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업이야기 Part 2.
사무실에 공공의 적,
우리는 그를 '베티'라고 불렀다.
어느 조직에서나 또라이는 존재한다고 한다. 당신이 당신 조직에서 또라이를 발견하지 못하면 바로 당신이 또라이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팀에도 역시 그런 인간이 있었는데 그는 또라이임과 동시에 빌런이었다. 전형적으로 위에는 잘하고 밑에 사람들한테는 하대하는 그런 인간. 강한사람에게 약하고 약한사람에게 강한사람,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니, 임원의 휘호 아래 아래 사람들을 악랄하게 괴롭히던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업무든 태도든 자기 마음에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그에게 모욕감을 주고 질책이 이어진다. 다행히 그는 내가 속한 시장을 관리하던 사람은 아니어서 한발 뒤에서 지켜보았지만 그 인간에게 당하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움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나에 직속 보고라인은 아니였기 때문에 같이 얘기 나눌 기회는 없었는데 하루는 어쩌다보니 그가 술을 먹고 싶은데 같이 갈사람을 찾기 시직했고, 또 어쩌다보니 내 사수와 내가 그와 함께 술자리에 끼게 되었다.
그가 먹고 싶다던 '곱창'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았고 정말 재미없는 술자리 동안 나는 그냥 말장단만 마쳐주고 빨리 그 자리가 끝나기를 바랬다. 2시간 남짓 술을 먹고 이제 헤어지는 순간, 그 인간이 나에게 나와 가는 방향이 비슷하니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다. 어쩔수 없이 그와 택시를 타는데 그 인간은 그의 집에 도착할 무렵 꾸벅꾸벅 조는 쇼를 보여주더니 자기 집에 도착하자 황급히 한마디를 내뱉으며 택시에 내렸다.
"야, 택시비는 너가 내라' (참고로 술값은 3명이 나누어 낸 상황..)
우리는 이 인간을 '베티'라고 불렀다. 우리는 메신저든 점심을 먹을 때든 그 사람 욕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자칫 그 사람 이름을 부를 경우 남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별칭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업무적인 스트레스 세질 때마다 우리는 그를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앞서 글에 쓴 글처럼 우리 조직은 각 국가별로 담당자가 있기 때문에 국가 담당자 간에 업무적인 연결은 떨어지고 각자 자기가 맡은 시장에 대해 독자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 같이 어려운 일이 많았고 시장이 좋아지면 같이 좋아지기 때문에 우리 직급 낮은 부사수들(사원, 대리) 간의 관계는 나쁠 이유가 없었다.
그 당시 20대 중 후반이었던 우리는 서로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으나, 거의 매일 이어지는 야근이 계속되다 보니 서로서로 힘듦을 이해했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동료가 단독방에 오늘 일은 이쯤 마무리하고 같이 술 한잔하자고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에 남자, 여자 비율이 반반이어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친한 편이라 같이 어울리는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다들 스트레스에 악이 받쳐있었고 먼가 그 고통을 해소할 구실이 필요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공식 회식자리가 아닌 사적인 모임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어느 정도 오가고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자기가 겪어 왔던 부당한 대우, 모욕감, 자기 사수에 대한 불만 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경험은 모두들 같이 겪어왔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서로에 대한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고 의기 투합되기 시작했다. 특히 앞서 말한 베티로 인한 상처감은 다들 컸기 때문에 그를 안주 삼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부서에 잔챙이들(힘없는 사원, 대리)라고 불렀는데 우리의 동료애와 단합은 하루가 다르게 커졌고 서로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 이후 우리는 같이 여행도 가고, 주말에 연극도 보러 가는 등 각박한 직장 생활에 서로를 통해 위안을 얻고 직장 생활의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