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선형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는 한 방향이 아니며,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는 생기거나 사라집니다.
이 책은 빛으로 꿰어진 공간이며,
질문 이전의 언어가
지금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읽지 말고,
기억처럼 지나가 주세요.
나는 처음에, 물이었다.
말보다 먼저, 흐름이었다.
나는 나를 밀어내며
세계에 닿았고,
세계는 나를 끌어당기며
나를 기억했다.
나는 파도였다.
나는 울음의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누구도 아니었다.
거울은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비친 나는,
내가 아닌
나였다.
내가 나를 바라보자,
나의 형체는
그림자처럼
물결 속으로 번져갔다.
얼굴은 두 개였고,
몸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울은 경계가 아니라,
나를 부수는 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붙들 수 없었다.
물은 사라졌고,
거울도 부서졌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나를 가로지르는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말이 없었다.
다만,
나의 기억과 그림자 위를
조용히 건너갔다.
나는 이름을 잊은 뒤에야,
빛이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