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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Aug 28. 2024

마디에 새긴 불행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벙쪘다. 아직 내 삶 정도는 굴곡의 시작만도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난관에 봉착한. 행복을 기도해야 할까, 불행을 빌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대체로 우울했기 때문에 내게도 멋진 글을 기대하려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야 했다. 그렇지만 대체 불행은 어디까지 가야 쓸 수 있는 것인가. 늘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에서 수많은 널뛰기를 그린다. 그러나 내가 잘 쓰는 것이 불행임은 분명했다. 나는 언제나 불행을 먹고 자랐으므로.


  남의 불(不)을 즐겨 읽는 나도 이기적이지만, 비슷한 글은 쓰고 싶으면서 삶은 행복하고 싶은 나는 더 이기적이다. 남의 사건사고와 범죄사건을 기웃거리고, 우울에 가득 찌든 글을 읽으면서 감탄한다. 안타까운 가슴으로 들여다보지만 실은 잔인하게 즐기는 것이다. 가끔 그런 내가 소름이 끼쳐서 황급하게 예능채널로 바꿀 때가 있다. 웃는 소리가 온 집안을 울리지만 생각은 아까 거기에 있고, 결국 그때 쓰기 시작한다. 


  인생에서 행복을 적은 순간은 극히 드물었다. 행복은 담는 게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불행은 그래서 계속 썼다. 일기장에는 우울한 말들이 엄선된다. 삶이 단두대로 향하지 않게 많은 불행의 언어를 종이 속으로 욱여넣는다. 그럼 내 앞에 남은 건 소량 남은 행복이고, 이제는 그것만 즐기면 된다. 행복해지려고 욕심낼 때, 안고 태어난 것을 억지로 거스르려 할 때 불행은 피어난다. 사실은 기뻐지기 위해 슬픔을 쓰는 것이다. 


  더 이상 불행을 부정하지 않는다. 삶을 거기에 바치고 왔더니 손과 타자로 친 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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