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로알드 달 지음

로알드 달 단편소설 모음집

by 안서조

이 책은 번역자를 보고 읽었다. 정영목 번역가가 옮긴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내 흥미를 끄는 책이 많았다.

옮긴이에 의하면 작가 로알드 달은 영구 저잣거리의 선술집에서 만날 수 있는 작가라고 한다. 불빛이 흐릿한 술집이 한쪽 구석 자리에는 하루 일을 끝낸 목수나 수리공 등 각 분야의 장인들이 달과 함께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을 것이다. 보수적이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들도 달은 좋은 술친구로 대접해주었을 것이다. 달의 전문 분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달은 미국에 갔을 때 오로지 입심 하나로 당대의 여배우 패트리셔 닐을 마누라로 들어 앉혔다는 소문도 있다.


달은 술친구들을 주욱 둘러본 뒤 사람 좋은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하나 비뚜름하게 걸고 눈을 반짝거리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몹시 바쁜 이 사람들이 범 같은 마누라의 잔소리도 잠시 잊고 이 자리에 모여든 것은 술도 술이지만 달의 에너지 전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달은 용케도 사람들의 마음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에너지를 찾아내 한군데로 모은 다음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러다가 더 쌓이면 폭발하겠다 싶을 때쯤 정작 본인은 있는지도 몰랐던 마음의 출구를 활짝 열어 쌓였던 에너지를 쭉 뽑아냈다.라고 평한다.

이 책은 로알드 달의 단편 소설 열 편을 싣고 있다.

「맛」은 런던의 마이크 스코필드의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리처드 프랏은 유명한 미식가였다. 그는 ‘식도락가’라는 이름을 가진 작음 모임의 화장이다. 화려한 요리와 진귀한 포두주가 나오는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프랏은 포도주를 맛보고 품종과 연도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좋아했다. 집 주인 스코필드는 독일 작은 마을에서 만든 포도주를 구해서 프랏을 초청한다. 프랏에게 포도주 품종과 연도를 맞추는 내기를 한다. 그 날따라 내기 경품으로 프랏은 집주인 스코필드의 작은 딸과 결혼하겠다고 하고, 자기가 지면 저택 두 채를 주겠다고 한다. 포도주를 맛보고 정확하게 품종과 생산 연도를 맞춘다. 그때 스코필드의 하녀가 프랏의 뿔테안경을 건내며 프랏이 포도주가 있던 방에 사전에 들어가서 포도주를 봤다는 폭로를 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며 작가는 세밀히 묘사한다. 입술 모양, 조명, 분위기, 식탁을 오가는 하녀들의 몸짓 등 읽는 사람에게 실제 영화를 보듯이 디테일한 연출로 감동을 준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항해 거리」는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던 시절 지루한 배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하기 위해 배에서 항속을 맞추는 내기가 열린다. 주인공 보티볼은 내기를 해서 돈을 따면 아내에게 캐딜락을 선물하기 위해 내기에 끼어든다. 5년 동안 모아둔 돈을 거의 걸고 당첨되기를 기다리는데, 기대와 반대로 배가 쾌속 항해를 하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구조하는 시간만큼 항속이 늦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바다에 빠진다. 그러나 갑판에 있던 노파는 신고를 하지않고 선실로 들어간다.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다. 심각한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한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빅스비 부인과 대령이 외투」 닥터 빅스비는 평범한 치과의사이다. 그 부인은 멀리 떨어져 사는 나이 든 이모를 핑계로 이모가 사는 동네 남성과 불륜관계 맺는다. 그러던 어느 날 불륜 대상 남자가 여자에게 밍크코트를 선물한다. 이모는 밍크코트를 사줄 형편이 안 되는데 남편이 어디서 난 것이냐? 라고 물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전당포에 맡기고 전당표를 우연히 주운 것 같이 꾸민다. 남편에 출근길에 찾아주겠다고 한다. 남편은 전당표를 갖다 주고 밍크코트를 찾았지만, 불륜관계인 치과 여직원에게 주고 부인에게는 밍크 목도리라고 거짓말을 한다.

속고 속이는 세상 부부 사이지만 남자가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여자는 몰랐다.

이런 이야기의 기본 주제는 변하지 않는다. 이야기에는 늘 주요 인물이 셋 등장한다. 남편, 부인, 그리고 호색한이다. 남편은 깨끗하게 살아가는 품위 있는 사람으로 열심히 일한다. 부인은 교활하고 잘 속이고 색을 밝힌다. 부인은 늘 호색한과 놀아난다. 남편은 너무 착해서 부인을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는 암담한 상황이다. 이 가엾은 남자가 진실을 알아낼까? 평생 오쟁이를 지고 살아야 할까? 그렇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잠깐! 갑자기 남편이 기가 막힌 작전을 펼침으로써 괴물 같은 배우자에게 한 방을 먹여 상황이 역전된다. 여자는 놀라고 망연자실하고 창피해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바에 모여 있던 남자들은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그 공상적인 이야기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 깃털이 반만 남은 공작이 점잔빼며 잔디밭을 걸어 다니는 모습을 떠올렸다. 민들레는 씨를 만드는 데 수분이 필요 없다. 화려한 노란 꽃잎은 그저 시간 낭비, 허세, 가장일 뿐이다. 생물학자들이 쓰는 용어가 무성생식. 민들레는 무성생식이다. 이 점에서는 여름에 나오는 물벼룩도 마찬가지다. 물벼룩과 민들레와 치과의사, 그녀는 생각했다. 꼭 루이스 캐럴(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저자)의 책에 나올 만한 말이군.


목사의 기쁨, 손님, 남쪽 남자, 정복왕 에드워드, 하늘로 가는 길, 피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등은 소개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책 소개

『맛』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2005.05.30. ㈜도서출판 강. 353쪽. 10,000원.

로알드 달 Roald Dahl. 1916년 영구 사우스웨일스에서 태어나 랩터 스쿨을 다녔다. 부모는 노르웨이 이민자이다. 석유회사 쉘에서 근무했다. 2차 세계 대전 시 영국 공군에 지원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942년 워싱턴 영구 대사관 공군 무관으로 부임. 공군 중령으로 종전을 맞았다. 첫 단편 소설집 『응답 바람』으로 데뷔. 에드가 앨런 포 상과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 수상.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2000년 ‘세계 책의 날’ 전 세계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혔다.


정영목. 서울대 영문과 졸업. 같은 대학원 수료.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