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임산부가 진작부터 퉁퉁 부은 다리와 신발보다 커져버린 발로 더 걷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도영은 해미읍성을 지날 무렵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슬렁어슬렁 앞장서 걷는 남편은 만삭의 아내가 괜찮은지, 잘 따라오는지 돌아볼 생각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걷는 게 낫겠다고 말하고 앞장서 걷기 시작한 건 도영이었다. 그녀는 정시에 오지 않은 버스가 지나치면 붙잡아 타겠다고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지만 이미 한 시간 남짓 걸었음에도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는 버스는커녕 오뉴월 땡볕에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택시 타자니까. ‘
앞장서 걷던 남편이 도영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그제서 뒤돌아보며 말했다.
“왜 돈을 길에다 뿌려요. 보나 마니 빈차로 나와야 된다고 두배로 달라고 할 텐데 그 돈이면 애 태어나면 옷 사서 입히겠네.”
더욱이 도영은 집에 도착하고 당할 시어머니의 눈총과 매운 소리를 듣기 싫었고, 돈 한 푼 못 버는 남편 주머니에서 택시비가 나올 리 만무했다. 도영은 남편이 분명 친정어머니가 그녀에 개 돈 봉투를 찔러주는 걸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돈은 못 벌면서 남의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더 잘 맡아.' 도영은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화를 삭였다. 그러나 울화는 임산부의 몸에선 삭히지 못하는지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해미읍내를 지날 무렵 양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휴전 후 너도 나도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최고 미덕인 시절, 결혼 3년 만에 첫 애를 임신한 도영은 총기마저 흐려져, 처음 다리가 축축해질 때 ‘여름이라 다리에 땀이 차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뒤 몸 안의 모든 물이 확 쏟아지듯 흘러내렸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해미 읍에 조산원이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후일 그건 마치 도영 자신이 통찰력을 가져 걷기를 고집한 것으로 포장되어 딸들에게 전해졌다. “촌 구석 집에서 낳았어봐라, 네 할머니 유세에 산통소리 나 제대로 낼 수 있었겠어.” 도영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음력 유월 초복 날에 맏딸을 낳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아기의 아버지가 태어났던 날이기도 했다. 전날 도영은 친정어머니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에 급히 남편과 친정을 찾았었다. 다행히 보고 싶던 딸을 보아선지 친정어머니의 병세가 밤새 호전되었고 아침에는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위 생일상을 못 차려주는 걸 미안해하는 친정어머니를 진정시키고 도영은 시댁에 눈치가 보인다며 아침 일찍 시댁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해미읍의 조산원에서 아버지의 생일날 태어난 여자 아기는 집안에서 이름도 존재감도 없었다. 이미 서산 부석의 한 씨 집안은 두 살, 세 살 난 아홉째와 열 번째 아기의 삼촌들에, 큰 아들의 아들, 딸까지 방마다 오글오글 들어앉은 아이들에 치였다. 그냥 둘째네 애로 통하던 아기의 이름은 돌이 한참 지나 출생신고를 하라고 도영이 몇 날을 다그쳐서야 주어졌다. 도영은 나름 남편과 돌림자를 생각하며 ‘수경’, ‘수련’, ‘수진’등 도회적인 이름을 떠올리며 고민했지만, 아이 아버지는 애도 태어났으니 이제는 직장을 잡겠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돌았다.
"해미에서 태어났으니 해미라 하면 되겠네." 도영은 방학이라 본가로 내려와 있던 대학생 셋째 시동생이 장난처럼 던진 그 말이 설마 현실이 될 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도영의 남편 대신 출생신고를 하러 간 시아버지는 호적에 한글로 ‘해미’라고 적고 한자어 조합이어야 한다는 면사무소 직원의 말에 생각나는 대로 바다 海(해)에 아름다울 美(미) 적어 제출했다. 의도인지 우연인지 해미란 지명과 한자까지 똑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미가 여덟 살이 되던 해 그곳을 떠났으니 망정이지 거기서 학교라도 다녔다면, ‘해미는 해미로 가라 왜 부석에서 사니’, 십중팔구 당시 장난감 궁한 시골 아이들의 놀림감이었을 게 분명했다. 아이가 나이가 들수록 또래 친구들은 예쁜 이름이라며 부러워했지만 해미란 이름은 임시 번호판처럼 어서 떼 내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해미는 이래저래 치이며 살게 된 원인이 바로 이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고, 도영은 모든 것이 남편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에 주재원으로 나와 있던 말쑥한 독일인이 해미란 이름의 한자 뜻을 물었다. 그는 해미에게 “그럼 ‘바다의 미인’이네”라며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말했고 해미는 처음 자신의 이름이 좋아졌다. 그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생각나는 이름이라며 그녀를 비너스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하고 영주권 신청을 할 때 그녀는 독일에서 해미란 이름대신 ‘니나’란 이름을 사용하겠다고 말했지만 남편이 강하게 반대했다. 해미는 감명 깊게 읽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의 개성 강한 여주인공 ‘니나’를 좋아해서 그 이름을 쓰고 싶었지만 강한 개성 때문에 운명이 평탄치 못한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이 반대하여 이름을 바꾸려 했던 시도가 무산되었다. 해미는 남편이 한국의 여성 정체성이 묻은 아름다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라며 "나는 ‘나의 비너스’를 잃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실망했다. 한국의 모든 것을 떨 쳐버리고자 했던 해미의 시도가 무산되고 어렵게 이룬 국제결혼은 문화차이로 삐걱거렸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니…….”
결국 해미는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며 이렇게 중얼대곤 했다. 그리고 이름보다 딸이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호칭에 익숙해지며 이름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