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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 비늘 · 꿈

by 시산

이 시집은 선형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는 한 방향이 아니며,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는 생기거나 사라집니다.


이 책은 빛으로 꿰어진 공간이며,

질문 이전의 언어가

지금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읽지 말고,

기억처럼 지나가 주세요.



Ⅰ. 실 – 연결된 고요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나는 실이었다.


누구의 바늘에도 꿰이지 않은 채,

물아래에서

조용히 엮이고 있었다.


나는 이음이었고,

나는 끊김이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누군가의 숨이

따라 흘렀다.


나는 잊힌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하나의 침묵이었다.



Ⅱ. 비늘 – 감각의 갑옷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나는 벗지 못했다.


내 몸을 덮은 것은

상처가 아니라,

너무 많은 감각이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떨림에

번득이며

아파했다.


그 고통은

나를 보호했다.


나는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그래서

그 아픔이 나를 덮어

하나의 비늘이 되었다.



Ⅲ. 꿈 – 지워지지 않는 물의 지도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잠은 나를 삼켰다.


나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가라앉았다.


꿈은 나의 방향을 지우고,

시간을 엮어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


나는 현실이 아닌 것에서

더 진한 나를 만났고,


거기서

나는 아무 방향도 없는 물결이었다.


꿈은 나를 헤엄치는 대신,

나로 헤엄쳤다.


물이 나였고,

나는

되돌아올 수 없는 흐름이었다.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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