했는데 우리의 아침 메뉴와 반대로 아주 소박한 아침 식사를 하신다.
음악을 계속 틀어 놓아도 좋겠냐는 물음에 우리는 Why not?
사실 어제 오후에 숙소에 들어서면서 잔잔히 들리던 음악 소리에 여느 숙소와는 달라 조금 놀라긴 했다.
딸이 좋아해서 틀어놓은 음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인 레샤트씨가 틀어놓은 음악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어제 늦은 밤까지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는 중에도 조용한 음악이 집안 전체에 들렸는데...
낭만도 감성도 풍부하신 분이다.
여행 중 묵었던 숙소에서 이처럼 음악을 틀어 놓는 숙소는 처음이다. 그런데 전혀 나쁘지 않고 오히려 나는 이런 분위기의 숙소가 너무 좋았다.
아침식사를 하는 짧은 시간이지만 레샤트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식사를 함께하니 행복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시며 많이 권해주신다.
퇴역하신 후 혼자 지내신 시간이 많아 사람이 그리우셨던 건지 대화를 매우 좋아하신다.
여유 있고 멋진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라 생각되니 내가 기분이 좋다.
우리도 레샤트씨의 고마움과 정성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간 부채와 거울을 선물했더니 매우 흡족해하신다. 그리고는 바로 주방 벽에 붙여놓으시며 매우 뿌듯해하신다.
더불어 우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붙여놓고 싶다며 숙소에서 지낸 느낌을 한글로 써 달라는 부탁을 하신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썼다.
“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당신을 꼭 만나길 기대합니다.”라고...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친절하고 정 많은 한국 친구들로 우리를 기억하겠다는 레샤트 씨의 환대에 우리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과 항상 건강하시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킬리트바히르(Kilitbahir)의 작은 마을에서 멋진 튀르키예인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숙소 옆 킬리트바히르 성(Kilitbahir Castle)에 방문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우리가 첫 방문객인 것 같다.
킬리트바히르 성은 ‘바다의 자물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위에서 보면 하트 모양으로 된 성이다.
차낙칼레에 있는 요새(Kale-i Sultaniye) 맞은편에 있는데 이 성은 1463년 Fatih Sultan Mehmet에 의해 건설되어 가장 좁은 지점에 위치해 다르다네넬스 해협을 통제하고 적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해 지었던 요새이다.
성은 내벽과 외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뜰에는 7층 높이의 삼각형 탑이 있는데 성이 꽤 크고 무척 견고해 보인다.
Kilitbahir 성은 튀르키예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적지 중 하나라고도한다.
성 외벽으로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 그런지 출입이 금지다.
높은 곳에서 확 트인 바다의 전경과 마을 전체를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어 아쉬웠다.
성 안을 걷다 보니 조그마한 원형 극장의 유적도 보인다.
망원경과 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에 들어갔는데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이자 지도 제작자였던 '피리 레이스(Piri Reis)'에 대한 유물이 있는 곳이었다.
피리 레이스는 바다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 그 당시 전쟁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6세기 무렵의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서해안과 브라질 해안을 정확하게 그린 유명한 인물이다.
또한 선원들에게 꼭 필요한 책 '바다의 책'을 기술하여 지중해 연안, 섬, 횡단, 해협, 만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폭풍 발생 시 피난처, 항구에 접근하는 방법, 항구로 가는 정확한 경로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스탄불에는 그의 이름을 딴 대학교까지 있을 정도이니 튀르키예의 영웅임에는 틀림없나 보다.
그 당시에 생활모습이 담겨있는 일상용품과 농기구 등은 물론 전투 시 사용된 무기, 갑옷 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성에서 나온 우리는 다르다넬레스 해협의 바다 주변의 풍경을 좀 더 즐기기 위해 해변 도로를 달리고 있다.
다행히 아침에 잔뜩 머물렀던 먹구름은 사라지고 맑은 하늘로 변하니 바다색도 달라진다.
짙푸른 색으로 평온하고 호수처럼 잔잔하다. 어찌 이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싶다.
차에서 내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바다라 바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이런 풍경을 보면서 잠시 살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일 것 같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과 바다향이 나는 작은 마을 냄새 그리고 한적한 도로와 부드러운 햇살...
이런 길이 끝이 없다면 계속 달리고도 싶은 마음이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풍경들이 한국에 가면 몹시 그리울 것 같다.
약 40분 정도 더 운전하니 “1915차낙칼레 브리지”가 보인다.
1915년 연합군과 튀르키예의 전쟁에서 승리(Gallipoli Campaign)한 기념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1915 Çanakkale Bridge'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약 5년간의 공사 끝에 2022년 3월 18일에 개통된 다리로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회사와 튀르키예 회사들이 합작해 완성한 다리이다.
대교의 길이가 3,563m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라고 하는데 이 다리의 개통으로 페리를 이용해서 건너던 아시아와 유럽 대륙은 자동차로 6분이면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 이름이 1915이며 교차점의 높이가 318m이고 개장일이 3월 18일인 것은 모두 숫자에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이 모든 숫자는 1915년 3월 18일 갈리폴리 전투의 해군 작전에서 오스만 해군의 승리 날짜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붉은색 쇠기둥 2개가 마치 다리를 들고 있는 듯한데 거기에서 번쩍번쩍 불빛이 나온다.
다리에 다가갈수록 더 위엄 있고 멋지다. 대한민국의 기술과 노력이 자랑스럽다.
어려운 기술을 우리 한국의 기술과 함께 해내었다니 가슴이 더 뿌듯해진다.
겔리볼루(Gelibolu) 마을을 방문했다. 이 마을의 중세 이름은 갈리폴리였다고 한다.
인구는 약 5만 명 정도 되는 마을인데 도시 이름은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도시"를 뜻하는 단어인 "칼리폴리스"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차나칼레 주에 위치한 도시로 마르마라 해와 에게 해를 이어주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유럽 쪽 도시이다.
오스만 튀르크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정복한 도시로 이때부터 갈리폴리는 튀르키예 발음인 겔리볼루로 불리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패망당시에는 이 도시는 그리스인의 것이 되어 그리스인들이 살았으나 그리스-터키 전쟁으로 다시 튀르키예 땅이 되자 그리스 인들은 쫓겨나고 지금의 튀르크 인들이 살게 된 도시이다.
도시가 무척 깨끗하고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구 근처에 아주 조그마한 박물관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오전에 킬리트바히르 성에서 보았던 ‘피리 레이스(Piri Reis)’에 대한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그가 태어난 곳이 겔리볼루라서 이곳에 그에 관한 기록과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나 보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내부에 들어가 보니 의외로 흥미 있는 유물들이 보였는데 지도와 선원이 사용하는 무기, 선원 모형 그리고 유화로 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냥 지나쳐도 모를 만큼 아주 작은 박물관이라 좀 더 박물관에 대해 홍보를 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도 생긴다.
갤리볼루(Gelibolu)는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어난 ‘갈리폴리 전투’로 유명하다.
The Dardanelles Campaign(다르다넬레스 해전)이 이 갤리볼루의 전쟁의 시작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연합국이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해서 벌인 전투인데 세계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전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처칠이 이끄는 연합군이 당연히 이길 줄 알았지만 무스타프 케말이 이끄는 투르크 인들의 결사 항전으로 처칠이 이끄는 연합군이 패한 전투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프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가 영웅이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갤리볼루에서 아타튀르크는 최고의 영웅 대접을 받는 인물로 거리 어디에서나 그의 초상화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모두 5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유해가 이곳에 묻혀있어 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침 이 전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많은 전쟁물들이 남겨 보관되는 전쟁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 당시 Anzac(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튀르키예군을 상대로 접전을 벌이다 많은 희생자를 내었는데 이후 시간이 흘러 뉴질랜드와 튀르키예는 서로의 유해들을 발굴하고 유품들을 찾아주는 그런 과정을 진행했나 보다.
박물관에는 두 나라가 서로 힘을 합해 발굴하는 사진과 과정들이 담긴 내용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한편 전쟁에 사용되던 대포알과 총들이 전시되어 그 당시 전쟁의 끔찍함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고 있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겔리볼루 마을을 잠시 산책하는데 마을 전체가 차분함이 느껴진다.
바다 옆에 접한 아담한 마을과 항구가 시끌벅적하기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했고 마을 번화가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관광도시가 아니다 보니 분주하기보다는 시장 분위기도 북적댐이 없다.
다양한 가게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호객 행위도 전혀 없고 오히려 낯선 동양인들의 출현에 우리 부부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걷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미디에돌마(Midye Dolma,홍합밥)를 팔고 있는 분이 계신다.
이번 튀르키예 여행에 와서 처음 보는 미디예돌마이다.
홍합을 찐 후에 간을 한 쌀을 넣어 다시 쪄 내는 음식이다.
예전엔 이스탄불에서 자주 보던 음식이었는데 갤리볼루에서 처음 보다니...
바닷가 마을이라서 그런지 싱싱한 미디예돌마를 맛보는 것 같아 자꾸 먹었더니 무려 내가 먹은 홍합밥만 해도 7개나 된다.
직접 홍합을 열고 레몬을 뿌려주시면서 권하는데 나는 신맛이 강해 그냥 먹는 편이 훨씬 맛이 좋았다.
오늘 방문한 갤리볼루는 전쟁의 승리를 얻어낸 도시였지만 그만큼 승리에 따른 희생이 많은 도시였다.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는 어느 편에도 있을 수 없다.
파괴와 죽음,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상처와 회환이 남을 테니까 말이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많은 걸 생각해야 한다.
조용한 갤리볼루의 거리를 걸으며 전쟁에 대해 그리고 희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만약 전쟁이 이곳에서 없었다면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도시"를 뜻하는 아름다운 낭만 도시 '갤리볼루'로 남았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