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만큼 미약한 첫걸음

난 코딱지 좋아함

by 로비니

-프롤로그-

내 살아옴은 그저 평범하고 혼잡했다. 평범한 이유는 특출날만 한 과거가 있지 않기 때문이고, 혼잡한 이유는 말 그대로 그 경로가 혼잡해서다. 이력서를 쓰다 보면 내 약점으로 들이밀 수밖에 없는 게 있는데 전문성이다. 여러 것을 했더라도 모두가 특출 났다면 난 특별한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천재였을 것이다. 근데 난 평범한 인간이라 그러지 못하였고, 누구나 그저 그렇게 부족한 시작점에서 얻어갈 만한 경력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쌓아왔다. 심지어 하나라도 엄청 특출 났던 게 아니라서 더 헤매었다. 내가 무슨 직업으로 살아가야 인생에 만족을 하고 죽을 수 있을지. 20대에는 다양한 도전을 하는 게 마냥 즐거웠고,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30대가 지나고 보니 그 시작점에서 벗어나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온 주변인들은 어느새 경력을 쌓고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전문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내가 했던 선택들이 잘못된 건 아닌지 혼돈스러웠다. 그래서 겉으로 하는 말은 돈보다는 공익, 하지만 속마음 깊은 곳엔 나도 그럴듯하게 살아 보이는 30대로 보이고 싶어서 공기업 취업을 노리게 되었던 것 같다. 우째 저째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다른 공기업에 사무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막상 들어가서 배우는 것 참 많았다. 조직생활이며 일반 회사와는 또 다른 시스템, 끝없는 보고서 작성, 국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더 잘 알 수 있었고, 나라가 돌아가는 꼴(=정치)에도 한쪽에 서지 않되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 좋은 것만 보이지만 그 과정에선 자유로운 성향의 내가 조금은 딱딱한 그 네모 틀에 맞추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하필이면 회사에서도 꼰대 중에 왕꼰대 강약약강인 사람이 내 상사였고, 그 분과의 갈등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필연적이었다. 그 당시 내 글을 보면 우울하다. 일하지 않는 순간에 술을 마시면 없던 술버릇도 생겼고, 그 외 업무를 할 땐 로봇 개미처럼 감정이 없는 상태로 할 일을 했다. 그리고 이 모음집의 글들은 우울이 두텁게 쌓인 시절 적은 내용이다. 현재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삶이다. 그 삶을 30대가 되어서야 실질적으로 만들어보고 있다. 세상의 눈에서 난 아직도 한참 미약하고 부족한 아스팔트 위 낙엽 한 장 같은 사람이지만 내 세상 속에서 이 변화는 쓰나미와도 같다. 세상의 눈에서 바라볼 독자의 눈에서 코딱지더라도 좀 귀엽게 봐줬으면 좋겠다. 내 현재의 행복도 글로 적을 예정이지만 이 행복은 과거의 우울로부터 더 견고히 만들어졌기에 먼저 우울함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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