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어린이 中 겨울의 어린
유치원마다 ‘크리스마스’ 행사할지 말지에 관해 입장 차이가 있다. 크리스마스는 특정 종교 행사이므로 지양하자는 기관과 종교적 의미를 떠나 ‘산타클로스’가 어린이에게 주는 매력을 생각해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이 있다. 내가 있던 유치원은 소규모 유치원이었다.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하는 특별한 날의 일환으로 크리스마스 행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아이들은 이미 크리스마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간의 경험에서 행복한 날로 기억된 건지, 부모가 그날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전날, 각자 먹고 싶은 과자 한 봉지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평소 즐겨 먹는 과자에 대해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선생님, 저는 빼빼로 가져올 거예요. 얼마 전에 빼빼로 데이였잖아요,
특이한 빼빼로 먹었는데 그거 가져올 거예요.”
“나는 롤리팝 가져올 거야.”
“그거 사탕 아냐?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거 가져오라잖아.”
“나는 감자칩. 우리 집에 엄청 많아.”
“얘들아, 그런데 우리 크리스마스 날 파티를 하려면 교실을 예쁘게 꾸며야 해.”
내가 제안한다. 어린이의 파티지만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를 나름대로 내고 싶다.
“’크리스마스’ 하면 뭐가 생각나니? 어떤 것이 우리 교실에 있으면 좋겠어?”
트리, 산타 할아버지 옷, 선물 상자, 고양이, 양말, 과자, 핫초코, 핫초코…. 여러 아이디어가 나온다. 우선 중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오너먼트를 준비해 아이들과 트리를 꾸며본다. 트리에 다는 오너먼트는 나무로 된 DIY 반제품으로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직접 색칠하게 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산타, 빨간색 잎의 잣나무, 무지개색의 루돌프로 칠해진 오너먼트가 어린이의 고사리 손으로 달아졌다. 아이들이 직접 장식 한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쩐지 괴상한 모습이었다. 사방면 중 한 면에만 오너먼트가 몰려있었다. “골고루 달아줘”라고 계속 잔소리했지만, 아이들은 친구가 오너먼트를 단 지점 바로 옆에 달고 싶어 했다. 오너먼트의 위치는 아이들 몰래 사방 면에 골고루 옮겨주었다. 혹여나 오너먼트를 만지고 있으면 “선생님! 제 거 왜요? 왜 만져요?”라고 귀신같이 알아채는 경우가 있어 재빠르게 옮겨야 했다.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온 늦은 오후의 교실에 들어갔다. 꼬마전구를 들고 우리 반 트리에 돌돌 감싸보았다. 어정쩡하지만 귀여운 느낌이 좋다. 다음은, 선물 상자가 필요하다. 트리 앞에 선물 상자 몇 개를 배치하면 SNS에 올라오는 감성적인 연말 느낌의 한 장면이 연출 될 것 같았다. 아이들 입에서 ‘선물 상자도 놓아야 돼요’라고 나온 거 보면 어린이도 어떤 매체를 통해서 크리스마스다운 한 장면을 기억한 것 같다.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가장 빠르고 쉽지만, 이건 우리 반다운 크리스마스여야 했다. 고로 나는 유치원에서 나온 크고 작은 택배 상자를 단단하게 접착시켜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아이들은 상자 위에 색지로 얼룩덜룩 붙였다. 함께 리본 끈도 달아보았다. 거칠게 찢긴 색지가 더덕더덕 붙여진 선물 상자들이 완성되었다. 트리 앞에 차곡차곡 쌓아보니 우리의 크리스마스트리 구역은 어쩐지 현대 미술의 파격적인 조합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양말…양말을 걸어두어야 한다. 이브 날 교실에 들어왔을 때, 내 양말 속에 작은 선물이 들어 있다면 하루를 들뜬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검색창에 ‘크리스마스 양말’을 입력하고 쇼핑몰을 둘러보다 문득 아이들이 집에서 신는 진짜 양말을 가져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그매서 어마어마한 것이 들어가진 못하지만, 그래서 잘됐다. 작은 사탕을 하나 넣으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가져온 양말들을 살펴보는데 구멍이 난 양말이 있었다. 이제는 못 신는 양말을 가져온 걸까? 크리스마스 선물 양말인데 구멍 난 양말이라니…! 그대로 둘까 어찌할까 고민하다 바느질로 숭덩숭덩 구멍을 메웠다. 양말 구멍으로 사탕이 빠지면 양말 주인의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어느 정도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공간이 마무리되었다. 이브날 아이들은 각자 맛있는 과자를 가져오면 된다. 나는 우리가 함께 감상할 애니메이션 영화를 준비하고, 핫초코를 외치는 몇 아이들을 위해 우유와 초콜릿 가루를 준비하면 된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 재빨리 양말에 작은 사탕을 넣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이 다가왔다. 출근길에 걸어가며 보이는 가게 상점 앞에는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가득하다. 은색, 금색으로 통일된 오너먼트들이 있다. 세련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문득 우리 반의 오색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각난다. 길거리의 트리들을 보아하니 요새는 꼬마전구보다 더 작은 지네전구를 주로 사용하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드 등, 스노우볼, 오브제 등이 가게 안에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우리 반 교실로 들어선다. 거리에서 보았던 분위기와는 다른 우리 반의 크리스마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여섯 살 어린이의 생동감과 투박한 표현이 잔뜩 담긴 트리와, 선물 상자, 양말, 눈 내리는 풍경을 그린 작품들…오늘은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잔뜩 즐겨야지.
아이들은 오자마자 가져온 과자를 자랑하느라 가방 정리는 뒷전이다. 다양한 과자들이 도착한다. 개중엔 나누어 먹기 난감한 과자들도 있다. 아이들의 자랑이 끝나면 나는 재빨리 “어서 양말 안을 봐봐. 착한 어린이는 산타가 작은 선물을 주고 간댔잖아.”라고 속삭였다. 작은 선물의 기쁨과 과자 파티를 기다리는 설렘이 공존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침이다.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로는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신념으로 고른 애니메이션은 미키마우스다. 책상에 아이들이 가져온 과자를 펼쳐놓고 우리는 접시에 먹고 싶은 과자를 양껏 담았다. 커튼을 내리고, 교실 전등을 끄고, 애니메이션을 틀고 알록달록 트리의 꼬마전구를 켰다. 와그작와그작 과자 씹는 소리가 미키마우스의 음향과 절묘하게 섞인다. SNS에 올라오는 그림 같은 크리스마스의 장면들이 어쩐지 부럽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소하게 즐기는 작은 크리스마스가 좋았다. 어린이와 함께 만들어낸 ‘우리만의 분위기’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