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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Aug 28. 2024

내가 사랑하는 얼굴

  내 아랫입술 안쪽에는 자주 잇자국이 생긴다. 낯선 사람들과 몇 시간 한 공간에 있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남고 마는 흉터. 흉터가 생기는 데에는 나를 향한 덜함과 남의 더 나음이 기반이 된다. 


  비교적 짧은 윗입술 때문에 앙다물어지지 않는 사이, 동그람과 네모남의 흐릿한 경계에 있는 턱, 집중할 때면 한껏 내려가는 입꼬리와 어스름한 그림자까지. 자주 내 얼굴이라는 겉을 생각하다 보면 미움을 챙겨보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좋은 모습보다도 한낮의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은 내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면이다. 


  상대의 시선을 가장 큰 것으로 여긴 역사는 아주 깊고 오래되었다. 나는 상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있는데, 학생 시절에는 그의 생김새로 소위 '인기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유추했고, 그 기준이 무의미해진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라는 더 모호한 기준에 기대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경계는 예나 지금이나 모두 '내가 본디 가지지 못했거나 가졌으나 잃은 것'을 기준으로 한다. 나의 뼈들은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라 의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변할 수 없는 영역이며, 갈수록 늘어나는 살들은 없었으나 생긴 범주에 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할 수 없는 스스로의 얼굴과 몸을 상대와 빗대어 행복 척도를 가늠하는, 관상가보다 더 혹독한 관상의 세계를 오고 간다.


  내 몸에 있는 것들이 증오스러울 때면 집에 돌아와 약간 튀어나온 오른쪽 앞니를 온 힘을 다해 안으로 누른다거나 양 검지로 입꼬리를 올린다거나 각진 턱을 둥글게 만들어본다. 마치 액을 빼내는 살풀이처럼, 대단히 거하고 성스럽게. 그러면 내일이면 조금은 나아져있을 거라는, 무속신앙의 마지막 단계인 희망이 가득 남는다. 그것이 본질적인 해결을 가져다주지는 않으나 액운이 빠지고 남은 공간이 사라진 적은 없어서, 대신 다른 걸 채운 채로 내일을 기다린다. 그만큼 나는 내 겉을 증오하는 일을 아주 체계적으로 거치곤 해서, 내 사진첩에는 아름다움과 고의로 만든 못생김 사이의 절묘한 중간 모습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얼굴들을 휴지통으로 내보내는 건 내가 이따금씩, 혹은 그보다 더 자주 하는 정결의식. 그리고 언젠가부터 희미하게 남은 잇자국을 세어보게 됐다. 얼마나 자주 흉터가 생기고 사라지나 확률로 점쳐보기. 행복점이라고도 불리는 그 행위는 내가 믿는 신이 가르치는 삶의 아주 반대에 있다.


  그럼에도 나를 동요하고 감동케 까지 하는 것은 아주 이상하게도 당당하게 드러내는 얼굴인데, 그런 얼굴은 꼭 자연스레 내면까지 보인다. 부족함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 꾸밈없는 얼굴. 꺼내놓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향 같은 것. 나는 그런 얼굴을 사랑한다. 내가 가진 게 아니라서. 나보다 더 자주 그들의 얼굴을 관목 하고 눈을 맞추고 그만이 보내오는 향을 어렴풋이 느낀다. 


  행복의 기인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거라서, 내가 사랑하는 얼굴은 불행과 비교적 멀리 있는 얼굴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들이 흩뿌리는 향은 셔터 깜빡이듯 짧은 순간 뱉는 언어나 행동, 표정 혹은 자세의 사이사이마다 숨어있다. 이를테면 자기 긍정이 드러나는 미소 혹은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는 언어 같은. 잘 앎으로 어떤 날에는 타협할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단호히 다른 선택도 내놓을 수 있는, 나는 그걸 '자기 유연도가 높은' 사람이라 부른다.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선 내 어떤 외부적 흠도 꼬집어내지 않게 되는 초인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비로소 나와 너 모두의 모습을 관망하는 상태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자기 존중이 나에게도 넘어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염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보고 올 때면 나는 평소보다 거울 속 눈을 더 제대로 마주할 수 있고, 나 해체 하기를 피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된다. 지인 K가 그랬고, 고작 한 번 만나본 작가 S가 그랬고, 가게 주인 H 또한 그랬다.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나를 숙고하다 보면 결국엔 간단한 한 가지가 체에 걸러진다. 어떤 배경 속에 있어도 동일한 나로 살아가는 것. 사실 그렇게 부러움에 타들어갈 것 같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은 스스로를 잘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의 것이었다.  


  오늘은 사랑하는 얼굴들을 더 오래, 자세히 떠올렸다. 오늘 밤에는 아랫입술의 흉터가 그리 선명하지 않을 것 같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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