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파도 해야만 하는 이야기
3월에 눈보라가 날리고 넣었던 패딩을 다시 꺼내 입으며,
추워 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날이었다.
매일 일과처럼 반복하는 산책길에 목표 삼아 찍어두던 산수유와 매화가 피었었다.
필만한 시기였고 피어야 할 때였다.
때아닌 눈발이 창밖으로 휘날리는 것을 보며, 그새 정이 들었는지 산수유도 매화도 걱정됐다.
우리는 다음날 바로 산수유와 매화를 보러 갔다.
날씨는 아직 찬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게 따뜻한 날씨,
대견하게도 잘 버티고 있어 줬다.
걱정이 무색하게!
산수유는 더 노랗게 피었고,
매화는 그새 봉오리가 더 올라왔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 눈보라가 쳤는데도 꽃들이 참 잘 버텼지?
눈보라가 치던, 함박눈이 내리던 자연은 제 할 일을 하며 그저 묵묵히 버티는 거야!
그렇게 버티다 보면 3월의 함박눈도, 눈보라도 언젠간 지나가거든!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영원할 것 같은 고통의 시간도 끝은 있어!
버티다 보면 어느새 지나가있거든!
그러니까 버텨! 버티면 돼! 엄마가 도와줄게!
힘들 때 언제든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함께 해줄게!"
찬란한 봄날이어야 했을, 아들의 때아닌 겨울!
그 겨울을 견디고 있는 아직은 앳된 아들에게 말했다.
어쩌면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해야만 했다.
아픈 걸 알아도, 지친 걸 알아도 언제까지나 위로만 해주고 있을 수는 없어서!
" 엄마도 예전을 생각하면 지금 같은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계속 버티니까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버티라는 말이 잔인하게 들릴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하는 말!
사랑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도 세상 모든 만사가 그렇듯 그 끝은 있다는 걸 말해줘야만 했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치 못한 시련을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변덕스럽고 예상하지 못했던 3월의 폭설 같은 시련을!
그런 갑작스러운 시련 앞에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정신이 나가 멍하게
오롯이 다 맞아내야 할 때도 있다.
무기력하고 내가 피해자이자 약자인 것만 같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질 때의 그 절망과 고통!
고통 속에 그저 몸을 숙이고 비바람이, 폭풍우가 지나가기만 기다려야 하는 그 막막함!
그렇게 막연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가 지나고 나면
버텨냈다는 기쁨보다, 슬픔과 분노가 나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후폭풍이다.
가슴에 커다란 납덩이가 들어앉은 것같이 무겁기도, 불덩이 같기도,
송곳 같기도 한 감정들!
그것들은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병이 되기도 하고, 평생의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뻥 뚫린 가슴과 무겁게 엉겨 붙은 응어리를 품고서도 우리는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
시련에 지지 않으려면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내는 것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너무 힘들 것이다.
그래도 또 살아내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천국은 버텨낸 자의 것이다.
사람이 싫어질 수도 나만 아픈 것 같을 때도 있겠지만, 살아내면 다 지난이야기가 된다. 아무리 송곳 같은 아픔도 세월이 지나면 무뎌지고, 살갗을 에이던 바람도 괜찮아진다.
나는 아들에게 말한다.
모든 상처받은 이에게 말한다.
"나무에 상처가 생기면 옹이가 돼!
그 옹이 때문에 나무가 더 특별해지고,
우리는 그 특별함에 더 값을 매기기도 한단다.
버텨야 해!
버티면 과정이 되고 경험이 될 수 있어!
견뎌내고 나면 너만의 특별한 무엇이 네 안에 생기는 거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옹이를 품고 살지만, 살아있기에 삶은 지속돼야 하기에,
옹이 위로 새 살을 덮으며 살아내고 성장한다.
아직은 어린 어른아이인 나의 아이에게, 또 어디선가 세상에 맞서고 있을 다른 아이들에게,
어른도 아픈 게 인생이라 여전히 아픈 어른들에게!
위로의 말대신 오늘은 버티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종종 말한다.
"네 세계가 사라지면 세상은 아무 의미 없어!"
"네가 살아있기 때문에 이 세상도 존재하는 거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난이도를 뚫고, 이 세상에 온 모든 귀하고 아름다운 목숨들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아지기를,
편안해지기를,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처럼 글을 쓴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