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내가 약속이 있어서 먼저 찍고 갈게요."
사진 촬영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촬영 순서를 기다리던 어르신이 먼저 조명 앞으로 나서며 서두르신다. 다른 어르신들은 흔쾌히 양보해 주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조명 앞에 선 그분의 모습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경직된 표정이다. 손은 제자리를 모르고 허둥댄다. 그러다 몇 분이 지나면 표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다양한 포즈를 취하시며 점점 촬영을 즐기기 시작하신다. 재킷을 어깨에 살짝 걸쳐보기도 하고, 살짝 웃어 보이기도 하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이분들은 어떻게 이 끼를 숨기고 살아오셨을까?
카메라 렌즈 앞에서 느끼는 그들의 변화는 나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삶의 대부분을 침묵과 무표정으로 살아오신 80대 전후의 어르신들. 그동안 겪어온 삶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런데도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밝고 빛나는 모습들이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다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르신들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여행 같다.
처음엔 딱딱하고 차가운 석고상 같던 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인간으로 변한다. 렌즈를 통해 그 변화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사실 어르신들과 '사진 놀이'를 하고 있다. 그들의 잊고 있던 웃음을 되찾아 주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돕는 여행의 동반자가 되는 셈이다.
나는 사진 찍는 사회복지사다.
내 카메라의 렌즈는 단순히 외형을 찍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어르신들의 내면 깊은 곳으로 향하는 다리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단순한 사진 촬영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저는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
사진을 찍으며 깨달았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시간은 그들에게 주름을 주었지만, 나는 그 주름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본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걸어온 삶과 그 길 위에서 배어난 빛이다.
사진 촬영 후, 어르신들의 얼굴은 빛난다.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며, 어르신들은 수줍게 미소를 띠곤 하신다. 그 모습은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발견한 아이 같다. 내가 카메라로 담는 것은 그 순간, 그 감동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