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유적지가 있는 곳, 차나칼레를 방문하다.
오늘은 우리의 튀르키예 여정 중 가장 긴 거리의 이동을 하는 날이다.
차나칼레(Çanakkale)까지 가야 하는데 약 6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 옆엔 지중해가 펼쳐져 지루한 줄 모르고 고속도로에는 운행하는 차량이 많지 않아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튀르키예의 고속도로는 차선이 많고 넓어 운전하기 무척 편하다. 대신 통행료는 비싸지만 말이다.
시속 140km로 달리는 고속도로는 한가하다. 하지만 도로 한쪽에는 자동차 한 대가 심하게 부서져 있고 길 가엔 남자 한 사람이 누워있다.
경찰과 구급차가 와서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26년 무사고 운전자인 나도 이런 상황을 직접 보게 되니 무섭고 겁도 난다.
제한 속도가 140Km인 고속도로에서 대부분의 차들이 150km를 넘어 달리다 보니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나기 쉬운 상황이다.
나도 모르게 속도를 줄여본다.
우리가 튀르키예 여행에서 서쪽 가장 끝에 있는 도시, 차나칼레를 방문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가장 큰 이유는 '트로이(Troy)의 유적'을 보러 가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에 대한 복수에서 파생된 비극을 표현한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를 보고 싶은 이유는 덤이다.
'트로이의 전쟁은 정말 허구일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던 나는 차나칼레에서 트로이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적이 있다면 트로이 전쟁은 온전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다른 이유는 차나칼레 항구에서 배를 타고 다르다넬네스(Dardanelles) 해협을 가로질러 약 10여분 가면 '킬리트바히르(Kilitbahir)'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있는 성(城)에 가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1915년 2월, 영국이 이끄는 연합군 함대는 다르다넬네스 해협을 강제로 통과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이후 갈리폴리 반도로 상륙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 작전 역시 오스만의 철통 같은 방어로 결국 연합군은 패하게 된다.
튀르키예는 이 전투를 '갈리폴리 전투(Gallipoli campaign)'라고 하는데 튀르키예인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사실을 무척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킬리트바히르 성'은 이 승리의 과정에서 큰 몫을 해냈던 성이다.
우리가 킬리트바히르에서 오늘 묵을 숙소의 이름도 해전을 기리는 이름인 “다르다넬네스 1915”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대와 근대의 역사 현장을 넘나들 예정이다.
차나칼레에 도착하고 보니 도시는 예상외로 조용했다.
도로도 넓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은 넓은 규모의 도시로 관광지 분위기는 아니다.
트로이에 대한 관심을 가진 관광객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인 듯하다.
차나칼레에서 약 20여분 운전을 하니 트로이 유적지(Trojan Tarihi Milli Park)에 도착한다.
트로이 유적지는 수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로 1870년 독일의 사업가이자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에 의해 이 유적지가 처음 발견되었다.
발굴을 통해 이 지역에 8,000년 동안 사람이 거주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졌고 수세기 동안 트로이는 전쟁, 무역 등을 통해 발칸, 에게해 및 흑해 지역사이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150년 전에 시작된 발굴 작업은 고대세계와 그 당시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근거를 만들어주었고 그 시기를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연대기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유적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거대한 트로이 목마는 마치 관심이 멀어진 장난감이 된 양 왠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
단지 소설에 등장하는 허구라서 그런 걸까?
트로이 전쟁의 서막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준 선물 때문일 수도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 준다는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선물이 파리스(paris)에게 헬레나(Helena)를 납치하도록 했고 그리스의 스파르타는 헬레네를 다시 그리스로 데려오기 위해 트로이와 전쟁을 일으켰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파리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여신, 아테네의 분노가 전쟁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를 뺏긴 그리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가 트로이와 전쟁을 하고 오디세이의 현명한 지혜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에 건너가 결국은 목마와 함께 타고 온 그리스군들에게 트로이는 참패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신화가 허구일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나는 차나칼레의 트로이 유적지를 보고 신화가 아닌 실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유적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면적이 꽤나 넓다.
이 유적지는 재건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고학 유적지의 진정성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150년 동안 진행된 24번의 발굴을 통해 성채와 시대별로 많은 특징이 드러났다.
성채 주변의 23개 구역의 방어벽, 11개의 문, 포장된 돌 경사로, 5개의 방어 요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적지가 층층이 쌓여 층별로 각각 시대의 변천을 알 수 있도록 했는데 모두 9층의 기간별 거주지가 쌓여 있었다.
1층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2층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트로이의 번영기였고 7층은 특히 트로이의 전쟁에 해당되는 시기인데 거리와 개인 주택 안에서 유골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던 것으로 보아 트로이는 격렬한 싸움 끝에 종말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층은 로마시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튀르키예 여행을 하면서 이곳에 도착해 정작 트로이 목마를 보고 나면 '허무'
하다며 심지어는 '세계 3대 허무 관광지'라고 부르며 불명예스러운 곳이라고 하기도 한다.
기대를 잔뜩 하고 가지만 정작 가면 볼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방문한 트로이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트로이의 유적지만 제대로 둘러보더라도 결코 그런 말은 나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기원전 시대부터 지층의 변화 그리고 시대마다 쌓여 있는 유적들과 그 흔적들을 보면 '허무'라는 말은 결코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쌓인 지층을 통해 트로이의 시대별 변천 과정을 보는 듯했다.
마을에서 연주회나 시 낭송을 주로 했던 작은 극장, 오데이온(odeion)이 남아있고 우물의 흔적, 주택 단지 등이 남아 있었다.
어제 방문했던 에페소스만큼은 크지 않은 마을이고 많이 발굴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원전 3,000년 전부터의 그 흔적들을 층별로 걷어내 가며 차례로 발굴하여 공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트로이 전쟁을 호메로스의 단순한 서사시로만 치부하고 허구라며 단정했지만 독일 고고학자 슐레이만의 발굴로 인해 사실화되어 가는 상황이다.
트로이의 유적지를 방문한 나는 트로이 전쟁이 소설 속 허구가 아님을 확신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허구와 신화에서 역사가 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트로이 유적지 방문을 마치고 트로이 박물관(Troy Museum)으로 향했다.
이 박물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니 의외로 인테리어는 무척 현대적이다.
인테리어는 최소한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건물의 콘크리트 프레임은 전시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는데 투명한 지붕을 통해 햇빛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던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내부에 있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트로이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과 에게해 지역 그리고 차나칼레 지역 근방에서 나온 유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발굴된 유물들은 트로이에 족적을 남긴 트로이인들의 삶과 문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당시에도 아이의 무덤엔 장난감을 함께 묻어주는 풍습이 있었던 걸까?
무덤에서 발굴된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기자기하고 귀여워 지금 가지고 놀아도 훌륭한 장난감 유물들이다.
또한 죽은 이들을 넣는 관이 무척이나 정교하고 화려했는데 지위에 따라 세밀하고 화려한 조각들이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원전 그 오래전에도 지금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놀랍다.
청동기 시대 공예, 일상생활, 환경 관계를 설명하면서 현재까지 계승되는 직조법과 도자기 제작 및 요리 방법도 설명되고 있었다.
특히 에게해에서 상업 및 문화 교류가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는 트로이 원형 기하학 도자기들과 철 도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트로이 전쟁, 시인, 영웅들 및 디지털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흥미로웠는데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 멸망의 이야기를 3-4분가량의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나니 오래전에 보았던 트로이 영화와 오버랩된다.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 나이가 든 내가 봐도 재밌다. ㅎㅎㅎ
트로이 유적지와 박물관 방문을 마친 우리는 숙소가 있는 '킬리트바히르(Kilitbahir)' 마을로 가기 위해 차나칼레 바다공원으로 갔다.
바다공원에 있는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킬리트바히르로 가야 하는데 페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바다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차나칼레의 항구에 오니 오가는 이도 많고 분위기도 활기에 넘친다.
이 공원에도 트로이의 목마가 서 있는데 영화'트로이'에서 실제 사용된 목마를 영화 제작이 끝나고 난 후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조금 전 방문했던 트로이 유적지에 있는 목마보다는 작지만 영화 소품에 사용된 목마라서 그런지 더 멋져 보인다. 동시에 영화의 몇 장면들이 잔상이 되어 허공에서 어른거린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투, 아킬레우스의 죽음, 불타오르는 트로이 그리고 "Burn Troy!"를 외치던 그리스의 병사
명예와 죽음, 복수, 그리고 무모한 사랑으로 시작된 비극적인 파멸까지....
오디세이의 지혜로 만들어진 목마는 그 모든 비극적인 과정을 알 고 있는 듯 광장에 외롭게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 그 시대의 역사적 현장을 방문했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미련이 남는다.
해 저물 무렵 자동차와 함께 킬리트바히르를 향해 가는 페리에 올랐다.
점점 멀어져 가는 차나칼레...
차나칼레가 백색도시에서 차차 황금색 도시로 변해간다.
서서히 주변은 어두워지고 멀리 한 두 개씩 불빛이 들어오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약 10여 분간 배를 타고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 대륙으로 넘어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킬리트바히르에 도착했다.
인구가 600명이 채 안 되는 이곳은 다르다넬네스 해협을 마주하고 있어 마치 섬마을처럼 아담하고 조용하다.
식당도 2개 밖에는 없고 민가도 많지 않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숙소였다.
문을 두드리자 숙소 주인의 딸로 보이는 여성이 내려오더니 먼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한국말이 자연스러워 물었더니 몇 년 전 한국에서 5년 동안 경희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차나칼레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가 이곳에 묵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집에 온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친절하고 다정하며 사람들임을 느낀다.
숙소 안으로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이 들려오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기분도 좋아진다.
숙소 주인인 그녀의 아버지도 우리를 아주 따뜻하게 맞아 주시며 뜨끈한 차이와 비스킷을 내어 주셔서 우리 넷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의 튀르키예 여행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보시고 또 이 마을에 대한 설명도 열심히 해주신다.
혼자 지내시는 외로움을 숙소에 묵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적적함을 달래고 계실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딸을 위해 서울에 온 적이 있다며 딸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주신다.
서울에 대해 매우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그는 한국과 튀르키예는 매우 친한 나라로 두 나라의 관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분이셨다.
집 내부에 해군에서 사용하는 소품들이 보여 물었더니 역시 주인분은 터키 해군이셨단다. 자세히 둘러보니 재직 시 사용하던 총들과 모자 그리고 훈장 등이 거실 벽에 걸려있다.
무엇보다 숙소가 너무 아름다웠는데 다르다넬네스 해협이 바로 앞에 있어 멋진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머무는 3층 거실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압권이다.
바다 건너 차나칼레 항구를 불빛으로 수놓은 전경이 보기만 해도 낭만적인데 도시 한가운데 있는 차나칼레의 치멘릭 성채 (çimenlik kalesi)는 불빛과 함께 차나칼레 네온사인에 어울려 더 고혹적이다.
창문 아래로 숙소 바로 앞 항구를 보고 있노라니 배가 떠나고 도착하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매일 이런 풍경을 보며 사는 것도 큰 행복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된다.
내일 아침엔 해 뜨는 장면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벌써 설렌다.
이 마을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두 곳 밖에 없다. 그중 한 곳에서 저녁식사 메뉴로 흰살생선 튀김과 고등어 케밥을 먹었는데 흰 살 생선 튀김이 입에서 녹을 정도로 너무 맛있다.
내가 주문한 흰 살 생선은 싱싱함도 간도 부드러움도 딱 적당한 최고의 맛인데 남편이 주문한 케밥은 고등어를 싸고 있는 빵이 조금 거칠고 딱딱하다며 분리해서 먹는다.
생선 튀김 가격이 7,000원이고 고등어 케밥은 3,000원인데 신선하고 맛난 생선을 7,000원에 먹을 수 있다니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인 듯싶다.
레스토랑 바로 옆에 있는 킬리트바히르 성이 은은한 불빛을 받아 고풍스러운 자태를 보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성은 내일 아침 일찍 방문할 예정이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하는데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 그런지 밤바람이 무척 세다.
나뭇가지도 꺾어질 듯 휘청거리고 바로 앞 다르다넬네스 해협을 흐르는 바다도 크게 출렁인다.
오래 산책하기엔 마을도 작고 밤거리가 어두워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늦은 밤인데도 주방에서 틀어놓은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숙소 주인은 내일은 조금 더 추워질 거라며 우리에게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말씀해 주신다.
무척 친절하며 다정다감한 분이시다.
서서히 우리의 여행이 끝을 향해 간다.
매 순간이 더 아쉽다.
오늘 밤,
마시다 남긴 석류주로 아쉬움을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