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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Oct 24. 2024

[투병기] 대혼돈의 시간

암 선고 - 모든 것이 소용없어지는 그 마법의 순간

대 혼돈.

암 진단을 받은 후의 심리 상태는 그랬다. 

겉으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됐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마치 아무런 사전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에 우리 단 둘이 내동댕이쳐진 느낌이다. 60여년 살면서 배우고 축적해 온 모든 지식과 경험이 깡그리 사라지고 백치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오늘날 의술이 많이 발달했고, 그래서 일찍 발견하면 얼마든지 완치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암 진단은 여전히 ‘사형 선고’와 같이 받아들여진다. 해서 진단을 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나만 그랬던 것일까… 

막막하다. 

믿을 수도 없다. 저렇게 멀쩡하게 건강한데 암이라니!


폐암을 통보한 의사는 담당 교수님이 배정되고 추후 치료 일정이 정해질 것임을 알려주고 가버렸다. 당장은 무언가를 물어볼 사람도 없이 병실에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무슨 말을 할 수도,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는 어색하고 괴로운 시간이 흐른다. 그저 괜찮을 것이라는, 치료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담은 추상적인 단어만 공허하게 되뇔 뿐이었다.

물론 치료 과정과 지켜야 할 일 등을 알려주는 설명 과정도 있었다. 안내에 따라 암센터의 한 방으로 가니 치료와 식사 등 평소 생활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이라 고는 육류와 생선 등이 적절하게 배합된 균형 잡힌 식단으로 영양을 잘 공급해야 한다는 것, 치료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감염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 정도일 뿐이다.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게 된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졌다. 

폐암 생존율은 수술이 가능한 경우, 1기는 80%, 2기는 50%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5년 생존율이다. 또 소세포암과 비소세포암으로 구분되며 수술은 비소세포암인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요약하면 비소세포암 1, 2기의 경우에는 수술 예후가 좋다면 5년 이상 살 수 있을 가능성이 꽤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꿔 말하면 수술이 불가능한 소세포암이라면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하지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는 뜻이 된다.


당장은 이런 글귀는 건성으로 읽는다. 희망을 꺾을까 봐 못 본채 한다. 그리고 우리만은 모든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라고 애써 다짐한다. 

담당 교수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전이므로, 모든 것을 가장 희망적인 쪽으로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숨이 좀 차는 것 외에는 심각한 증상이 없으므로 암의 초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수술로 쉽게 완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만 잘 극복하면 빠른 시일 내에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을 되찾으며, 우리는 다시 행복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다시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병상 모니터를 통해 아침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대 혼돈은 그렇게 감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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