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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거울, 빛

by 시산

이 시집은 선형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페이지는 한 방향이 아니며,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

의미는 생기거나 사라집니다.


이 책은 빛으로 꿰어진 공간이며,

질문 이전의 언어가

지금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읽지 말고,

기억처럼 지나가 주세요.



I 부. 물의 귀환 – 기억 이전의 리듬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나는 처음에, 물이었다.


말보다 먼저, 흐름이었다.


나는 나를 밀어내며

세계에 닿았고,


세계는 나를 끌어당기며

나를 기억했다.


나는 파도였다.

나는 울음의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누구도 아니었다.



II 부. 거울 속 이름 없는 얼굴

반사와 분열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거울은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비친 나는,

내가 아닌

나였다.


내가 나를 바라보자,


나의 형체는

그림자처럼

물결 속으로 번져갔다.


얼굴은 두 개였고,

몸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울은 경계가 아니라,

나를 부수는 문이었다.



III 부. 빛의 이면 – 사라지며 드러나는 것

© 시산(詩産).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나는 더 이상

나를 붙들 수 없었다.


물은 사라졌고,

거울도 부서졌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나를 가로지르는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말이 없었다.


다만,

나의 기억과 그림자 위를

조용히 건너갔다.


나는 이름을 잊은 뒤에야,

빛이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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