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야생마

자유와 방종

by 오렌지샤벳


by오렌지샤벳 1시간 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미국 독립전쟁당시 페트릭 헨리가 외친 말이다.

목숨을 걸만큼 자유와 독립이 간절했다는 말이다.

자유의 가치를 높게 두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마법의 주문이다.



인간은 자유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자유를 수호함으로써 명예를 얻는다고 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전부를 걸고 투쟁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자유'에 대한 고민!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물음표들이 있었다.

'자유지상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와 그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서부터 방종인가?'

'인간에게 어느 정도까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할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 그 가치에 맞게 자유를 적절히 통제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욕심이라는 이기심 앞에서 타인의 권리를 약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질문들에 나는 "예스"만을 외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앞에 타인의 권리를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고,

약탈과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타인의 생존권까지 침탈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곤 한다.

물론 자신에게 제약을 두고 선을 지키며,

남의 권리를 함부로 빼앗거나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 길은 어렵고 힘든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쉽고 편한 것에 유혹을 느낀다.

그로 인해 얻을 이익이 상당하다면 더욱이 힘든 선택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우위에 서고 싶어 하고, 더 많이 가지고 누리길 욕망한다.

그 본성에 기인한 욕구가 인간의 역사를 끌어온 원동력이자 발전의 근간이 된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자유가 탐욕이라는 탈을 쓰고 그에 얽매이는 순간 재앙이 되고 만다.



탐욕이 재앙이 되는 순간,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는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을 생각해 보자.

히틀러의 독일에 대한 자만심과 아리아인의 우월성에 대한 생각을 매개로 자행된

수많은 희생과 고통들!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에서 그들은 이기적이며 파괴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 앞에 타국과 타인의 자유와 안전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헤아릴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역사에 남겼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곳곳에

자유와 방종이라는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예는 많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예시처럼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제삼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사고 시 자신의 치료비를 본인이 지불한다면,

개인의 신체나 목숨에 간섭할 권한이 없는 것일까?'

'자신의 생사여탈권은 본인에게 있으니,

죽고 싶다고 해도 개인의 권리이니 방관해야 하는 걸까?'

미 경제학자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의사를 서비스 등급으로 나눠 판단하고, 면허가 없는 의사라도

싼값에 치료받길 희망하면 의료행위를 해도 상관이 없는 걸까?'



아무리 자유의 가치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처럼 절박하다 해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정선(適正線)'이 지켜져야 한다.

마구잡이로 모르쇠의 철벽을 두른 자유론에 기대,

피아(彼我)도 없이 불나방처럼 군다면 세상은 혼돈과 혼란에 빠질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사회의 균형과 조화가 깨진다면 결국 그 여파는 각자 개인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에 치우친 극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빛과 어둠처럼

사람과 사람이 함께 균형을 맞춰 공존하며 유지되는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봤듯이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의 이기심과 탐욕의 대가는 늘 모두가 함께 치러왔다.

그 조화와 균형이 무너질 때 인간은 스스로와 더불어 타인과 세상을 함께 파괴해 왔다.

나만 좋은 것, 우리만 좋은 것이 절대 가치가 된 지금!

극한 자유지상주의에 기댄 불균형과 분열이 가져오는 파장들!

그 실례로 인간과 자연사이에 깨져버린 균형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극한 이기심과 이기주의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서로를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중용의 도'가 절실하다.

'중요의 도'란 무엇인가?

아리스토 텔레스는 중용의 덕을 실천함에 있어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과대(過大)와 과소(過小)의 극단을 초월하여

최적화 개념에 도달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중용의 기본 개념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와 남을 다르게 보지 말고

나의 '희로애락'과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이 다르지 않음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라는 것이다.

나눔과 배려, 이해와 양보로 균형을 유지하며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기술발전의 정점에 살고 있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삶은 풍족하고 여유로워졌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문명의 이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역사를 통해 물려받고 계승해 온 것이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처절했던 역사의 증거이다.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그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풍요로운 터전을 온전히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협력과 평화, 나눔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를 단련하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자!

자신의 욕망에 무릎 꿇지 말고 책임감을 갖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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