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나의 작은 슬픔들

by 새벽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은 언제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본인조차 정확히 짚어낼 수 없을 만큼 흐릿하고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날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울컥하는 날, 하루 종일 가슴 한편이 묵직한 날, 숨을 쉬는 것조차 유난히 힘겹게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날들이, 사소하게 느껴졌던 아픔들이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더는 못 버티겠어요’라고 속삭이는 마지막 구조 신호 같다고 생각한다.


그 신호는 종종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 대신 무기력한 표정, 조용한 한숨, 평소와는 다른 작은 행동으로 어딘가에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때로는 알고도 모른 척하며 지나치고 만다.
그렇게 누군가는 아주 조용히, 무너져간다.


온라인상에서도 ‘자살’에 대한 글을 종종 마주한다.
거기엔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단호하게 말한다.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다. 어떤 순간에도 삶을 포기해선 안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그 선택이 죄이든 아니든, 그것마저도 각자가 감당할 문제다. 남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런 글들 사이에서 문득 생각에 잠긴다.


"그 선택이 죄라면, 그 사람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칼처럼 차갑지 않은가?
정말로 그 한 사람의 마지막 선택만을 보고 죄를 논하고 책임을 묻는 것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자세일까?


그 사람이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고통과, 쌓이고 뒤엉킨 감정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계산대로만 움직이지 않고, 감정이라는 바닷속에서 휘청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에게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말은, 죄나 책임을 논하는 단어가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니”
“그동안 정말 잘 버텼구나”
같은 따뜻한 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이렇게 차갑고 날카로워졌을까?
언제부터 남의 고통 앞에 먼저 판단부터 내리게 되었고,
‘정’과 ‘연대감’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을까.


한때는 이웃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던 정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누군가 쓰러질까 봐 앞서 손을 내밀던 그 마음들이 분명히 존재했었는데.

이제는 정치도 썩고, 사회도 무너지고, 사람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만 점점 높아져간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조차 어색해진 시대, 우리 모두는 조금씩 고립되고, 조용히 외로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때때로 한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끝으로 밀어붙인다.


나는 바란다. 우리가 다시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누군가가 무너질 듯한 하루를 견디고 있을 때, 그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는 대신,
존재 자체를 지켜주는 따뜻한 시선을 먼저 내밀 수 있기를.

아무리 이 나라가 싫고, 보기 싫다고 말해도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고, 태어나고, 자라온 곳이 이 나라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정이라도 남아 있는 나라,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붙들 수 있는 나라,
그런 곳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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