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자식들에게 쓴 편지
나의 이야기책 여섯 번째 모임
4. 23에는 마을에서 소풍을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화요일에 가는 거였는데 그날 비가 많이 내려서 할 수 없이 하루 연기하여 23일 수요일에 다녀와서 나의 이야기책 모임은 한 주 쉬게 되었다.
권0주 할머니는 팔순이 넘었는데도 구순이 넘는 다른 마을 할머니에게 가서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도시락도 가끔 배달해 주신다. 그래서 22일에 휴가를 미리 내놨는데 소풍이 연기돼서 함께 가지 못해 아쉬웠다. 경북 울진 후포항에 가서 회도 먹고, 홍게를 한 사람당 한 마리씩 푸짐하게 먹었다. 쪄놓은 홍게가 차가워서 처음엔 먹기가 그랬는데 먹다보니 차가워서 더 쫄깃한가 싶기도 해서 맛있게 먹었다.
여하튼 한 주 쉬어 4. 30 수요일에 나의 이야기책 할머니들이 다시 모였다. 5월 가정의 달을 앞두어 가장 생각나는 가족에게 편지쓰기를 해보자고 했다. 세 주 동안 계속 시만 써서 다른 장르를 써보아도 좋겠다 싶었다. 나의 이야기책 모임에 나오시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글쓰기를 잘하셔서 편지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날따라 많은 분이 오시지는 않았다. 김0년 할머니와 노0년 할머니는 다음날 비 온다는 소식이 있어 깨와 고구마를 심느라 결석을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송0호 아줌마가 조선시대 경주의 한 여인이 사별한 남편을 생각하며 쓴 편지를 가져오셨다.
편지 쓰기 전에 이 편지를 박0순 아줌마에게 읽으시라 했더니 울먹거리며 편지를 읽으셨다. 하필 박0순 아줌마는 남편께서 대장암으로 사별하셨는데 내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사별한 남편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를 읽게 했으니... 송0호 아줌마도 재작년에 갑자기 남편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눈물을 글썽이신다. 나는 유념하지 않았던 사실인데 송0호 아줌마가 나의 이야기책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모두 과부라고 하여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구성원이 짜여진 것 같긴 하다. 남편이 살아 계신 할머니들은 이야기책 모임에 나오시지 않는구나ㅠ
여튼 원본이 아니라 요즘 말로 풀어낸 글로 읽어서 더 애절한 편지였다. 돌아가신 남편들에게 편지 쓰라고 하면 더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아 가족 중에서 지금 가장 생각나는 이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권0주 할머니는 자식들 모두에게 쓰신다 하고, 박0순 아줌마는 이제 여섯 살 된 막내 손자에게 쓰신다고 했다. 송0호 아줌마는 남편(시누이에게는 오빠)을 먼저 보내고 아직도 힘들어한다는 막내 시누이에게 편지를 쓰셨다.
권영주 어머니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쓸쓸하다고 하셨다.
가정의 달 5월은 듣기만 해도 좋은 달이라고 하신다. 평상시 혼자 계실 때 많이 쓸쓸하신가 보다. 가정의 달에 자식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느껴져 애잔하다.
핀이 나갔구나ㅠㅠ
손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번 쓰셨다. 이번 연휴에 가족들이 오면 이 편지를 읽어주고 전해 주시라 말씀드렸다. 자식들에게 처음으로 써보는 편지라 했다. 이 편지를 읽는 자녀들에게, 손자에게, 시누이에게 진심이 가닿아 한 송이 꽃을 피울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꽃 말이다.
편지봉투에도 예쁘게 꽃을 피우시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