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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18. 2024

[투병기] 갓 지은 따뜻한 밥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삼시 세끼 갓 지은 따뜻한 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지은 따뜻한 밥을 하루 세끼 온전히 먹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다. 

아내는 암 진단을 받기 몇 년 전부터 나를 훈련시켰다. 세탁기 돌리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등등 집안일을 시켰다. 특히 아침 식사는 내가 맡아서 하도록 하였다. 물론 아침 식사라고 해야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토스트를 굽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샐러드를 만들고…

돌이켜보면, 그런 일을 시킨 것이 혼자 남게 될 나를 미리 훈련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항암 치료 중이던 시기에 침대와 소파를 바꿨다. 나는 아직 멀쩡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왜 바꾸냐고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나도 결국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혼자 남게 될 나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 호스피스 병원 카운슬러는 여자들에게는 그런 직감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집안일을 시킨 것은 미리 나를 훈련시킨 것이며, 침대와 소파를 바꾼 것도 그런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무튼 그렇게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삼시 세끼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인다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었다. 암 치료에 효과가 있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서 정성을 다해 직접 식사를 준비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크게 호전되어 완치는 아니라고 하여도 최소한 병세의 호전은 기대해 볼 만하고, 그러면 좀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컸다.


“암 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실제 통원 하면서 항암주사를 맞을 때 병상에서 정성이 가득 담긴 것으로 보이는 도시락 같은 것을 먹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병실은 침상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나마 60을 전후한 ‘중년’이어서 그럭저럭 ‘이해할’ 수도 있다지만, 많아야 30대 중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환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병상 사이에는 가림막뿐이므로 옆의 젊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도 고스란히 다 들린다. 그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암에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도 많이 받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초기에는 볼 일도 보러 다니고, 여행도 다녔다. 그렇게 외출할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이 먹는 문제였다. 물론 일반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식사 시간을 조금 넘긴다든가 하면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그런 경우가 되면 허겁지겁 인근 식당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암 환자를 위한 식단을 소개하는 책이다. 내용이 괜찮은 것 같아서 일단 두어 권 사두었다. 육류, 생선, 야채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소개되어 있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외출 중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 개념의 음식이었다. 물론 ‘간식’으로 소개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을 도시락처럼 싸가지고 다녔다.

가장 애용했던 것은 단호박 찜이다. 간단하다.

단호박을 결 따라 5~6 등분한 다음 그 속에 호두 아몬드 밤 대추 등을 넣고 꿀을 뿌린 다음 찌는 것이다. 때로는 훈제 오리 고기를 넣기도 했다. 여러 가지 견과류가 들어가고 단호박에 꿀까지 곁들였으므로 달달하게 먹기도 좋다. 이것을 도시락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기력을 보충하곤 했다.

퇴원해서 집에 있는 동안 처음엔 식사가 꽤나 성가신 문제였다. 아주 초기에는 환자 자신이 요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사 둔 책의 내용과 유튜브 등 각종 채널을 검색해서 나름대로 ‘치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세가 깊어짐과 함께 음식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래봤자 시원찮은 남자 솜씨지만. 

그런 부족한 솜씨를 보완하는 것이 무엇일까? ‘정성’이다! 그것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삼시 세끼 모두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이는 것이다! 영양 돌솥밥을 짓기 위해 돌솥도 구입했다. 책과 인터넷을 통해 얻은 레시피를 총동원해서 매 끼마다 다른 메뉴로 열심히 준비를 했다.

다행히 아내는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특히 돌솥영양밥을 좋아했고, 거기에서 나오는 누룽지를 즐겨 먹었다. 

다행히 요즈음 유튜브나 각종 요리 채널에 나오는 레시피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기본적인 맛은 보장이 된다. 아니, 맛이 있다. 그래도 나름 애를 쓴 것은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 일이었다. 항암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표고버섯 같은 경우는 잘 아는 시골 농장에 가서 직접 구입해 왔고, 다른 식재료들도 나름대로는 각별히 신경을 썼다. 

매 끼 다른 메뉴를 준비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부들이 가족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도 절실히 느꼈다. 사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저 비슷한 식재료가 있으면 등급이 높은 것, 더 비싼 것을 사는 것으로 좋은 재료 고르기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는 것도 오래가지도 못했다. 입원하면 내가 따로 식사를 준비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병원 밥을 먹는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나중에는 식사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렇게 맛있게 먹어준 그 사람이 그립고 고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그것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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