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구조 진단 | 목표 없이 달린 시간의 대가
글을 써내려가다 말미에서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Go Back)'을 플레이 리스트에 꺼내어 재생한 후
적던 글을 이어 적어본다.
26살의 20대 고백이라니,
언젠가 한번 진지하게 돌아봤다면 그 나이 때 이미 알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을 법한 이야기.
나는 마흔의 자리에서 씁쓸한 미소로 가사에 마음을 맡기고 나를 고백한다.
진단 단계마다 길고 지루한 상태 카드들을 하나씩 꺼내 늘어놓았다.
이제부터는 그 카드들을 다시 정리해 내가 서 있던 위치와,
어렴풋이 상상해 왔던 목표를 나란히 놓아보려 한다.
차이를 만들었던 원인을 찾기 위해서다.
먼저 목표부터 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이번 진단의 첫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드러났다.
실제로 나는 목표라 부를 만한 뚜렷한 문장 하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지난 화에서 말했듯, 나는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단적이었고, 단편적이었다.
새로운 회사로 옮길 때도,
그다음 회사로 자리를 옮길 때도 내 목표는 늘 비슷했다.
지금 맡은 일을 잘하는 것.
그 이상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 한켠에는 늘 이런 인식이 자리했다.
나는 직장인이고,
나는 디자이너고,
언제까지나 어딘가에
내 자리가 보장될 수는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목표 설정은
오히려 더 일찍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늘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
언제나 늦은 후회가 남는 선택을.
그럼에도 진단은 가능하다.
없었던 목표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 시점의 내가 어렴풋이 기대하고 있었던 상태를
목표처럼 놓고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은 내가 가진 것과 내가 바랐던 것 사이의 차이였다.
어떤 것은 성향이었고, 어떤 것은 분명 구조였다.
전체를 한 번에 놓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계도로 치면,
나는 애초부터
방향을 바꾸는 장치를
도면에 넣지 않았다.
어느 도면의 어느 부분에도.
구조와 역할을 다뤘던 화에서 말했듯, 방향을 결정해야 할 선장은 존재했지만
그는 늘 자신이 원할 때만 방 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가자.”
“말자.”
“조금 쉬었다 가자.”
그리고 그 말들은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을 받을 조타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핸들이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내려온 지시는 그렇게
'허공에 떠돌다 이내 사라졌다.'
나는 이유와 바람과 일과 재미를 그득그득 실은 채
점점 덩치가 불어난 트럭을 몰고 있었다.
그 트럭이 어디로 가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언덕을 오를지,
벽에 부딪힐지,
전복될지.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 역시 묻지 않았다.
그저 달릴 뿐이었다.
사실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불안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2화에서
일과 나를 동일시하며
멈출 수 없는 동력을 달았고,
3화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자산을
짐칸에 계속 쌓았고,
4화에서는
바쁨을 성장으로 착각하거나 포장했고,
5화에서는
컨트롤 타워 없는 붕괴된 구조를 확인했고,
6화에서는
외부에서 나를 가성비로 소비하며 짐은 더 쌓아갔으며,
7화에서는
경쟁을 오독한 채
속도를 더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트럭을
핸들 없이 몰고 있었다.
그럼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길이 평탄했고,
환경이 나쁘지 않았고,
운이 따랐다.
넘어짐을 상상할 큰 위태로움이 없었고,
그래서 딱히 멈출 이유도 없었다.
목표가 없었던 건
결핍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까웠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달리는 느낌이 좋았다.
바람이 좋았고,
속도가 주는 고요함이 있었다.
그 시점의 나는 불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만족은 점검을 미루게 만들었고,
점검의 부재는 조정 불능을 낳았다.
격차는 뒤처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방향을 조정할 수 없는 구조에서
속도만 유지한 결과였다.
이제 확실해진 것은 하나다.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이 구조로는 더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트럭에는 핸들이 필요하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 상태로는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다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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