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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Aug 28. 2024

폴폴 날아간 기억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어릴 때부터 내 방은 항상 난잡했다. 엄마의 폭풍 잔소리를 들으며 치운 방은 아무리 노력해도 3일을 채 못 갔다. 앉아서 공부하고 낙서하듯 글을 쓰던 용도의 책상은 작은 창고로 용도를 상실했고, 바닥엔 쌓인 물건 때문에 남은 자리를 징검다리처럼 뛰어다녔다. 두 팔을 한껏 벌려야 옮길 수 있는 옷가지들은 생활할 땐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다가 잘 때쯤이면 바닥으로 생활권이 옮겨진다. 때문에 내 방의 대청소 주기는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찾아온다. 일주일에 한 번은 그간의 허물과 생활 흔적들을 원상 복귀하곤 한다. 물론 매주 어김없이 더러워지지만.


  대청소하는 동안은 평소보다 더 굼뜬다. 매사 빠릿빠릿한 엄마가 깊은 참을성을 잃는 시간. 그 이유는 여과 없이 '추억팔이 시간' 때문이다. 온갖 물건이 쌓인 방 한가운데에 앉아 서랍 구석에서 나온 노트를 읽어보기 시작한다든지,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편지지를 발견하곤 갑자기 누군가에게 감성 젖은 편지를 쓴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어느 날은 중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애의 이야기가 잔뜩 담긴 일기를 보고 또 다른 날은 유학 시절 찍어 모았던 사진첩을 들춰봤다. 그렇게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난 옛 기록들은 귀찮은 대청소에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엄마는 대체 그 자그마한 방 청소에 몇 시간씩이나 걸리는 이유를 늘 묻곤 하지만. 


  그중 가장 재미있는 건 꼭 여과 없이 적힌 기록들이었다. 중학교 초반, 그러니까 욕도 멋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비속어 섞인 그림일기 혹은 1년 다이어리 상반기와 하반기에 짝사랑으로 등장하는 이가 각각 다른 웃픈 유학일기 같은 것들. 혼자 보는 일기에도 꾸며낸 내가 가득한 지금과는 달리 일기가 유일한 분출 거리였던 그 시절의 기록들이 지금은 제일 귀하다. '이렇게 욕을 많이 했었단 말이지 내가?', '그때 이 사람도 좋아했었나?' 하는 기억 저편에 있던 사건까지 죄다 꺼내진 이야기를 하루 종일 붙잡다 보면, 어느새 대청소는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엄마의 숱한 눈치는 받아야 하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재미있다. 지난날의 진지하고 슬픈 시간은 그렇게 대청소의 쏠쏠한 재밋거리로 탈바꿈되었다. 


  일기에 솔직하고 적나라한 이야기를 적지 않기 시작한 건 주변에 미디어가 생기고부터인 것 같다. 쿠키폰과 노리폰의 시대가 한참 지나고 갤럭시와 아이폰이 그 자리를 대체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줄곧 2G 시대를 살고 있었다. 친구에게 몰래 공기계를 받아 쓴 적은 있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되어서 엄마에게 빼앗긴 것뿐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은 없다'를 완강하게 제창하던 부모님의 교육 신념은 내가 보수적인 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정말로 실현되었다. 때문에 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거냐던 친구들의 물음이 사라진 지는 불과 몇 년이 채 되지 않았다. 


  모든 미디어가 차단됐던 세계에서 할 수 있던 거라곤 수많은 구전과 서면 기록뿐이었다. 그 시절 우리 대부분은 1년 다이어리 정도는 거뜬히 가지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구전이 구설수로 변질되는 작은 사회에서 사람을 믿을 수 없을 때 하는 것, 그게 기록이었다.


  얼마 전에는 장롱을 탈탈 털어 정리하다가 작년에 들고 다니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또다시 청소를 뒤로 미뤘다. 작년에는 뭘 생각하면서 지냈을까. '월 하고 뭘 하다가 잠들었다'로 귀결되는 페이지로만 가득하니 결과적으로는 재미가 없었다. 수년이 지나고는 이런 형식의 기록도 의미가 있겠지마는 내가 원했던 건 더 솔직한 나와의 대담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쏙 빠지고 허울 좋은 말만 남아있었다. 그 시절의 난 성숙한 모습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진짜 내 마음이었다면 아쉬움도 적지 않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미성숙한 나인데 가장 솔직함을 요하는 사적인 기록에도 멋진 척하는 나만 적어두었다. 미디어가 일상을 침투하면서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영상 하나 보면서 쉴 수 있고, 더 그럴듯한 글을 올리면서 위안할 수 있어서 그랬던 것일지. 방은 안 치우고 지난 일 년의 흔적에 아쉬움만 앓는 채로 반나절을 보냈다. 


  그러다 오늘은 잊고 있던 노트를 또 하나 찾았다. 방이 거실만 한 것도 아니고 뭘 이렇게 자주 발견하는지.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스티커를 붙여 자랑하고 다니던 다이어리는 이미 나의 일기임이 만천하에 알려졌고, 언제 누가 볼지 모르니 욕도 쓸 수 있는 진짜 솔직한 노트는 따로 두자고 했더랬다. 그렇게 철저하게 비밀리에 적힌 노트를 읽으면서 드디어 '이거지!'하고 쾌재를 불렀다. 오랜 친구와의 신뢰가 깨지던 순간의 충격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적나라하게 적혀있는 작은 노트에서 수많은 기억을 되찾았다. 하루의 나열보다 작은 사건의 긴 감정이 훨씬 오랜 시간을 상기하고 추억하게 했다. 


  마음에 치여 부러 쉽게 휘발하려 했던 수많은 걱정과 고통의 글들을 떠올린다. 지금은 전보다 덜 어수선한 내 방도. 방은 내 마음이기도 하다.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방일수록 그 어수선함조차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가난했다는 뜻이고, 정돈된 방이 오래 유지될수록 그만한 마음의 힘이 남아있었단 뜻이다. 결국 내게 대청소의 의미는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 깨끗하게 한다는 사전적 의미보다 널브져있던 과거의 마음을 이젠 괜찮아진 현재로 희석하는 감정적 의미가 더 강하다. 


  요즘은 방이 꽤 오랫동안 깔끔하다. 그런데 마음이 다듬어져서가 아니라 속으로 태우기 때문에 그렇다. 적지도 않고 소진시킨다. 소진하는 일은 간단하고도 쉽다. 그저 웅크리고 있다 보면 괜찮은 시간은 노력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응축해 폴폴 날려버리는 기억은 후에 또다시 아쉬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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