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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Oct 02. 2023

연근 먹던 아이

기억의 재편집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해미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논밭을 뛰어다는 꼬질꼬질한 아이였던 시절은 추억이 아니라 추레하게 해진 과거였다.


 세 밤 자고 돌아온다던 엄마가 입혀준 빨간 코르덴바지의 엉덩이가 불룩 서리고, 반질반질 골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훌쩍훌쩍 울다 허기진 아이는 진흙탕의 시큰한 냄새가 어린 몸에 배이도록 연근을 먹었다. 그러자 가슴 뭉클한 엄마의 체취도 사라 졌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도 잊었다. 어린 날의 기억은 진흙에서 캐 먹던 연근에서 나던 흙내와 진득한 진액으로 응축되어 가라앉았다.      


해미에서 태어난 해미가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싫어하는 것이 연근이다. 해수는 언니의 생일에 출장일정이 잡혀 언니가  조카 수혜를 돌봐달라 부탁하곤 하는 같은 빌라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에게 돈을 주고 생일 음식을 부탁했다 ‘언니 생일 축하해. 언제나 멋쟁이 언니로 젊고 씩씩하게 생활하기를 바라, ' 해수가 케이크와 함께 써 놓고 간 생일카드를 읽으며 해미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차려놓고 간 저녁상을 보며 얼굴에 오만상을 썼다. 해수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역국과 잡채 그리고 불고기 외에 할머니의 호의가 담긴 물김치와 연근 조림이 덤으로 붙은 심술궂은 조합이 만들어졌다.  해미는 상위에 놓인 연근의 송송 난 구멍에서 질척한 진흙탕의 시큰한 냄새처럼 올라오는 것 같아 몸서리를 쳤다.  모처럼 한상 제대로 차린 모녀의 저녁상은 연근과 미역국의 조합처럼 애증이 한데 어우러졌다.  수혜는 제 엄마가 연근을 싫어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작아작 씹어 꿀꺽 삼키는 소리를 내며 맛나게 먹고 있었다. 해미는 그 소리조차도 듣기 싫지만 꾹 참았다. ‘인스턴트 음식 아니니까, 건강에 좋다니 많이 먹어라.’ 일에 치여 근래 들어 집에서 제대로 요리를 해본일이 없는 해미는 적잖이 딸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아래층 할머니 덕에 저녁상을 제대로 차릴 수 있었지만 해미는 수혜와 달리 수저를 들지 못했다. 수저에는 어린 시절 기억이 흘러넘쳤다.  떠나버린 남편. 해미를 두고 떠나 버렸던 어머니와 아버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과거 기억들이 밥상머리를 맴돌았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말리는 어머니에게 해미는 “엄마도 그곳을 떠나며 날 버렸었잖아. 나도 엄마처럼 이 지긋지긋한 데서 떠나고 싶어" 매몰차게  내뱉었다. "나처럼 살지 말라고…… 그래서, "‘ 라며 딸의 말에 망연자실하던 도영은 그 뒤로 비실비실 앓다 영영 떠나버렸다.

‘왜 그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진 말을 퍼부어댔을까. 그것은 홀로 남겨진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다.'

해미는 자문자답을 하며 어머니의 전철을 밟는 자신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엄마대신 고깔모자를 쓰고 목청껏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는 수혜를 마냥 흐뭇하게 볼 수 없던 해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이 벌게진 엄마를 보고 당황한 수혜가 생일 축하 노래를 마저 마치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다 티슈를 건넸다.  

“엄마, 생일날인데 왜 울어? 사진 찍게 울지 마.” 제법 어른스럽게 수혜가 위로했다. 오히려 해미가 딸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엄마가 태어난 날이니까. 엄마 뱃속을 나오면 애기들이 크게 울어 젖히면서 세상을 만나잖아.”  

“이젠 애기도 아니잖아. 엄마잖아!”

 ‘아 이제 나도 어미구나.’ 해미는 젖은 눈을 훔치며 죽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엄마가 지금 내 꼴을 안 봐서 다행이다.’ 벗어나고 싶은 사람, 그러면서도 가슴이 무너지는 여자. 최도영이란 여자는 해미에게 그런 어머니였다. 수혜가 해미에게 숟가락을 집어 손에 쥐어주자 식어가는 미역국을 한 수저 떴다. 미역국을 싫어하는데 더위마저 유난히 타 한여름에 불 앞에서 요리하는 걸 질색했던 도영은 딸들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없었다.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이런 맛이구나.’ 푹 고아낸 국물에 미역이 흐물흐물 풀어져 목 넘김이 좋았다. 해미는 오래 끓여 풀어진 미역국처럼 쫀쫀했던 마음이 풀어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젓가락이 연근조림엔 가지 않았다.


 

 어린 자식을 둔 젊은 여자는 불안정한 현실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며 온갖 궁리를 했다. 직장은 서울서 구하겠다며 올라간 남편에게선 아이가 다섯 살이 넘도록  변변한 소식이 없었다. 도영은 남편 없이 시집살이하는 자신과 더부살이 존재로 전락할 딸의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촌구석에서 평생 시댁의 명령을 따라 살며 딸이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할 수 없었다. 도영은 군청에서 서기로 일하던 시아버지를 찾아갔다. 시집살이하는 형편도 이용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남편을 찾아 서울로 가 담판을 짓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서울에서 자리를 잡겠다고 시아버지에게 결연하게 말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서울에 연고가 생기니 시부의 부담도 줄어들지 않겠냐고 회유했다. 해미가 학교에 갈 때까지 자리를 잡겠다고, 그러니 애를 돌봐달라고 간청했다. 도영은 어린 자식을 떼어놓는 것이 아렸지만, ‘몇 년 만 참자,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 보고 싶으면 보러 내려올 수 있거니 까,  남한테 맡기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손녀니까 잘 돌봐주겠지’하는 마음으로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말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처음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가방을 붙잡고 늘어졌다. 다섯 살 난  아이에게 엄마는 세 밤만 자고 온다고 달랬다. 아이는 서울에 간 엄마를 손꼽으며 기다렸지만 세 밤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또 삼일,  삼일. 아이가 제 손가락을 다 접으며 더 이상의 셈도 불가능해졌을 무렵 엄마 대신 우체부가 서울에서 부쳐온 편지 한 통을 들고 왔다. 편지를 받아 든 젊은 할머니는 어린 해미를 붙잡고 노발대발했다. 끼니때가 되어도 할머니는 어린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저 눈만 끔벅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밥을 밥뚜껑에 덜어 아이에게 내밀었다. 더 먹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엄마가 시킨 대로 할머니 말씀 잘 들으려고 꾹 참았다.

  어린애는 눈치를 밥 대신 먹었고 어느 틈엔가 배고프다 보챌 여력도 잃어버렸다. 아이는 부석 집 대문 처마 밑에 멀뚱히 서서 큰길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살가운 두 살 터울 막내 삼촌이 나타나 아이의 가만히 손을 잡았다. 두 아이는 오누이처럼 사이가 좋았다. 아이는 삼촌이 이끄는 대로 어느 곳이든 따라다녔다. 두 아이는 한 여름에는 뙤약볕을 피해 개심사 연못에서 수련을 세며 놀고 더위가 물러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연근을 캐내었다. 삼촌이 어린 발을 삼킬 듯 끈끈하게 붙잡는 진흙탕 연못을 헤집고 긴 몽둥이 같이 생긴 연근을 뽑아 건네주면, 아이는 엉겨 붙은 진흙을  옷에 쓱쓱 닦아 먹었다. 젖 마른 어미의 말린 젖꼭지를 헤집듯 헤집어 연근을 한입 베어 물면 진액이 혀 밑에 고였다. 혀끝에서 알싸한 맛이 났다. 아이는 엄마 젖을 빨듯 쪽쪽 연근을 베어 물고 고이는 즙을 빨았다. 그리고 분풀이라도 하듯 아작아작 있는 힘껏 씹었다. 그렇게 아이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설움과 배고픔으로 원망으로 성장했다.   

   

 대여서살 먹은 아이의 기억은 그렇게 서른 살 젊은 엄마의 기억과 엇갈렸다. 서로 오해를 풀어내지 못하고 왜곡된 기억을 품었다.

 “네 언니 여덟 살 되던 해, 삼 년 만에 서울로 데려오려고 부석으로 내려가니까 날 몰라보더라. 이름을 불러도 멀뚱멀뚱 서서는....... 네 할머니도 참 못됐지, 암만 자기 자식들 때문에 치여도 손녀딸을 그렇게 꼬질꼬질 거지꼴로 만들어 놓다니. 내 새끼 살릴라고. 서울서 꼬박꼬박 부친 돈은 엄한데 쓰고. 그때 내가 억장이 무너진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대. 하긴 누굴 탓해. 다 서방 잘못 만나고 아비 잘못 만난 탓이지.”

 도영은 서울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재봉질로 돈을 벌어 서울에 살 곳을 마련하고 삼 년만 부석에 내려가니 해미가 자신을 못 알아보더란 얘기를 옛날이야기 하듯 해수에게 하곤  했다. 그 얘기를 해미가 함께 있을 때 한숨이라도 쉬면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도영은 궁상스런 과거를 더 이상 해미의 과거에 보태고 싶지 않았다.  나름대로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던 모양이었던 건지, 아이를 위해 그렇게 고생하다 내려왔건만 딸내미가 엄마를 몰라봐서 서운 했던 건지,

"그래도 혈육인데 할머니가 그렇게 못되게 굴었단 이런 얘기 해미에게 남기고 싶지 않다."

 도영은 죽기 전까지 새침하게 말하곤 했다.


  엄마 생일이라고 한껏 들뜬 딸의 기를 죽인 거 같아 해미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도 수혜가 첫딸이잖아. 엄마도 처음이라 몰라서 엄마 노릇이 서툴러. 그래서 눈물이 난 거야. 엄마도 엄마 생각이 나서. 그리고 수헤가 엄마보다  더 멋지게 살았으면 하니까.”

서른여덟에 엄마가 되고 사십 중반을 넘긴 된 해미는 자신보다 더 젊은 20대 초반에 출산과 시집살이를 경험하던 어머니는 더 서툴렀음 깨달았다



“너도 너랑 똑같은 애 낳아 길러봐야 어미 심정을 이해하지.”

도영의 말대로 엄마가 된 해미가 엄마생각에 자꾸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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