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이 Oct 17. 2023

집에 멀쩡한 물건이 하나도 없네요.

버리는 건 줄 알았어요.


이사하던 날, 이사업체 직원들이 짐을 나르면서 했던 말들은 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침대 매트리스에 오줌 자국이 많네요

이 서랍장은 고장 난  같은데요

여기 뒤쪽에 흠이 크게 났네요 알고 계셨나요?

, 이것도 가져가실 건가요 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집에 멀쩡한 물건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10 년차니 우리집 물건들도 10년을 묵었다.  성격이 털털한 편이라 매일 살림살이들을 부지런히 쓸고 닦지도 않았고 호기심 많은 아홉 살, 네 살의 아이 둘도 아주 적극적으로 가전과 가구들을 낡고 상하게 했다. 웬만한 것들은 전부 금이 가거나 깨져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것들도 두 아이가 예술혼을 불태워 멋들어지게 그림을 그려놓거나 스티커로 예쁘게 꾸며 놓았다. 이사업체 직원 분들이 처음에 집안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차던 것도 일견 수긍이 갔다. 남편과 나는 그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수줍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하, 아무래도 애들이 화가가 되려나 봐요.


다들 바쁜지 대답이 없었다. 참, 썰렁했다.





신혼 살림을 장만할 때 그나마 가장 고급스럽고 비쌌던 것들은 텔레비전과 소파였다. 지금은 둘 다 사라지고 없지만......


텔레비전 남편이 가장 아끼던 가전이었다. 그 당시 최신 유행하던 제품으로 살짝 휘어진 곡선의 화면에 60인치가 넘어서 자못 위풍당당했다. TV는 24 평의 아담한 신혼집 거실 한 가운데에 들어앉아 언제라도 버튼만 누르면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화면을 제공해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매일 퇴근 후에 그 앞에 앉아 영화나 스포츠 게임에 몰입하며 신나게 치맥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남편은 TV를 아주 애지중지했다. 곡선의 화면을 마른 걸레로 닦으며 흐뭇해하는 그에게 여자친구냐며, 질투나서 못봐주겠다고 농담조로 정도였다.


그러나 첫째가 두 돌을 넘길 때그녀는 너무나 허망하게도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돌잡이로 골프채를 잡은 아들이 본인의 소명을 다하고 싶었는지 장난감 막대기를 멋지게 휘둘러 그녀의 정중앙을 멋지게 깨부쉈다. 하필 화면 속 만화에서 못된 괴물들이 줄줄이 나왔 탓이었다.


순식간에 화면의 절반은 찬란한 무지개직선들에 점령되고 말았다. 아이는 신나서 점프를 뛰었으나 지켜보던 우리는 아주 놀랐다. 나도 엄청 놀랐으나 특히 남편은, 몹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한 30초쯤? 쉽게 입못하였다. 커다란 TV 앞에 두 무릎을 꿇고 절망하였다. 그런 남편을 보니 언젠가 이와 비슷한 장면을 어떤 현대 미술 퍼포먼스에서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제목은 죽어가는 디지털 연인을 바라보는 남자》 정도면 어울릴? 그날 남편은 정말 비통해했다.




 년이 지난 후 소파가 수명을 다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가위로 소파의 한 부분을 찢어놓은 것이었다. 아이는 얌전한 편이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속으로는 꽤 얄궂은 파괴 본능이 존재했다. 나의 사랑 듬직하던 소파는 성인의 중지 손가락 만한 크기의 자상을 입었다. 정 가운데에 위치한 치명상이었다.


이제는 내가 너무 괴로웠다. 집에 온 손님마다 일단 한번씩 앉아보면 다들 그 안락함에 감탄하고급 소파였다. 한때 불면증으로 괴로웠을 때 그나마 잠이 들어서 얼마간 침대로 쓰던 소파이기도 했다. 존재만으로도 거실이 화사해지는, 늘 보장된 안락함을 안겨주던 우리  자랑거리...... 고급스러운 베이지 톤의 소파가 잿빛 상처 하나로 인해 너무 초라하고 보기싫게 변했다. 내가 절망하자 남편이 어디선가 가죽을 구해와서 상처난 자리를 덧대었고 그 결과, 소파는 더 흉측하게 변해버렸다. 이리 덮고 저리 가려봐도 그는 예전의 아름답고 위풍당당하던 모습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마침내 우리는 때마침 소파가 필요하던 시댁으로 그를 입양보냈다. 용달차에 실려가는 소파를 바라보며 슬퍼하던 나의 모습은 항상 포근히 안아주던 그와 이별한 여자》 정도로 제목을 붙일 수 있겠다.





TV와 소파를 차례대로 떠나보내고 마음 아픈 이별에 한동안 정신 못차리던 우리 부부는 그때부터는 필요하면 가성비 좋은 저렴한 가전과 가구들 위주로 골라 사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고급의 물건들은 일절 집에 들이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지금 둘째가 세 돌이니 5후쯤의 일이 될 것이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이사업체 팀장님이 농담하듯 던진 말 영 부끄럽긴 했다.


이사는 좋은 곳으로 가면서 물건들은 왜 이렇게 아끼세요ㅡ


전부 버리는 것들인  알았는데 우리 부부가 다 가져가겠다고 우기니 웃으시며 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결심이 변하진 않을 듯하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속상해하는 일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사치의 끝은 가구와 그릇이라 했나. 5년, 꼭 5년 후에는 취향을 고려해서 새로 구입한 가구와 가전과 물건들로 이 집을 아름답게 채워보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우리 부부였다.

이전 08화 이사하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