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애와 위태로움

편한 길 대신 단단한 길을 선택하기

by 노멀휴먼

나는 아부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총애를 받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겪은 일들도 적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예쁨을 받는다는 건

분명 나쁜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사람이 자신의 권한으로

내 편의를 봐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주변의 타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총애를 받아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의 예쁨을 받아

사소한 핑계로 조퇴를 허락받는 친구가 있었고,

대학 시절에는 나와 비슷한 수준의 과제를 냈음에도

교수와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성적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에서는 이런 총애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같은 실수를 해도 혼나는 정도가 다르고,

같은 실적을 쌓아도 평가 결과가 다르며,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고생을 더 알아주는 이가 있다.

가끔은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곤 했다.


만약 주변 사람이 이런 총애를 받는다면,

우리는 솔직히 불편한 감정을 숨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총애에 대해 조금 다른 시선을 보았다.

천하에 존재하는 세 가지 위험 중 하나가

‘덕이 적으면서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또 총애를 받거든 욕됨을 생각하고,

편안함에 처하거든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도 적혀 있다.

총애를 받는 게 분명 좋은 일이지만,

왜 굳이 이렇게 경계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보통 총애를 받으려면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 대학 시절에는 교수님, 직장에서는 상사다.

그들에게 잘 보이면 좋은 평가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총애가 나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변에 험담하는 사람이 생기고,

내가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 없이 총애를 받는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총애의 크기만큼 미움도 커지는 셈이다.


만약 나를 예뻐해주는 사람이 평생 함께 한다면 좋겠지만,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인연도 흘러가게 마련이다.

나를 지켜주던 든든한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 숨겨졌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덕이 없을 때 임금의 총애를 받는 걸 위험하다고 했고,

총애를 받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경고했던것 같다.


총애를 쉽게 얻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인간은 대부분 아첨에 약하다.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간신은 있었고, 그들은 큰 권력을 가졌다.


현대 사회도 다르지 않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다 아첨하는 사람이 더 좋은 혜택을 받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아첨으로 얻은 총애는 편하지 않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음해하고

중상모략하는 일이 잦아진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오해로 쓸모없어지기도 하고,

능력 없는 사람이 마치 뛰어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상모략이 들통 나면 벼랑 끝에 매달리게 된다.

아첨으로 흥한 자, 아첨으로 망하는 법이다.


누군가에게 총애를 받으려 노력하는 것 자체는

옳고 그름으로 단순히 판단할 수 없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시기와 장소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

어떤 이는 총애를 받으며 자신을 발전시키고 더 큰 사람이 되지만,

어떤 이는 총애가 끊기자마자 권력을 잃고 사라진다.


어느 책의 경고처럼 총애를 받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면,

겸손해지고, 누군가의 예쁨 없이도

스스로 충분한 능력을 갖추려 노력하게 된다.

단순한 윗사람의 총애로 얻은 이득은 작은 바람에도 무너질 테니까.


게다가 내 능력을 증명하면,

나를 질투하던 이들의 인식도 달라진다.

‘윗사람에게 잘 보여서 사랑 받는 사람’이라는 질투가,

‘능력이 뛰어나서 특별히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이해로 바뀌는 것이다.


이해가 바뀌면 그들은 적이 아닌 동료나 아군이 된다.

내 능력을 키우는 것은

질투를 호감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바뀐다.


윗사람의 총애에 의존해 단기간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그 줄이 끊기면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반면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능력이 있으면,

울퉁불퉁해도 내가 원하는 길을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


편한 길보다는 어려운 길일지 몰라도,

그 길은 내 삶을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은 분명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사랑에 기대기만 한다면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누군가의 총애가 아닌

내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가까울것 같다.

서툴고 부족해도, 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세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유이자 행복이 아닐까 싶다.

keyword
이전 18화작은 웃음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