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그 깊고 쌉싸래한 향기
나의 인간관계의 폭은 가족이 전부라 해도 좋을 만큼 거의 전무하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 보내는 시간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도 있었다.
지루함에 약속을 잡으려고 전화기를 들었던 날들도 많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고 오면 지치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점점 사람을 만나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즈음, 나의 이 자발적 아웃사이더생활을 앞당긴 계기가 생겼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건강이 나빠지며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신체적 건강이 나빠지며, 정신적 피폐도 뒤 따랐다.
그동안 수면 아래로 숨겨놓았던 문제들이 신체가 무너지며,
모두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뒤흔들었다.
정신과 육체는 원래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말이 표면적인 말이 아닌,
실제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깊은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며
심연으로, 심연으로 가라앉기만 했던 날들!
그 속에 나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왜?”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곱씹어 보고 또 곱씹어 봤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풀지 못한 과제들을!
마음속 응어리와 상처들이 뒤엉켜, 꼼짝달싹 못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풀어야 할 숙제와 해결해야 할 마음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되새기며 마음에 써 내려갔다.
내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선 언젠가 한 번은 풀고 가야 할 문제들을,
하나둘 꺼내놓고 해결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책임을 묻기 위함이 아니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런 나의 변화에 처음엔 가족들도 당황했다.
그러나 함께 살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였고 문제였다.
더불어 나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격적 특성이나 자질, 성향들을 파악해야 했다.
내가 고쳐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을 분류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과거는 반복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나를 괴롭히고 있진 않았나?
상대가 아닌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내가 상대를 위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나와 화해를 하고 사람들과 화해를 했다.
힘들고 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고,
포기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을 분명히 하게 됐다.
배려 아닌 배려가 주는 오해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말로 해야만 아는 것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험도 했다.
이제 나는 나와 정말 잘 지낸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원하는 게 뭔지 처음으로 제대로 묻게 됐고,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가족이나 타인들에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좋고 싫음을 분명히 말하게 되면서 외려 편해지는 경험도 했다.
다른 사람의 기호를 듣고 맞추는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나의 호불호(好不好)를 알고 내 이야기를 적어나가며 느껴지는,
충만함과 행복감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상 누구보다 나와 지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 같았다.
나와 화해를 하고 용서하고, 상대를 이해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즐거웠다.
제2의 인생을 새로 사는 것 같았고,
지금부터 사는 것 같았다.
이제 만 3살 혹은 4살이 된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그렇게 자발적 아싸가 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색이 어떤지 살필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됐다.
다른 사람의 기호에 맞추느라 늘 뒷전이었던 나의 기호를 말하게 됐다.
내가 원하는 작고 소소한 행복들을 하나둘 모으느라 하루가 짧았다.
쓰고 싶던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여가를 보내고 책도 원하는 만큼 읽었다.
늘 가족들의 필요에 상시대기하며 촉을 세우지도 않았다.
레이더를 세우고 주변을 살피느라 쉴 틈 없던 신경들에게도 여유를 주고 쉼을 줬다.
쉬고 싶으면 언제든 들어와 쉬고,“나 책 보러 간다." 하며 방해받기 싫다고 말하고!
하고 싶지 않은 건 하기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무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한 자발적 아싸가 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늘 쫓기듯 갑갑하던 마음에 여유와 틈이 생기며
자주 웃었고, 가족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졌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더 샘솟았다.
내 마음이 가득 차니 나눠줄 마음도 넉넉해졌다.
이제야, 나는 나를 알아가고 행복을 키워가고 있다.
누가 나를 찾지 않아도, 주말에 약속이 없어도,
일주일 내내 혼자 보내도 나는 지금이 정말 좋다.
내 생애 진정한 봄날을 맞았다.
나는 왜 자발적 아싸를 선택한 것일까?
왜 혼자인 게 외롭지 않고, 오히려 더 충만함과 행복을 느끼게 된 걸까?
자발적 고립, 고독이 나를 행복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성장시킨 고통과 고독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심리학자 위니콧은 혼자 있어도 긍정적이고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은,
정서적인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지표이자 요소라고 했다.
고독이 인간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닌 성숙해질 기회라는 증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과연 혼자여도 괜찮을 수 있을까?
고독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최근 십 년 사이 불안도와 우울감이 증가하고 불행감이 급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혼자 있을 때도 TV를 시청하거나 유튜브 등을 시청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험하거나 소비한다.
휴식을 취하며 자신을 채울 시간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 충전해야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고독을 소외로 여기는 사람들,
혼자일 때 불안한 사람들!
우리는 왜 불안하고 우울한 것일까?
불행감의 대다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 상대가 보는 내가 다른 갭에서 온다.
그 갭을 인정, 수용하거나 변화 또는 수정을 통해 방향성을 정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온전히 혼자되는 시간을 통해 뇌는 성숙의 시간을 갖는다.
이런 시간을 통해 자아성찰과 자기 객관화의 시간을 가질 기회를 얻고,
불행 감을 낮추고 자신감을 고양시킬 수 있다.
나와 상대가 보는 나사이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조율할 시간을,
고독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행복한 길을 찾는 것은,
타인과 함께 행복해지는 열쇠가 된다.
내가 행복의 에너지를 보낼 때,
내 곁의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진다.
성숙한 나의 결정과 행동을 통해
타인과의 갈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함께 행복할 수 있다.
고독은 성숙의 시간이자 성찰의 시간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충만함과 행복함으로 채울기회를 얻는다.
온전한 고독을 통해!
그러니 기꺼이 혼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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