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통한 행복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글은 육아에 대한 글이지만 아기를 어떻게 대하고 교육시킬지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위해 남편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행복한 육아를 위해서 왜 남편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려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보통의 가정에서 남편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 없이는 행복한 육아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아기를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육아로 인해 늘어나는 산더미 같은 집안일들을 수행해야 하고 이와 함께 육아와 가사에 동반되는 정신적인 노동과 스트레스도 감내해야 한다. 물론 가사와 기본적인 육아를 담당해 줄 수 있는 입주 도우미, 입주 아기돌보미를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정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제한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보통의 가정이라면 부부가 많은 부분의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야 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남편의 적극적인 육아 동참이 없다면 아내 혼자 무한에 가까운 육아와 가사의 육체적, 정신적 고됨을 오롯이 혼자 떠안을 수밖에 없다. 부부 한쪽이 그러한 고됨을 떠안는 상황에서 육아가 결코 행복한 일이 될 수는 없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함으로써 아내의 고됨은 감소될 수 있고 육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부부의 행복도 높아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육아를 수행하는 남편과 아내 모두의 행복이 높아져야만 육아의 대상인 아기도 행복하게 클 수 있다. 고됨은 나누면 반으로 줄고 행복은 나누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육아의 경우에는 고됨을 나눔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 신뢰 등으로 행복의 증가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게 된다.
아기 입장에서도 아빠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게 되면 부모 모두로부터 애정과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부모 한쪽이 육아를 담당할 때 보다 훨씬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아기에게 엄마와 아빠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성별의 다름도 있지만 자신을 대하는 육아방식과 애정표현 방식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로서의 아빠가 아기를 대하는 방식과 놀이 방식은 여자인 엄마와는 원천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아기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엄마는 10달 동안 뱃속에서 기르고 직접 출산하고 또 모유수유를 함으로써 아기와 육체적으로 연결되게 된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엄마는 아기를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서 느끼며 사랑하게 되지만 아빠는 엄마와는 달리 나의 핏줄인 자식의 존재로서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엄마와 아빠의 사랑의 원천이 다르기 때문에 아기를 대하는 자세나 방식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즉 엄마는 감성적이고 수용적인 경향이 있는 반면 아빠는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통제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엄마와 아빠가 다르다는 것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의 강도나 수준까지 다르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또한 그러한 다름이 육아를 하면서 언제까지 바뀌지 않고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특정 시기부터는 엄마도 자녀를 더 이상 본인의 분신이 아닌 자식으로서 인식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식을 이성적으로 대하고 통제하려 하려는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유아시기의 자녀에 대해서는 엄마와 아빠의 생각과 행동의 다름이 존재하고 이러한 다름으로 인해 육아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존재인 엄마와 아빠의 육아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부부가 함께하는 육아가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이러한 시너지를 통해 아기 입장에서도 더 풍부하고 다양한 부모의 애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남편도 아내와 같이 육아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남편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단지 아내를 위한 희생일 뿐일까? 답은 물론 적극적인 육아 참여를 통해 남편도 아내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자체가 누구를 위한 희생이 아닌 본인의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부모는 아기가 태어날 때 생명탄생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커가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만들어지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아기가 웃고, 옹알이를 하고, 말을 하고, 몸을 뒤집고, 기어 다니고, 걷고, 뛰는 것과 같은 무수한 단계의 커가는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부모는 경이로움과 행복과 자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아기의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이러한 변화들을 부모가 경험하기 위해서는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이런저런 일로 집을 비우게 되는 아빠에게 아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자는 모습밖에 없다. 또한 육아로 인한 고됨과 스트레스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녀의 커가는 모습들에서 더 큰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데 아기가 활짝 웃고, 맛있게 밥을 먹고, 새록새록 잠을 자고, 아빠라고 얘기하고,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달려와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육아의 힘든 과정을 통해 그 크기가 배가 된다. 인생의 애환과 슬픔과 고통이 있기에 기쁨과 편안함이 있는 것처럼 육아 과정에서의 힘듦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행복감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아내뿐만 아니라 남편 본인, 그리고 아기 모두에게 육아라는 과정이 한 가족을 만들어가는 행복한 여정이 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도 아기들이 커가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큰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달달한 신혼 생활도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자녀를 갖고 육아를 하면서 느낀 경험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과 보람과 벅찬 감동이었다. 쭈글쭈글 핏덩이로 태어난 신생아가 울고, 웃고, 젖을 먹고, 이유식을 먹고, 옹알이를 하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고, 엄마아빠를 말하고, 뛰어다니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재롱을 부리고, 내게 뛰어와 안기는 등 하나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기특하고 또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아내가 주말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여보, 우리는 지금 우리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게 찬란한 행복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 몰라, 지금의 시간들을 충분히 즐겨요” 그때 그 말을 들으며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한창 예쁘고 귀엽고 엄마아빠에게 의지하고 안기는 사랑스러운 아기들의 모습이 클수록 독립된 자아로서 엄마아빠의 품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지금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조금씩 커가며 언젠가 성인의 모습으로 부모인 내게 다가오겠지만 그래도 지금 아기들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평생 나와 아내의 기억과 마음에 행복의 각인으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육아 참여 여부가 부부의 행복 수준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 수 있도록 간단한 육아행복지수를 만들어 보았다.
육아행복지수 = 부모가 육아의 고됨 대비 느끼는 행복감 =
육아로 인해 느끼는 정신적 행복감 / 육아로 인한 느끼는 육체적 and 정신적 고됨
한 명의 부모가 배우자 없이 아기를 키울 경우 아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을 100, 육아로 인한 고됨을 100이라고 설정하고 부부가 같이 육아에 참여할 경우 상대방에게 느끼는 동료애, 만족감, 고마움 등으로 느끼는 추가적인 행복감을 100, 부부 중 한쪽만이 육아를 전담할 경우의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1. 외부모(아빠 없이 엄마 혼자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육아를 할 경우 육아행복지수 = 100 / 100 = 1
2. 부모 모두 존재하나 엄마나 아빠 혼자 육아를 할 경우 육아 전담 엄마 또는 아빠의 육아행복지수 = 육아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 100 / (기본적인 육아의 고됨 100 +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배우자에 대한 불만 및 상대적 박탈감 100) = 0.5
3. 부모 모두 동등하게 육아에 적극 참여할 경우 엄마와 아빠 각각의 육아행복지수 = (기본적인 육아의 행복감 100 +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 및 육아경험 공유를 통한 만족감 100) / 부부의 동등 참여로 반으로 줄어든 기본적인 육아의 고됨 50 = 4
위의 산식은 매우 단순화한 수치계산법이지만 부부 중 한 명이 홀로 육아를 전담할 때와 부부가 동일하게 육아에 참여할 때 부부 각자가 느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는지를 개념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