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Feb 15. 2023

막내딸의  배신


 괘씸한 년, 내가 얼마나 저 때문에 고생을 하고 살았는데, 이 에미 생각은 눈에 낀 눈곱처럼 비벼버리곤 한다.      

 내가 딸들 키우면서 강조한 두 가지있었다. 하나는 너희 아비를 닮지 마라,  다른 하나는 아비를 찾아 만나지 말라. 그러면서 나는 엄포를 놨었다. 둘 중 하나를 어길 시에는 당장 나가 아비와 살고 날 다신 찾지 마라 했었다. 제 아비 때문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큰딸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나보다 깊고, 쌍팔년도에  부모가 이혼한 것이 흠이 덜 되는 외국인과 결혼하고 신랑 따라 떠나 버렸으니  내 말을 잘 따랐다고 할 수 있다.  늦둥이 둘째는 다섯 살도 안되어 지 아비와 헤어져 아비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원망도 없고, 미운 정 고운 정 따질 정도 없이 호적상 아비가 있다는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지 비를 닮아 고집 센 거야 두 년 다 황소고집들이었지만 무뚝뚝한 큰 애는 늦둥이 둘째에게 뭐든 양보하고 잘 챙겨줬다. 막내도  내가 오십 넘으면서 갱년기 증상과 돈에 쪼들리는 생활에  만사가 화나고 내 상황이 서러워 부리던 신경질과 잔소리를 받아 내다 보니 성격이 지랄 맞아졌지만 그거 빼곤 살갑고 애교도 있고 똘똘해서 내가 인생 헛살진 않았구나 생각하게 해 줬다. 뜬 구름 잡으러 다니던 지 아비 닮을 일 절대 없겠다 싶어 안심했었다.

 사실 막내가 오십이 넘도록 혼자 사니 애처롭고 누가 옆에서 같이 오손도손 살아 주길 바라지만 지 아비 같은 남자 만나느니 혼자 사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혼자 사는 막내가 암이 걸렸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안절부절  천국이 지옥이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구역장이 가끔 가서 보고 오라고 하락을 해줘 내 막내딸 집을 종종 찾아 살핀다. 간혹 두 모녀가 같이 편히 지내면 좋겠다고 어서  데려오라 헛소리하는 동료가 있는데 그런 소리 다시 하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옥으로 끌어내린다고 엄포를 놔서 그런 말은 아예 입에 올리자도 못하게 했다.  착해빠져서 남의 말 곧이듣다간 흐리멍덩한 인생을 산 내 전 남편꼴 난다.  

  

 이번 설날도 외국사는 큰 딸 대신 막내 혼자 꼭두새벽부터 부산 떨며 지지고 볶고 끓이느라 종종거리는 게 안타까워 아무것도 하지 말라 하고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차려야 저도 인스턴트 음식 말고 제대로 음식다운 음식 먹지 싶고, 요즘 보아하니 춥다고 운동도 안 나가는데 청소하고 음식 하면서 운동 좀 하라고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고기는 누린내 나서 안 먹고 생선은 비린내 나서 입에도 안 댄 내가 유일하게 즐긴 것이 굴과 조개인데 올해는 조개로 전도 부치고, 굴 넣고 떡국을 맛깔나게 잘 끓여 내왔다. 이때까지는 무척 흡족했다.

 

 그런데 이 계집애가 갑자기 날 빤히 보면서 “엄마, 아빠도 불러서 같이 먹자.” 이러는 거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대체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 잠깐 생각하느라 한눈파는 사이 떡국 한 그릇을 들고 지 아비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런 경을 칠 년.  내 남편이었던 작자는 내 눈치를 보는 건지  딸 뒤에 숨어 있고, 믿었던 딸 년은 내 밥그릇을 옆으로 밀더니 지 아비 걸 올려놓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다.

“엄마, 미안해. 그래도 어쨌거나 내 아버지인데 부르지도 않을 다른 집 가서 기웃거리는 게 싫어서. 눈칫밥이래도 딸내미 눈칫밥이 덜 서럽지 않겠어. 남들 보기에도 떳떳하고. 대신 엄마가 먼저 간 선배니까 처자식 나 몰라라 한 거 반성하라고 한마디 하고. 나도 이젠 늙고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겁이 나기도 하고.”

핼쑥한 눈으로 말하는 막내딸에 호소에 나도 얼떨결에 옆에 자리를 내줬다. 내 전 남편은 내 눈치를 보는 척하더니 자기 밥그릇 상에 놓자마자 딸이 불렀다고 당당하게 앉아 골고루 잘도 먹더라고. 보아하니 사기를 친 게 아니고 당하고 살아선지 지옥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연옥에서 헤매다 왔는지, 어찌나 맛있게 싹싹 비우던지, 얼떨결에 내 것도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괘씸한 마음에 한소리 했지. '너는 하나님 믿는 다며 이런 차례상 차리고 지랄이냐.'

"엄마가 살아생전에 외할아버지가 꿈에 배고프다 밥 내와라 했다고 아무도 제사 안 지내 그런가 보라고 울었잖아. 이렇게 차리면 어치피 내가 다 먹을 건데 핑계 삼아 음식 하는 거지. 내가 몸이 딸려 어차피 절하고 술 올리고 하는 것도 못하는데. 그래도 내가 체력이 되니까 하는 거지. 내가 언제 또 어찌 될지..... "

하긴 네 소리에 내가 내려왔다.

 

 '엄마가 하늘나라 있을 테니까 내가 죽어서 엄마 만나려면 착하게 이기적이지 않게 잘살게'라고 기도하던 모습에 하나님이 감동해서 철딱서니 없는 내 딸이 "엄마, 엄마" 목놓아 부르면 다독거려 주라고 천사장이 날 이승에 내려 보내주곤 하는 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갑자기 지 아비를 부르고.....  

 내가 네 꼴도 보기 그렇고 열받아서라도 너 이쪽에 빨리 못 오게 할 거다. 이승에서 내 맘 풀릴 때까지 너 혼자 오래오래 잘 먹고살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