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법칙 적용자 vs. 성찰기회 제공자
강원도의 어느 사찰에서는 스님들이 방생한 물고기가 멀리 가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스님들이 가두리양식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오해받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려니 할 것이고, 혹자는 정말로 그렇게 오해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어떤 집단에서든 대략 열의 아홉은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신뢰해도 그중의 한 명은 이상하게도 나를 오해하고 왜곡합니다. 편의상 이를 9대1의 법칙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열의 한 명에 속하는 사람 중에는 그야말로 이유 없이(또는 의도적으로) 나를 오해하고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는 나도 모르게 내가 그들을 서운하게 대하였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나를 그렇게 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들은 그냥 법칙을 적용해주는 사람이라고 편하게 간주하면 되겠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언행을 상식의 기준으로 분별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극단적인 인식의 틀을 적용하여 왜곡하거나 특히 어떤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나를 왜곡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어떤 진실한 해명도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나를 오해하고 왜곡한다면 그가 법칙 적용자인지 성찰 기회 제공자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아울러 내가 누군가에게 혹시 법칙 적용자로 간주되지는 않을지 한 번쯤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생각 둘. 폴터가이스트, 그리고 떠나는 그대
폴터가이스트는 '시끄러운 영혼'이라는 뜻으로,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물건이 움직이거나 소음이 발생하는 등의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가득 담긴 노트북 가방의 바깥쪽 주머니에 무선 이어폰 케이스를 넣고 지퍼를 채우지 않은 채 기차의 선반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는데, 가방을 내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케이스가 툭 빠져버리는 경우와 같이 아무리 생각해도 잃어버릴 상황이 아닌데도 그 희박한 가능성으로 소지품이 내 곁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걸 믿지는 않지만, 분실한 물건을 찾아 헤매다가 짜증이 나면 자신에 대한 불만을 다른 대상에 전가하듯, "폴터가이스트가 장난을 치나"라는 무의미한 말을 내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진짜 폴터가이스트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상식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도저히 물건이 없어질 상황이 아니라고 최종적으로 결론이 난 이후에 그렇게 생각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물건이 자주 분실되는 나의 생활 장소에 CCTV를 설치하고, 나중에 화면을 돌려보면 거기서 폴터가이스트의 단서가 보일 가능성보다는 그 대신에 수십 년간 굳어진 나의 잘못된 습관 하나가 눈에 띄게 될 가능성이 더 클 것입니다. 나에게는 노트북 가방의 바깥쪽 주머니를 잠그지 않는 묘하게 안 좋은 습관이 있었고, 열린 주머니에서 물건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간혹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물건만이 우리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내 곁을 지켜주는 대부분의 고마운 사람들과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오해하거나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고 나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폴터가이스트와 같은 묘한 기운이 작용했다는 주술적인 생각을 하는 대신에, - 대다수의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내 곁을 지키지만 - 어떤 자극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 버린 대인관계와 관련된 안 좋은 습관이 나에게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