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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Sep 15. 2021

사랑 물들다

손때 묻은 지게·숫돌·낫·반닫이가 수십 년을 견디며 색이 바랬다

    

해마다 태풍의 영향으로 물 폭탄이 쏟아져 마을이 침수되고 집을 잃은 이재민이 반복되어 속출한다. 


장마가 끝나고 아버지 산소가 있는 G시립 공동묘지에 들렀다. 봉분 앞에 흙이 쓸리고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돋아난 풀을 뽑고 경사면 흙을 정리했다. 벌초를 마치고 아버지 산소에서 100m쯤 떨어진 외조부모님 산소에 인사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두 분 산소에 술을 올리고 아들과 함께 절을 했다. 

  

큰외삼촌은 올곧은 성격으로 외조부모님 성묘를 잘하였다. 외삼촌이 아프신 이후로 산소엔 헝클어진 풀이 방치되어 있었다. 외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산소를 뒤덮고 있는 풀을 보고 외면할 수 없어 풀을 뽑으며 외할아버지와 회포를 풀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열 살 때 외할아버지는 20대 후반인 여든 다섯에 운명하셨다. 어머니께서 비통하게 우는 소리는 생살을 떼어내는 아픔보다 더한 슬픔의 소리였다. 


외할아버지는 유년 시절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불편하셨다. 불편하신 몸으로 홀로 6남매를 키우며 지게에 가족의 사랑을 지고 올바른 삶을 사셨다.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삶의 근본을 중시하는 인생관이 남과 달랐다. 외할아버지는 몸소 인생의 어려움을 느끼고 이를 피해 가기보다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인생을 사셨다. 

  

어릴 적 어머니와 외갓집 가는 언덕길에서 “엄마! 다리 아파,”하면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업고 천천히 걸었다. 어머니와 손잡고 외갓집 가는 길은 행복했다. 그 후로 초등학교에서 파하면 혼자 외할아버지께 달려갔다. 외할아버지는 고봉밥과 계란 프라이를 얹은 밥상을 나에게 내어주셨다. 허겁지겁 밥 먹는 나를 보고 “많이 배고팠구나.”하며 밥주걱으로 밥을 푹 떠서 나의 밥사발에 얹어 주곤 하셨다. 


밥을 먹고 나면 장작불에 달궈진 구들방에서 등이 뜨거워질 정도로 누워 지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었다. 어슴푸레한 저녁까지 한숨 푹 자고 집에 가려 하면 밥 먹고 가라고 또 밥상을 내어주셨다. 다행히 나의 유년은 외할아버지가 있어 풍요로웠다. 친할아버지께서는 일찍 운명하셔서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외갓집은 자드락 한 땅에 있었고 기와집에 넓지 않은 마루가 있었다. 겨울 안방 윗목에는 콩나물시루가 검정 천으로 빛을 가리고 무를 썰어 말리는 무 향내가 방안 가득했다. 콩나물시루·무말랭이·메주와 길쭉하게 썰어놓은 호박과 씨를 말리는 방의 풍경은 외할아버지가 그려 놓은 그림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세배 덕담으로 “뒤로 물러나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남에게 길을 열어주는 건 네 갈 길을 찾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외할아버지의 물건에는 고매(高邁)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당에는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지게·숫돌·낫·반닫이가 수십 년을 견디며 색이 바랬다. 잘 보관해 둔 지게는 외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아 의미 있는 물건으로 남아있다. 세월에 빛바랜 물건들은 외할아버지의 귀한 대접을 받고 집 안 구석구석 조용하고 깊은 존중이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버려지지 않았고 어느 것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손길에 다듬어져 반들반들 흐르는 윤기는 존중받는 물건들이 내는 빛이었다.

  

외갓집 안방 아랫목에는 늘 이불이 펴져 있었다. 밖에서 언 몸으로 방에 들어오면 할아버지는 발을 녹이라고 이불 한쪽을 들어주고 나는 당당하게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한 구들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장맛날처럼 젖은 삶을 살아도 인동초처럼 울타리를 감고 올라가 활짝 꽃을 피운다. 그 시절 외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는지 세월이 흘러 알게 되었다. 어려서 받은 외할아버지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내 마음에 물들어 어머니에 대한 ‘효’의 꽃을 피운다. 사랑을 안다는 것은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는 것과 같다.

  

우리네 삶은 생멸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미 떠나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어머니도 나도 그 어떤 이도 그 과정을 피할 순 없다. 사람의 생애가 별똥별 떨어지는 순간보다 짧다고 느끼며 산다는 것이, 또 떠난다는 것이, 그리움과 슬픔의 이별이 모두 뒤엉켜 둥둥 떠도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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