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er's Fury

Simon's View Ep.7

by Simon


[The river's fury dragged me along, helpless in its embrace.]


난 정말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너무 좋아했다. 한국말을 잘 모르던 시절부터, 백과사전을 너덜거릴 정도로 한국사를 공부를 했다. 그러고 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을 상상해 보곤 했다. 또한 다양한 위인전 또한 읽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정취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또한 다양한 역사적인 장소에 방문해서 다양한 문화재를 구경하고 느꼈고, 옛날 그 시절을 상상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자 나의 상상력이 폭발하던 활동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좋아할수록 그 인물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완벽하고, 잘못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위인을 따라가고 싶어도 나의 능력의 부족인지, 아니면 인간의 한계인지 과거의 인물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서전, 위인전, 역사는 승자에 의해 해석되어 단순한 관점으로 쓰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아빠&엄마 데이트에 살짝 껴서 위키드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옛날에 봤던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와 다르게 서쪽 마녀 Elphaba의 입장에서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단순한 오즈의 마법사의 선과 악이라는 구도 하의 서쪽 마녀와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가 알고 보니 세상을 지배하려는 세력들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시각의 전환이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서쪽 마녀의 입장에서 공감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다크나이트(The Dark Night)에서도 캐릭터와 상황을 통해 선과 악, 질서와 혼돈, 도덕성과 부패 사이의 복잡한 입체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영화 조커(Joker, Todd Phillips)에서도 조커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난 이처럼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수 있고 입체적인 사건과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모르는 시각에서 물체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분야에 빛을 비춰서 나의 상상이 좀 더 넓어지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한국 드라마는 너무 뻔한 스토리와 의도적인 감동을 연출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보단, 미국 드라마를 많이 좋아했다 재밌게 봤던 Game of thrones도 다양하게 현실적으로 다양한 가문들끼리 서로의 입장을 보여줘서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상황과 사람을 입체적으로 보기란 정말 어렵고 에너지 소모가 큰 행동이다. 내가 어떠한 상황과 사람을 긴 시간의 축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시간의 축의 점을 보기 때문에 이차함수인지 3차 함수인지 지수함수인지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자주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상황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떨어져 있던 점들을 이어서 그래프가 만들어지면 어떤 것인지 점차 추측해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Hp5T39c2qbo



예전에 인상 깊게 봤었던 사건인데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있는 취객이 있었는데, 한 청년이 취객을 끌어안아서 난동을 제압을 시킨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취객이고 낯선 사람에 행패를 부리는 '나쁜' 아저씨였지만, 저 청년이 안아주자 그 취객이 진정을 하고 안정을 찾는 모습이 보이자 취객 아저씨였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무게에서 가장의 무게 다양한 상상과 울컥하는 감정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과거의 어떠한 상황과 인물은 다양한 점들을 붙여내는 것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와 인물 판단은 그런 것이다. 전시장에 놓여있는 조각품은 물체를 어떤 식으로 보여주는 방향, 다양한 점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서 판단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해서는 안 된다. 그에 따라 역사는 과거에 사건이기에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난 사건의 점의 개수를 외우는 것이 아닌 어떠한 방식으로 점을 이어가는 다양한 정답 다양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를 해보고 그것이 현재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나아가고, 미래에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때로는 이러한 흐름이 너무 명확해 보이다 보니, 점들을 이어 확신을 하고 명백한 정답인 줄 알고 다양한 창의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확신이 세상의 흐름의 물살을 강하게 만들어 흘러가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원이 혹은 그렇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강하게 만들어진 물살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내려가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을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염없이 힘없이 힘들 때 다른 시각을 보고 창의적인 소수의 의견이 목소리를 내어 우리를 강력한 물살에서 꺼내서 올려줘서 다른 정답을 알려준다 난 그것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사람 다양한 방향을 보여주는 사람 그것이 예술인 것 같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 편하고, 힘을 빼도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격이 없이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단순한 삶인 것 같다. 결국 1차원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에 미치게 된다. 하지만 흐름에 저항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서있거나 혹은 그 흐름을 방해하고자 저항을 한다면, 온몸으로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서 2차원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또 어떠한 사람은 이 긴 흐름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3차원적인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고 알려줘서 이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다.

KakaoTalk_20241211_001922767.jpg?type=w1 이찬혁 영감 센터 방문 (2023.10.31)


https://youtu.be/n30-nDqriys? si=QiCzCTSl4eMl5hqM&t=171


거대한 힙합의 흐름 속에서 다른 가치와 방향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자기가 보여준 이 흐름에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때 얼마나 행복하고 재밌을까 싶다.



요즘 세상 워낙 다양한 점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SNS, Internet 등 다양한 정보와 상황과 인물로 인해서 사람들이 다양한 점을 모으기만 해서 1차원적인 행복을 누리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인터넷 세상이 열린 최악의 안 좋은 점인 것 같다. 예전에는 1차원적인 행복을 계속 제공받지 못해서 결국 2차원이나 3차원까지 나아가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엔 1차원적인 행복도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2차원, 3차원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물의 흐름 느끼지 못하고 힘없이 그저 생각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주변에 이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는 3차원의 예술가가 없다면, 혹은 예술가의 신호를 느끼는 2차원적인 행복의 소비자가 없다면, 점점 흐름은 더욱더 강해지고 1차원적인 행복만 가득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물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국 예술가, 저항하는 사람들도 없어지게 되고 또 내가 이 흐름에 흘러가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AI와 다를 게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행복만 느끼는 식물인간의 상태의 가축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it, Voice and Loyalty - Albert O. Hirsc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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