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를 읽고
요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을 때에는 영화화된 작품을 고르면 실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 가족".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 구병모 작가의 "파과" 등등
나는 영화를 책 보다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영화화된 소설들은 내 기준에서는 원작 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적이 많았다.
박범신 작가의 "은교"가 딱 그렇다.
영화 "은교"도 젊음의 관능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를 영상적으로 잘 구현했던 점은 좋았다.
하지만, 노인 이적요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의 분장이나 연기가 좀 어색해서 몰입을 방해한 면이 좀 있었고, 또 서지우의 역할이 너무 평면적이라 나에게는 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은 아니었다.
큰 기대 없이 읽은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는 너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내가 영화로 봤던 "은교"와는 너무 다른 작품으로 느껴졌고, 공들여 쓴 문장 한 줄 한 줄이 시처럼 아름다웠다.
칠십 대 시인 이적요라는 인물의 싱싱한 젊음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또는 숭배, 제자 서지우와의 갈등으로 발화된 젊음에 대한 질투, 그로 인한 열등감,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는 깨끗한 인형(=은교)을 망가뜨린 사람에 대한 복수심과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나이가 많다고 책을 많이 읽었다고, 경험이 많다고 성숙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인간이란 영원히 뒤죽박죽. 감정의 카오스 속에 살아야만 하는 숙명인 듯하다.
또, 제자 서지우의 입장도 너무 공감이 갔다. 평생 동경하고, 존경한 선생 이적요라는 사람은 당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받는 깊은 상실감. 닮고 싶은 선생님의 재능을 자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데서 오는 좌절감. 애정과 증오. 두 가지 감정이 오락가락하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혐오를 느끼며 자기 파괴적으로 내달리는 감정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또, 이적요 선생의 애정을 가로챈 것 같은 은교를 소유하고 망가뜨려 선생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비뚤어진 욕망. 오로지 선생보다 자신이 나은 점은 나이가 젊다는 것. 그 한 가지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불쌍한 영혼이다.
영화"은교"에서는 여고생 은교와 노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포커스가 맞춰져 보인다.
반면 소설은 선생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의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이 할애되고, 은교라는 인물은 늙어가는 이적요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싱싱한 젊음의 아름다움을 대상화한 존재로 그려진 점이 달랐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이적요가 편지로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잃어버린 젊음과 찬란한 관능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나 싶다.
작품 중간중간에 유명한 작품의 아름다운 문구들이 차용된다.
쭈글거리는 노파는
귀여운 아기를 보자 마음이 참 기뻤다
모두가, 좋아하고 뜻을 받아주는 그 귀여운 아기는
노파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 C. P. 보들레르 (노파의 절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