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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을 이스탄불에서

이스탄불 여행

by 담소

우리의 한 달 가까운 기간의 마지막 여행지는 이스탄불(Istanbul)이고 귀국 비행 탑승 시간은 밤 12시 50분이다.

오늘은 그동안 우리의 발이 되었던 렌터카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스탄불 명소와 박물관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스탄불이 세 번째 방문인데 몇 번을 방문해도 질리지 않는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다.


마지막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출발~~



제일 먼저 탁심광장에 내려 가까운 이스틸클랄( İstilklal) 거리에 왔다.

다행히 걸어 다니기에 참 좋은 날씨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가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고 신나게 만든다.

몇 년 전엔 밤 시간에 이스틸클랄 거리를 거닐며 밤의 화려한 분위기를 경험했는데 오늘은 아침에 걷고 있으니 분위기가 다르다.

시끌 거리고 북적한 밤거리가 아닌 아침의 이스틸클랄 거리는 차분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아침의 이스틸클랄 거리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안토니오 성당(St. Antuan Kilisesi)을 찾았다.

이스틸클랄 거리의 최초의 건축물로 이탈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진 성당이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화려한 장식의 예수상이 가장 먼저 눈에 뜨이고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 내부를 우아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침에 들어오는 햇살에 점점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더 화려해지고 이내 성당도 햇살과 함께 그윽해진다.

이슬람 국가에서 이스탄불의 가장 중심가에 세워진 성당이 조금은 낯설지만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그들의 포용 정책에 마음이 편해진다.

성 안토니오 성당 외부와 내부


성당을 나와 조금 지나자 Mevlevihanesi Museum을 만나 들어갔다.

며칠 전 코냐를 방문했을 때 메블랴나와 수피즘에 대해 많은 걸 보고 왔는데 이곳에서도 볼 수 있어 내부로 들어가려고 티켓박스에 들르니 반갑게도 지금은 튀르키예 축제기간이라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수피파의 신학자인 mawlawi학자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그의 삶의 기록을 전시하고 메블랴나의 종교와 수련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는 자그마한 박물관 겸 공연장이었다.

이곳에서 오늘 저녁 8시에 sema춤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뜻밖의 소식에 우리는 밤에 이곳을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이스틸클랄 근처에 있는 67m 높이의 갈라타타워(Galata tower)를 방문했다.

갈라타 타워


갈라타 탑은 제노바(Genova)인이 세운 탑이다.

비잔틴 제국이 서서히 기울어 가는 상황을 보면서 그들의 새 주인이 될 튀르크 인들과 잘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비잔틴 제국이 망한 후에도 100여 년이나 갈라타 지역에서 제노바인들이 살 수 있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오스만 튀르크 정부가 제노바인들을 위한 자치제도를 폐지하게 되고 서서히 갈라타에도 터키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6세기 이후에는 갈라타 탑이 기상 관측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갈라타 타워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방문 때에는 대기줄이 길어서 전망대까지 오르지 못했는데 다행히 우리는 박물관 패스권을 구입한 탓에 따로 티켓을 사지 않고 바로 전망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

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전망대에는 중앙에 크지 않은 홀이 있고 홀을 싸고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365도 돌면서 이스탄불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복도로 나가 바깥 전경을 보니 가슴이 확 트이고 눈앞에 펼쳐진 이스탄불은 매우 유니크하고 아름답다.



멋진 돔 모양의 모스크에서 높이 뻗은 미나레들이 보기 좋게 솟아있고 바다를 낀 도시 풍경이 평화롭다. 게다가 육지를 연결하는 멋진 다리와 붉은 지붕들이 에워싸고있어 도시 풍경이 한층 운치가 있고 아늑한데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니 더 빼어난 전경이다.

한참을 머물며 경치에 빠져들다 내려왔다.


갈라타 타워에서 내려와 karakoy항구 근처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하기로 했다.

나는 미디에 에크맥(Midie ekmek), 남편은 발릭 에크맥(Balik Ekmek)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내가 주문한 홍합을 싸고 있는 빵이 너무 두터워 나중엔 홍합만 골라 먹어야 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 에윱(Eyüp)지역에 있는 '피에르 로티(Pierre loti)'를 가는 배는 다행히 바로 앞 항구에서 탈 수 있었다.

배를 타고 금각만을 따라 들어가는 해변의 경치가 아름답다.

맑개 개인 날 파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니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해양경찰서도 보이고 멀리 높은 곳에 있는 멋진 붉은 벽돌의 그리스 정교회건물까지도 잘 보인다.


피에르 로티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로티 언덕으로 가겠지 생각하고 따라갔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로티 언덕이 아닌 '에윱술탄모스크(Eyüp Sultan Camii)'였다.

이곳은 예루살렘, 메카, 메디나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지로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에윱’은 마흐메트의 지원자였던 ‘아부 에윱’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는 전쟁 중에 마흐메트를 보호하다 적에게 포위되어 숨을 거두고 성밖에 묻혔다고 알려졌으나 기적적으로 그의 묘소가 발견되었다.

마흐메드 2세는 에윱의 묘가 발견되자 그곳을 성지라 칭했고 그 장소에 모스크 '에윱술탄모스크(Eyüp Sultan Camii)'를 만들도록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역대 술탄들이 즉위할 때마다 ‘오스만의 검’을 받는 중요한 의식이 행해지고 있고 튀르키예 내에서 최고의 순례지로 알려져 있어 전국에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피에르 로티 언덕을 방문하는 사람보다 모스크를 찾는 현지 참배객들이 훨씬 더 많았다.

중앙에는 100년이 넘는 웅장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고 그 앞엔 분수가 힘차게 불을 뿜고 있어 그런지 마치 규모가 엄청난 공원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계획에 없었던 유명한 모스크를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에윱술탄모스크


아이러니하게도 피에르 로티 언덕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건 에윱 술탄(Eyüpsultan) 공동묘지였다. 이 묘지엔 이 장소의 이름을 갖게 한 에윱 술탄(Eyüp Sultan) 무덤 외에도 많은 중요한 사람들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 묻히려는 튀르키예인들이 많아 무슬림 묘지가 형성된 것 같기도 하다.

튀르키예인들도 '명당'을 찾고 있나 보다.



피에르 로티 공동묘지


규모가 큰 공동묘지를 돌아 마침내 피에르 로티(Pieer Loti) 언덕에 올랐다.

이곳은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로티와 이스탄불의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이 결국 한 여인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은 슬픈 사연이 있는 곳이다.

피에르 로티는 사랑했던 여인이 죽은 후에 튀르키예로 돌아와 매일 이 언덕에 와서 그녀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피에르 로티 언덕에 오르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이고 애틋한 사연이 담긴 언덕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다.

언덕에 올라와 풍경을 바라보니 정말 멋지다.

피에르 로티가 자주 와서 커피를 마셨던 카페를 방문했지만 이미 카페는 만원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골든 혼을 바라보며 언덕 위의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려 했건만....

모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 카페를 찾았나보다.

피에르 로티가 찾았다는 카페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발랏(Balat)'지역에 내렸는데 속된 말로 튀르키예에서 요즘 힙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원래 유대인들이 살던 곳으로 유대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커뮤니티의 중심지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낙후되었던 지역을 튀르키예 정부에서 지원을 해서 마을을 재정비하고 단장을 해 지금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주로 젊은 커플들이 많이 보이고 곳곳에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Balat 거리

예쁜 파스텔 색으로 단장한 집도 있고 벽에 현대적인 그림을 그려 놓은 집도 있도 있어 유럽풍의 거리를 연상케 하지만 아직은 관광객을 끌기엔 뭔가 부족한 듯싶다.

대부분 골목길엔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도 단장되지 못한 채 낙후된 집들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더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

골목마다 들어서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의 화려함에 지나치게 상업화된 느낌도 든다.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우리는 발랏 여기저기를 산책하며 바클라바를 파는 가게에 들러 당 충전을 하고 커피를 마시니 조금 전 피에르 로티에서 느꼈던 속상했던 기분이 풀리는 것도 같다.

역시 속상하거나 스트레스가 있을 때 나에게 단 음식은 약이다.


돌로 된 골목길을 걷는데 조금 전에 배를 타고 오며 보았던 붉은 벽돌로 웅장하고 아름답게 지은 건물이 눈앞에 있다.

몽골의 성모 마리아(Church of St. Mary of the Mongols)이자 ‘피의 교회’라고 불리는 이 교회는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 정교회이며 학교이다.

Church of St. Mary of the Mongols

마흐메드 2세의 정복당시 피를 흘리는 유혈 사태가 벌어져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 수도원의 역사도 제대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몽골의 칸으로 시집을 간 황려 마리아가 기증해서 수도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리아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자 그녀의 아버지는 다시 몽골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하고 수녀가 되었다는데... 이 수도원에 수녀 마리아가 잠들어 있을까?

이곳은 콘스탄티노플에 남아있는 유일한 비잔틴 교회 중 하나로, 한 번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적이 없으며 항상 그리스 정교회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국민들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도시 한가운데 이런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있다니 놀랍다.



발랏지역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우리는 다시 에미뇨뉘(Eminönü)에서 내려 모자이크 박물관(Mozaik Museum)에 들렀다.

이 박물관은 오스만 침략 이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머물던 곳으로 모자이크를 발굴하여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었다.


그림의 내용은 다양한 동물, 인간이 동물을 포획하는 모습 그리고 자연을 의인화한 것 등 다양한 주제가 보이는데 마치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나타낸 것으로도 보인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선명하고 섬세한 작품으로 남아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모자이크화

안뜰 전체가 모자이크로 장식될 정도로 예술적 측면과 장면 묘사의 풍부함 측면에서 모두 웅장하다.

모자이크의 색감과 디자인 또한 매우 정교하다.

그 당시에 이렇게 섬세하고 구체적인 그림의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온전하게 발굴, 복원되었다는 사실에 또 놀랍다.

1200~1300년 경 당시 비잔틴 왕궁에서 밟고 다니는 바닥들이 모자이크로 되어있었다면 바닥이 아닌 다른 곳은 어떠했을지 화려함의 극치가 실감이 안 난다.



우리는 다시 아랍.이슬람 예술 박물관(Turkish and islamic art museum, Türk ve İslam Eserleri Müzesi)을 방문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이슬람 예술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한때 오스만 제국의 재상이었던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ha)의 저택이었다.

이 박물관에서는 터키 이슬람 문화와 예술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장소로 1,700점을 포함하는 박물관의 카펫 전시품 중 금박으로 된 카펫이 내 눈길을 끈다.

다양한 카펫들 전시관

전시실에는 이스탄불 여성복들과 튀르키예인의 삶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들, 특히 머리에 쓰는 터번의 발전과정 등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전시실 몇 군데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리 안에 소중히 보관된 코란을 보자 문득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코란을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보관하며 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소에 보관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코란 스탠드

우리는 이 박물관에서 튀르키예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이어주는 귀한 전시물들을 보면서 그들이 살아온 방식과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어 튀르키예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방문해 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박물관이다.




카라쾨이(Karaköy)에 내려 갈라타 다리 근처 이집션 바자르(Egyptian Bazaar)에 들렀다.

이스탄불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그랜드 바자르(Grand Bazza)와 함께 많이 찾는 이집션 바자르는 이집트에서 이스탄불로 운반되어 온 향신료를 파는 시장이 있던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름이 ‘이집션 바자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향신료와 약초, 과자, 치즈 등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고, 식품과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기 때문에 그랜드 바자르에 비해서 꽤 서민적인 분위기이다.

이집션 바자르

한국에 가지고 갈 로쿰(Lokum)을 사기 위해 돌아보는데 로쿰 가게는 많이 들어서 있지만 팔고있는 로쿰의 유형들이 몇 년 전 우리가 방문했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

조그마한 크기의 일반 로쿰보다는 크기도 크고 내용물도 고급지게 구성된 한마디로 더 값비싼 로쿰을 주로 내놓고 팔고 있었다.

하긴 모든 게 가격이 다 오르는데 이곳이라고 그대로일까 싶어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고급(special)의 비싼 로쿰을 사고 양손에 선물을 무겁게 들자 이제야 진짜 귀국을 하는 기분이다.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 이들을 생각하니 행복해진다.


이제 오늘 마지막 방문지로 가기 위해 갈라타 다리를 지난다.

갈라타 다리는 교각이 없는 부교라고 한다.

두 단으로 나뉘어 다리 하단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다리 위에서는 정어리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느라 하루종일 다리에 기대어 있다.

갈라타 다리 위에는 다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하지만 반대로 다리 밑에서는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고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장면 모두 갈라타 다리의 독특한 밤 풍경이다.


서서히 해가 지며 노을이 짙어진다.


세마춤이 공연되는 이스틸클랄(Istiklal) 거리에 있는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벌써 박물관에 들어가려는 방문객들이 벌써 길게 줄을 서 있다.

공연을 위해 100명만 한정적으로 들어가는 인원이라는데 우리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질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공연 시작 45분 전이다.

공연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컸지만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30분 이상 서서 기다렸다.

행운이었을까? 다행히도 우리는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세마춤을 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시작 5분 전, 누군가가 향을 피우며 관객석을 다니자 공연장 전체가 향으로 가득하다.

춤을 추기 위한 실내의 정화(?) 작업이라도 하는 걸까?

드디어 정각 밤 8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웅성거리던 공연장 내가 갑자기 숙연해지고 조용해진다.

그런데 무용수들은 춤은 추지 않고 연주자와 무용수들, 그리고 두 분의 사제들과 함께 의식을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행동들로 의식을 시작하는데 약 20여 분이 지났을까?

의식을 마치고 그제야 예의를 갖추어 서로 인사를 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연주자들의 음악에 맞추어 약 8명 정도가 함께 하는 단순한 동작(춤)이 약 10여 분 반복되다가 이제 둘씩 쌍을 지어 춤을 추는데 이 춤 역시 같은 동작이 10여분 동안 계속 반복된다.

나는 내가 기대하고 있던 세마춤 동작이 언제 나오려나 이제나저제나 기다리지만 갑자기 음악과 춤이 멈추더니 무대에 있던 모두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게 아닌가...

헐... 이게 아닌데...

결국 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도 허무하게 일어서고 있다.

내가 기대한 세마춤은 하얀 망토의 긴 옷을 입고 터번을 쓴 남자 무용수들이 나와 빙빙 도는 몰입감 있는 춤이었는데 나의 기대와는 먼 다른 공연이었다.

이런 춤도 세마라고 하나?


모든 일은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우리가 이슬람 예배를 언제 눈앞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겠나. 그리고 일명 춤이라고 하는 이 의식의 춤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여행의 한 페이지에 끼워 넣는다.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공연을 봤는데 마음의 허기와 함께 뱃속 허기도 함께 온다.

밤 10시를 향해가는데 이스틸클랄 거리는 아침의 차분한 이스틸클랄 거리는 사라지고 인산인해다.

늦은 시간인데도 카페와 레스토랑 불빛은 여전히 화려하다.


늦은 밤 이스틸랄 거리

우리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드디어 공항리무진에 올랐다.

여행의 마지막 날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 이스탄불 이곳저곳을 바삐 다닌 탓에 다리도 몸도 무척 피곤한 하루였다.

하지만 주로 박물관을 방문했던 하루였던 탓에 튀르키예의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다양한 많은 것들을 보며 이해하고 알차게 마무리했다는 생각도 든다.




튀르키예 여행을 마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크고 작은 일도 생기고 당황스럽고 힘들 때도 있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서는 큰 불편함과 어려움이 아니었던 조금만 참고 이겨내면 해결되었던 일들이라 그것에 감사한다.

내가 여행을 하며 느끼고 배우는 것 중 하나는 나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예상 밖 일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대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당황스러워하기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고 생각하면 일이 쉽게 잘 풀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렇게 오랜 날들을 걸어 다닐 수 있는 내 건강함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다양한 많은 것들을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나의 열정과 오감에...

좋은 사람, 그리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나의 반쪽에...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이 여행을 끝낸다.





이 글은 2022년 9월과 10월에 걸쳐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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