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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경자 Oct 29. 2023

샛노란

앉아 있으면 졸음처럼 쏟아지는 우울과

서 있으면 여행이라도 갈 듯 들뜬 마음 사이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불안합니다


호수는 흔들리는 것들을 가두어 놓으려고 커다란 거울을 비추지만

흔들리는 것들은 거울 속에서도 흔들리며 바람 속에 숨어듭니다
 

또다시 앉으면 여행은 취소되어

좌절된 목푯값이 하나 늘어나 실패라는 연대시를 써 내려갑니다
 

열두 개의 바늘에 찔려도 통증은 제로 값에 가깝고

우울은 무한대 값에 가까워 시간은 자꾸 앞서갑니다
 

샛노란 우울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잠가도 금방 튀겨져 나오는 것은 

샛노란 색깔이 너무 튀어 수평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얇은 만두피로 빚었던 어제의 말들에서 금지어가 터져 나옵니다

하나의 금지어에는 백 개의 좌절이라는 그림들이 그려져 호수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안 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계절이 빠르게 왔다 간 흔적이 있습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날씨의 마른 뼈들이 맞춰지고
 

열병처럼 우울이 퍼지면 방금 꽃대를 밀어 올린 꽃들은 

스스로의 생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 빠른 속도로 말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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