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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15. 2024

[투병기] 발끝부터 하나씩 생명을 잃어가는...

힘겨운 '존엄' 지키기

죽음으로 끝날 운명의 암투병은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이다.

‘점진적 상실’이란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다.

그런 상실을 겪은 끝에 죽음은 처참하게 오는 것 같다. 결코 우아한 모습을 끝까지 간직하지는 못한다. 안타깝게도. 수척해지고, 부어 오르고,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을 잔영으로 남기고 떠나간다. 그 와중에 ‘존엄’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눈을 감으면 그제서야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죽음이다.


투병이 계속되면서 시간이 지나면 점점 거동이 불편해진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걷고 씻고 먹고 용변을 보고 이리저리 필요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살아있음의 증표다. 아무 어려움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이 모든 행동이 하나하나 의미를 갖게 되고, 하나하나 점점 어려워지는 과정. 그것이 병이 악화되는 과정이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행동의 자유를 하나하나 잃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에 밭을 한 뙤기 사 두고 주말마다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그 마을 외딴 곳에 도시에서 온 우리 또래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부인은 아직 50대 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져 불편한 상태였고, 남편이 그런 아내를 돌보면서 내려와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남편을 ‘열부’로, 그 집은 ‘열부네’로 불렀다. 그만큼 그 사내는 아내를 정성껏 보살펴주고 있었다. 밥 먹이고, 씻기고, 병원 데리고 다니고…

 

“당신은 내가 아프면 저렇게 할 수 있겠어?”

“저렇게 까지는 못하지…”

“그래 그럴 거야. 당신 성격에… 괜찮아. 아프면 간병인 쓰면 되지...”


우리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런 현실이 우리게도 닥친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면 막상 닥치니까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사실 뇌 전이가 되기 전까지는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고, 몸이 좀 약해진 것 외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입원 중이던 어느 날 식사 시간에 우연히 숟가락을 든 아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뭐, 건강한 사람도 가끔씩은 떨리기도 하니까…”


처음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점진적 상실’의 신호탄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보다 앞선 징후도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테이블이나 소파 등의 모서리에 부딪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점 빈번해졌던 것 같다.

뇌 전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은 이랬다.

뇌는 우리 몸의 컨트롤 타워다. 거기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명령 신호가 구석구석 전달되지 않는다. 그에 따라서 먼 곳부터 기능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비유하자면 저 복도 끝에서부터 전등이 하나씩 꺼져오고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용변이었다.

아내는 늘 품위 있게 행동하고 단정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옷 매무새와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나도 늘 그런 부분을 존중한다. 그러니 화장실 가는 문제는 서로에게 너무나 껄끄러웠다.

처음에는 내가 부축해서 화장실까지 데려다 주고 나왔다. 그러면 벽이나 장애인용 지지대 등을 붙잡고 혼자 처리하고 나온다. 물론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집에서는 괜찮았다. 어차피 우리만 사용하는 화장실이므로. 그러나 입원 중에는 문제가 달랐다. 다른 환자들과 함께 쓰는 화장실에서 한정 없이 시간을 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거동도 점점 어려워져 혼자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결국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서 용변을 마칠 때까지 함께 모든 것을 다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침대에 누워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변기에서 기저기, 소변 호스까지… 결국 흔히 말하는 대소변을 받아내는 상황까지 가는 것이다.


‘존엄’이란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 사람의 ‘존엄’을 최대한 지켜주고 싶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간병인은 물론 친 자매에게도, 그것은 노출시키기 싫었다. 우리는 딸이 없었으므로, 딸은 원천적으로 제외다. 나도 그 행위가 싫은 것이 아니라, 그의 ‘존엄’을 해치기 싫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른 누구에게도 노출하지 않고, 오직 나만이…


결국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돌아눕지도 못하므로 욕창 방지를 위해 시간마다 이리저리 돌아 뉘어야 한다. 그래도 욕창은 생겼다.

몸 뿐만이 아니다. 말문을 닫았고, 종국에는 음식도 제대로 씹어 삼키지 못한다. 그렇게 육신의 기능은 하나씩 꺼져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무기력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일상의 시중을 드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신경의 말단부터 죽어 들어가니까 통증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암이나 다른 심각한 질병에 따른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진통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 심한 치통만 해도 일반 진통제는 전혀 듣지 않는다. 강력한 약효를 지닌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다. 그것도 통증을 줄여줄 뿐, 없애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런 진통제를 다량으로 계속 투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내성이 생겨 나중에는 그 마저 듣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몸에도 상당한 무리가 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치료의 가능성이 희박한, 그래서 죽어가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을 고려할 이유가 없다. 당장 통증을 줄이고, 그래서 환자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 우리도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투여했지만, 신체 기능이 하나하나 죽어가면서 진통제 사용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만큼 통증을 못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실 창문 너머로 저녁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사위가 고요하다. 귀를 기울이면 잠든 환자의 고른 숨소리도 들을 수 있다. 평온한 얼굴이다. 그러나 거기 깃든 황혼의 그림자를 못 본채 할 수는 없다. 절망. 그래도 신앙이 있으므로 기도의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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