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어린이 마지막편
수료일을 끝으로 1년 간 아이들과의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수료일 당일에는 실감이 안 난다.
그 날 오후 시간은 행정 업무를 하느라 아이들과 마지막 날의 여운을 찬찬히 느끼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 며칠 동안 밀린 업무와 개인적인 일정을 처리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긴장했던 몸이 풀리자 심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흐트러져있던 일이 하나 둘 수습이 되어 일상 속 차분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득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겨울의 계절,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을 살펴본다. 가장 생생한 기억의 흔적이다.
이란성 쌍둥이인 미솔이와 한솔이 사진을 한참 쳐다본다. 봄, 여름에는 한솔이의 활약이 돋보였고 가을과 겨울에는 미솔이의 활약이 드러났다. 쌍둥이는 각자의 강점인 계절이 있는 듯 했다.
지율이가 핫초코를 나눠주는 사진도 있다. 그 날을 생각하면 핫초코의 맛보다 지율이의 수다가 먼저 떠오른다. 눈 놀이를 하던 날, 미소와 하진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도 있다. 어린이의 삶이 곧 놀이이지만 미소와 진심이는 누구보다 더 놀이에 진심이었다.
사진첩의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본다. 11월…10월…가을의 정취를 느끼는 사진이 있다. 이 때부터 아이들의 키가 훌쩍 커진 것이 보인다. 식사 양도 많아졌던 기억이 난다. 주안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 속 아이들은 저마다 낙엽 위에서 신나게 뛰고 있는데 주안이만 조심스레 서 있다. 주안이의 성향이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주안이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 7살의 주안이는 어떤 세계를 구축해나갈지 궁금해진다. ‘빨리빨리’의 한국 문화에서 주안이의 느림과 조심스러움이 바래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9월…8월…7월…사진 속 녹음이 푸르른 배경이 등장한다. 강렬한 햇빛에 아이들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 있다. 여름은 늘어지는 계절이다. 어린이도 늘어지고 나도 늘어지고, 관계에 있어 다툼도 종종 일어났다. 깊어지는 계절의 특성인가 보다. 어린이도 깊어지는 관계만큼 갈등이 생긴다. 이름이 비슷해서 항상 헷갈렸던 서율이와 소율이가 보인다. 여름부터 서율이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종종 안경을 벗고 콧잔등의 땀을 닦아내던 서율이가 생각난다. 작은 얼굴의 해바라기들이 모여있는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키우는 해바라기 화분이 교실 창가에 깔려있던 모습은 강렬한 인상이다. 고흐의 「해바라기」작품보다 더 선명한 노란 빛을 띤다. 아침 일찍 교실에 들어서면 작지만 선명한 노란 얼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낭콩의 달인’ 이었던 한솔이는 자신의 해바라기도 멋지게 키워냈다. 무엇을 정성스레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을 주는지에 달려있다는 듯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아쉬움이 밀려온다. 어린이 한 명 한 명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인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1년의 시간은 어느덧 매듭 진 추억이 되었다. 마음 속에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깊이 새겨본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속엔 우리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추억은 한편의 책으로 남겨두고 또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공간에서 사계절의 시간을 보낼 어린이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어린이는 금세 나를 잊을 것이다. 어린이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니까.
다시 방학이다. 어른의 세계로 돌아와 나의 취향이 담긴 경험을 잔뜩 채우는 시간을 가진다. 사계절의 어린이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봄이 오면 새로운 어린이와 우리의 공간에서 사계절의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