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방식

글 쓰는 이야기

by 오리냥

生의 방식 / 유복녀


많고 많은 生 중에서

가장 낮고 그늘진 곳으로

바닥을 기는 삶


가진 거라곤

먹는 입 하나

흐릿한 시선 둘

온 생을 의지할 더듬이 둘

유일한 안식처

등껍질 하나로

매 순간 사는 게 기도인 목숨


바닥에 납작 엎드려

온 생을 의지한 더듬이로

허공을 더듬으며

기어 기어서

주어진 모든 날을

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명주달팽이


우리 집 가장 습한 곳 화장실 한쪽에 명주달팽이가 산다. 작년 봄 배송된 케일잎 사이에 끼어 손님처럼 찾아든 생명.

만약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의 삶이 아닌, 세상 속으로 내어놓는다면 어떨까 싶은 맘으로 몇 글자 적어보았다.


정원 한쪽, 햇빛이 조금 늦게 오는 곳에 명주달팽이가 살고 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낮은 길을 골랐다. 꽃 옆을 지나갈 때나 돌 아래를 건널 때도 바닥에 몸을 붙인다. 높이 오르면 세상이 더 잘 보이겠지만 새들의 눈에 띌까 두렵기만 하다.

그에게는 가진 것이 많지 않다.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입 하나, 세상을 흐릿하게 바라보는 눈 둘, 길을 묻듯 내미는 더듬이 둘. 그리고 등에 얹은 작은 등껍질 하나가 전부다. 비가 오면 그 안으로 들어가 빗소리를 듣고, 바람이 세게 불면 몸을 숨긴다. 그 껍질은 집이자 쉼터고, 명주달팽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생명줄이다.

날마다 같은 속도로 같은 바닥을 지나며 명주달팽이는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건 높이 오르는 일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일이라고. 그러므로 오늘도 그는 가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도 나아간다. 낮고 느리지만 사는 게 기도가 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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