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돈돈돈(36~41세)
새집으로 이사
남편이 퇴원하고 나서 이사 갈 집을 짓기 위해 설계도도 받고 땅 기반도 다졌다. 하루는 남편이 집 짓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의붓아버지가 와서는 사위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협박을 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 집 두 채를 지어 한 채는 큰 애 주고 하나는 우리가 살려고 했는데 왜 여기 한복판에 집 한 채만 짓고 있는 거야?”
장인어른이 이렇게 나오니 남편은 대거리도 못 하고 오롯이 당하고 와서는 겁나게 속상해했다.
남편이 의붓아버지에게 당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어머니한테 따지러 갔다.
“어머니,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여태까지 내가 어머니에게 해 드린 것을 생각하면 땅을 그냥 줘도 아깝지 않을 텐데 500만 원이나 주고 산 땅에 집 두 채 지어 동생과 아버지에게 주라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 땅 너한테 판 것을 아버지한테 말을 안 해서 그래. 이번 일은 아버지가 몰라서 그런 것이니 마음 풀어라. 다음에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사과했다. 어머니에게 사과를 받고도 의붓아버지가 한 일을 생각하면 분이 안 풀렸다. 어렸을 때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매질했으면 됐지, 사위까지 멱살을 잡고 흔들어야 하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럭저럭 집이 다 지어지고 목포댁한테 집값은 다 못 받았지만, 이사를 했다. 이사 후 쌀 80kg 한 가마니를 사서 먹었는데 두 달을 먹어도 쌀이 남았다. 이제까지 전에 살던 집에서는 십 년을 살면서 한 달에 쌀 80kg 두 가마니를 먹었다. 거기에 겨울에 연탄도 한 달에 300장씩 썼는데 이제는 100장도 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 열다섯 개에 세 살던 사람들이 우리 쌀 퍼다 먹고 우리 연탄을 가져다가 땐 것이다.
이사해서 좋은 점은 많았다. 첫째로 새벽에 연탄재를 안 갖다 버려서 좋다. 십 년 동안 그 모진 쓰레기, 열다섯 집 쓰레기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버려야 했다. 하루만 빠지고 안 버려도 집채같이 쌓였던 쓰레기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새로 이사 온 집은 평지라 쓰레기를 문 앞에 놓아두면 쓰레기차가 가져간다.
두 번째는 조용해서 좋다. 전에 살던 창성동은 색시촌이 바로 집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어 우리 집 근처에는 깡패들도 많이 살고 하루 벌이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어 날이면 날마다 부부싸움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세 번째는 평지여서 좋다. 전에 살 던 집도 산꼭대기에 있어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눈, 비 올 때는 더욱 길이 험했다. 수송동 새집 주변은 평지 단독주택 지역으로 길이 깔끔하고 집들도 거의 새로 지어진 것이었다.
또 이웃 사람들도 행실이 점잖았다.
이사 간 집은 대궐같이 좋은 집이다. 내가 이런 집에서 살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다. 새집에 이사 가고 너무 기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제가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이게 다 없는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주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술을 주었기 때문에 얻어진 것 같습니다. 동대구역 지을 때 막일 일하는 사람들한테 밥 주고 술 주고도 돈 한 푼 못 받았는데 그때 제가 베푼 것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이사를 왔나 봅니다. 군산 와서도 창성동 꼭대기 집에서 한 달에 쌀 두 가마니씩 먹고살면서 세 사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서 이렇게 제가 복을 받았나 봅니다. 이제까지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헤치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이사 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세 살던 사람들
방 열다섯 개에서 세 살던 사람들은 쌀, 연탄을 가져가 우리 집 덕을 보고 살았다. 하루는 한 달에 방세 천 원 주는 것도 없어서 열 달 동안 밀린, 세 사는 사람이 새벽 3시쯤 우리 집 안방 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 아기가 지금 경기를 해서 숨이 넘어가요.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요. 돈 만 원만 빌려주실 수 있나요?”
나도 애들 키우는 사람인데 아기가 아파 죽어 간다니 아주머니가 안쓰러워 돈 만 원을 꺼내 주며 말했다.
“어서 병원에 가 봐요.”
며칠이 지나서 아주머니가 돈도 안 갚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 그 집 방문을 열어 보니 벌써 이사 가고 없었다. 그 사람들은 열 달이나 방세도 안 주고, 아기가 아프다며 자는 사람 깨워서 돈 만 원 빌려 갔으면서 간다는 말도 없이 이사를 했다.
‘방세는 못 줄망정 꿔간 돈이라도 주고 가지….’
빈방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또 하루는 장사를 갔다 와보니 둘째 딸 얼굴에 두 군데나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세 사는 집 딸이 둘째 아이보다 한 살 어린데 애가 우리 아이보다 성격이 좀 억셌다. 평소에도 많이 다투는데 이날은 기어코 얼굴에까지 상처를 냈다. 여자는 낯꽃이 좋아야 하는데 얼굴에 잘 없어지지도 않는 손톱자국을 그렇게 길게 내놔서 너무 속이 상했다. 그 애 엄마를 불러내서 화를 냈다.
“내가 집에서 애들만 키우는 사람도 아니고 노상 애들 노는데 쫓아다닐 수도 없으니 미경이 엄마가 이사를 해야겠어. 아이들이 손발이 안 맞고 성격이 똑같아서 자주 싸우니 그 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네.”
미경이 엄마도 맞서서 화를 내며 퍼부어 댔다.
“돈 벌어서 이 집 꼭 살 테니 두고 보세요. 나는 그때까지 절대로 이사 못 가요.”
이렇게 나오는데 미경이 엄마는 쉽게 이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애를 내보내야지 그냥 두면 둘째 딸하고 싸워서 계속 딸을 다치게 할 것 같았다.
생각다 못해 곗돈으로 꾀어보기로 했다. 그 시절에는 은행에 저금하지 않고 돈 계를 많이 했다. 나는 원래 계도 잘하지 않는 성격인데 미경이네를 이사시키려고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근처에 사는 계오야를 찾아갔다.
“이번에 같이 계를 하고 싶은데 제가 2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원래 돈 계를 하면 계오야가 1번을 받으니 계원들이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번호가 2번이었다.
“이 계가 2년 24개월짜린데 2번을 받으려면 계원들이 다 갖고 남은 번호 중 3개를 더 넣어야 해. 그래도 할 거야?”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계오야한테 2년짜리 계에서 2번 하고 나머지 번호 3개를 더 받아 모두 번호 네 개를 내 몫으로 받아 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는 미경이 엄마를 불러 미경이 엄마 앞에 곗돈 번호 2번을 내놓으면서 말했다.
“계 할 때 2번 번호는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이렇게 남은 번호 세 개를 떠안고 이렇게 좋은 번호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 계에 한 달만 돈 넣고 계를 타서 전세방을 얻어 이사를 가. 나한테 월세 내는 돈에 조금만 더 돈 보태면 곗돈 넣을 수 있을 거야. 그럼 이제 이사 갈 거야?”
월세는 없어지는 돈이지만 전세는 집 나갈 때 받는 돈이니 그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제야 미경이 엄마는 좋아하며 이사를 한다고 했다.
“그럼 이사를 해야지요. 후화 엄마 덕에 내가 월세방 면하고 전세방 얻어 가게 생겼네요. 정말 고마워요.”
다음 달 미경이 엄마는 이사했다. 그 뒤 나는 24개월 동안 계를 세 개나 넣었다. 계라는 것이 돈을 먼저 타면 본전 외에도 이자도 보태서 넣어 주는 것이라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쓰는 건데 나는 딸을 위해서 2년 동안 돈을 넣었다. 그리고 미경이 엄마하고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 어린이집처럼 아이를 돌봐 주는 탁아소가 있었다. 내가 장사하러 나가면 큰 딸, 작은딸을 볼 사람이 없어서 탁아소에 맡긴 적이 있다. 탁아소는 아침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려와야 하는데 내가 장사를 하니 아이들 찾는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나중에는 탁아소에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 사는 사람들한테 우리 아이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세 사는 사람들은 자기네 집 아이들까지 우리 집 방에다 데려다 두고 때가 되면 우리 집에서 밥도 같이 먹고 우리 집 장롱에 이불도 다 꺼내서 소꿉놀이하고 놀다가 내가 올 시간 되면 애기 엄마들이 싹 치워 놓고 자기 집으로 갔다. 아침에 장사하러 나갈 때 항상 전기밥솥에 밥을 한 솥 해 놓고 나오는데 저녁에 집에 가보면 그 많은 밥이 하나도 없다. 연탄보일러 구멍도 하루 종일 열어 놓고 큰 솥단지에 물을 덥혀서 우리 집 식구, 세 사는 식구 모두가 그 물을 퍼다 빨래하고 세수하고 아기들 목욕을 시켰다. 이러니 겨울엔 한 달에 연탄도 수백 장씩 땠다. 나도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장사하느라 아이들을 잘 돌볼 수가 없으니 애들을 봐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이웃집에 놀러 가서 김치가 맛있다고 먹기에 한번 먹어봤는데 그게 꼭 우리 집 김치 맛이 났다.
“이 김치 누구네 집 김친데 이렇게 맛있어?”
“00 엄마가 친정 가서 갖고 왔다고 한 통 줬어.”
나는 집에 와서 우리 집에 세사는 00 엄마를 불렀다.
“아니 주인 몰래 김치 퍼다 먹었으면 자기나 먹을 일이지 어떻게 다른 사람까지 줄 수가 있어? 이렇게 손버릇이 안 좋은 사람하고 살 수 없으니 이사를 가.”
손버릇이 나쁜 00 엄마는 이렇게 꼬리를 잡히고 나갔다. 우리 집은 달동네 집이라 돈 없는 사람들, 막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가방 하나씩 들고 이사를 와서 나갈 때는 보통 아기 둘까지 낳아 바리바리 짐 싸 들고나갔다. 없는 사람이라 개중에는 끼니를 못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우리 집 음식으로 먹여 주었으니 하느님이 내 장사가 잘되게 해 주신 것 같다.
토마토의 인연
아침 일찍 장사를 시작하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부탁을 했다.
“아줌마, 토마토 한 개만 주세요.”
“토마토 한 개로 뭐 하시게요?”
“제가 당뇨가 있는데 저 토마토 한 개를 먹어야 가지 안 먹으면 여기에서 쓰러질 것 같아서요.”
토마토 한 개를 아주머니에게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그걸 먹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줌마, 내가 딸네 집에 가는 길인데 옷을 갈아입고 와서 돈이 없네요. 토마토 값은 다음에 꼭 갖다 드릴게요.”
“그렇게 하세요.”
그 일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며칠 있다가 다시 왔다.
“서울 아들 집에 다녀오느라 늦게 왔네요. 미안해요.”
아주머니는 그날 토마토 한 상자를 사 갖고 갔다. 며칠 있다가 또 딸을 데리고 와서는 딸이 과일 사러 오면 싸게 잘 주라고 하면서 소개를 시켜 주고 갔다. 다음에는 그 딸이 시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시어머니를 소개해 주고 갔다. 또 그 시어머니는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소개를 시켜 주었다.
토마토 한 개가 사람들을 우리 집으로 이어지게 해서 우리 집 물건을 그렇게 많이 팔아준 것이다.
장사 비법 전수
나는 어떤 물건이라도 사서 팔기만 하면 그렇게 잘 팔렸다. 다른 사람들보다 물건을 세 배는 더 많이 사서 팔았다. 장사가 잘되니 돈은 많이 벌리는데 내가 먹고살 만해도 젊을 때 너무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없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청과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장사하러 나오면 장사도 할 줄도 몰라 물건을 썩혀 버린다. 안타까운 마음에 장사를 이렇게 하라고 비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계절이나 절기에 따라 잘 팔리는 물건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고마워하면서 자기네 가게에 손님이 왔는데 가게에 없는 물건을 찾으면 손님을 데리고 우리 가게에 와서 내 물건을 팔아줬다.
“아니, 우리 집에도 있는 물건을 여기서 주지, 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물건을 팔아주고 그래요?”
그러다 젊은 상인 옆 가게 상인이 이렇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들어도 젊은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가 다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본전만 받고 물건을 주면서 ‘얼마 받아라’ 하고 물건값까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 처음 나와 장사하는 것을 보면 내가 젊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고생하면서 장사 배운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젊은 사람들만 보면 장사하는 법을 자꾸 알려주고 싶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들은 장사 비법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