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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삐 Oct 18. 2021

돌삐 이야기

1. 공백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집 안에 적막이 흐른다. 아버지는 어색한 기류가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인지, 오랜만에 본 딸의 모습이 어색하셨던 것인지 흙탕물의 힘을 빌리시며 헛기침을 하셨다(흙탕물은 인간들에게 술 같은 존재다). 밖에서는 부엉이 순찰대원들과 취해서 비틀거리는 개미들의 언쟁이 조용한 집안을 채웠고 그 소음을 깨고 엄마가 조심스레 안부를 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너무 많이 자라 길 가다 마주치면 못 알아볼 뻔했어."

"저야 뭐 잘 지냈죠. 다행히도 좋은 돌과 사람들을 만나서 잘 살았어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몇십 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머릿속에서 상상만 해왔던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어색함이 기쁨을 덮어버렸다. 그 순간, 나의 한마디에 아버지는 잎술이 파르르 떨리시며 얼굴이 창백해지셨다.

"인간들을 만났다고?! 니 지금 이게 무슨 일인 줄 알고 말하나? 우리 돌들을 걷어차는 건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 구멍 뚫고 깎는 종족들인데... 니는 생각이라는 게 있나 없나!"

"아버지가 뭘 아신다고 그러세요? 인간을 만나보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제가 무슨 말만 하면 화내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먼저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화에 욱하여 화를  나는 집을 나와 밖에서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다.

 가을이라 그런지 밖은 쌀쌀했고 몸에 긴장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 낙엽 담요라도 들고 나오고 싶었지만 차마 아버지의 얼굴을   없었기에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그때, 등이 따뜻해지며 누군가  옆에 앉았다.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작은 잔에 흙탕물을 따라주시고 본인은  잔에 따라 마셨다.

“엄마는 날이 추우면 흙탕물을 꼭 마셔줘야겠더라. 너는 얼마나 마실지 몰라서 작은 잔으로 들고 왔어. 자, 마셔. 마시면 몸에 열기가 좀 돌 거야.”

“….”

"그리고 방금 아버지가 화내신 건... 네가 위험했을 환경에 있었다는 게 화가 나셨던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너 혼자 견뎌냈어야 했다는 걸 생각하시니 속상한 마음에 화내신 거지…"

"알아요... 그런 뜻인 거 알지만 나에게 화를 내시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더라고요. 참 못된 돌이죠, 저….”

“아니야, 못된 건 아니야.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한데. 아버지가 표현을 잘 못하셔서 그래….’

엄마의 진심 어린  한마디로 마음이 녹아서인 걸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엄마의  이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6 , 엄마의 이끼는 다른 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푸르고 오묘한 색의 이끼였다. 그랬던  이끼는 이제 퍼석퍼석하고 생기 없어진 하얀 이끼로 변했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내가 속을 썩여서 그런 것일까…. 이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 나의 시선을 엄마는 의식하셨는지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엄마 이끼 많이 하얘졌지? 이젠 나도 어디 가면 할머니 소리 듣는다, 얘.”

“그렇겠네요, 벌써 16년이 흘렀으니….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엄마에게 있었던 걸까. 흙탕물이 쓴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질문이 괴로우셨던 건지 엄마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시고 대답하셨다.  

“16년이 하루 같고도 하루가 16년 같았어…. 매일 사라진 너를 찾으러 부엉이 경찰서로 찾아가고 참새 아재들에게 부탁해서 전국적으로 방송도 해봤지만 너를 찾을 수가 있니…. 그리고 니 동생 빼이 치료비도 벌어야 하니 아버지랑 교대하면서 매일 이 생활을 반복했어. 우린 네가 반드시 살아있고 돌아올 거라고 믿었으니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울컥 눈물을 쏟아내었다. 나는 누군가 앞에서 우는 것을 정말 싫어해서 항상 감정을 누르며 살아왔지만 한 번에 터진 감정들이 눈물에 쏟아져 내렸다. 그런 나를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고 나는 그 따뜻한 위로에 더욱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 엄마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엄마는 알아주시고 나에게 질문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아까 너의 말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네. 오랜만에 만나니까 많이 어색하지? 그래도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엄마는 너무 궁금한데 말해줄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는 흙탕물의 힘을 빌려 엄마에게 지난 16년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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