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망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바쁜 척하느라 미뤄두었던 집안일 몇 가지를 해치웠다.
닦은 곳은 표시가 나지 않고, 닦지 않은 곳은 단번에 알아차리는 것이 집안일이다.
얼마 되지 않는 일을 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힘이 드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겨우 한숨 돌리고 창밖을 내다본다.
오후 햇살이 유리창에 걸려 반짝인다.
그 빛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해가 눈에 띄게 길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어둑해졌을 시간인데, 오늘은 아직 환하고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
며칠 전, 화단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꽃망울이 제법 탐스럽게 봉긋 올라온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 맞아. 이제 그럴 때가 되었지.
꽃과 나무들은 벌써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한파가 밀려와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구나.
어쩌면 계절은 크게 소리 내지 않고,
햇살이 조금 길어지는 방식으로,
가지 끝이 아주 살짝 부풀어 오르는 방식으로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나도 그 변화를 체감한다.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 새삼 놀랍고, 경이롭다.
내가 오늘 해낸 집안일은 금세 흔적이 사라질지 몰라도,
계절이 바뀌는 흔적은 이렇게 조용히,
소리 내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