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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그 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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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Jul 14. 2024

음, 파


사진: Unsplash의 Tilly Jensen


수영 강습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호흡법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의식하지 못했던 숨쉬기가 물속에서는 어렵고, 낯선 일이 된다.

강사는 '음, 파' 소리를 내며 호흡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수영 강습 첫날 모든 사람들이 수영장 벽을 붙잡고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음' 소리를 내며 코로 숨을 뱉고, 입을 물 밖으로 빼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파'하고 숨을 들이켠다.


수영이 좋아서 2년 정도 매일 수영장에 갔다. 그러고 보면 나는 혼자 해도 불편하지 않은 운동들에 매료되는 것 같다. 시간만 나면 유튜브의 수영강습 영상을 보거나, 국가대표 수영 선수들의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했다. 몸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기 위하여 스트레칭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어깨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들락거려야만 했다. 초급, 중급, 상급으로 월반하며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다이빙 등을 배웠다. 수영 강습 시간이 되면 강사는 맨 앞쪽에 나를 세웠다. 25M의 수영장 레일을 왕복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게 되었다. 내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그리는 자세와 비슷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수영장에 가면 항상 부러운 사람이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그들은 나처럼 빠르지도, 수영 자세가 예쁘지도 않지만 25M 레일을 끊임없이 왕복한다. 얼핏 보면 멈춘 것처럼 속도가 느리지만, 그들은 팔을 젓고, 발등으로 물을 누른 만큼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3번만 왕복해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속도와 자세는 나아졌지만, 물속에서 숨 쉬는 일은 2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숨이 차다.

물속에 들어가면 호흡에 대한 강박이 생긴다. 본능적으로 최대한 숨을 많이 들이마시려고 한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허우적대다 보면 그만큼 내뱉지 못할 때가 많다.

들이마시는 숨은 많은 데, 충분히 내뱉지 못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무언가를 버리거나 포기해야만 얻는 것도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내 안이 온갖 것으로 가득 찼을 때의 꽉 막힌 느낌 같다.


아무리 팔로 물을 밀어내고, 발등으로 눌러봐도 원하는 만큼 나아가지 않고, 숨이 차오를 때면.

물 밖으로 나와 끊임없이 레일을 왕복하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들은 물속에서 유유하다.

빠르거나 느리다고 말하기 힘든 속도로, 그래서 나아간다기보다는 물속을 부유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숨이 조금 가라앉고 차분해진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배운다는 건 어쩌면 뭔가를 잘 해내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일이라고.



                     

이전 09화 대화의 주제로는 어울리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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