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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Dec 07. 2024

[투병기] 피안의 세계에서 던진 눈빛

그윽하고 깊은 시선... 그것은 작별 인사였다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을 환자가 흡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좋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이 아마 가장 좋은 작별이 아닐까?


‘임종실’


참으로 가슴이 철렁하는 팻말이었다.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오니 모든 것이 생소하다. 그러니 마음마저 불편하다. 병동은 1개 층을 쓴다. 복도를 중심으로 한 쪽은 주로 다인실이고, 다른 쪽은 1~2인실이다. 그런 병실 중 하나에 ‘임종실’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그저 평범한 병실인데 비어 있다. 알고 보니 짐작했던 대로 이곳은 일반 병실에 있다가 때가 되면 옮겨와 임종을 맞는 곳이다. 임종 환자와 가족은 물론, 주변 다른 환자와 가족을 모두에 대한 배려로 이해되었다. 다만 1인실에 입원한 경우는 따로 임종실로 옮아갈 필요가 없다. 돌이켜보니 대학병원에도 병동에 이런 병실이 하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임종실’이란 팻말만 붙어있지 않았을 뿐.

호스피스 병동이므로 누군가 임종을 맞이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때를 위하여 이곳에 왔으니까. 어느 날 집에 들러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병원에 돌아오니 앞 병상이 비어 있다. 임종을 앞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었다. 목소리도 또렷했고, 화장실도 혼자 다닐 정도로 거동이 크게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던 분이 임종실로 옮겨 가신 것이다. 그분은 다음날 돌아가셨다. 그리고 임종실은 다시 비었다.

그렇게 누군가 임종실로 옮아가면 가슴이 철렁한다. 곧 닥칠 일이고, 그래서 남의 일 같지 않다. 병상 옆에서 아내의 잠든 얼굴을 보며 막막한 마음을 달래 본다. 이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상태가 될까? 

그냥 산을 오르고 싶었다. 열흘이고 한 달이고 백두대간 깊은 산맥을 끝없이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직 산만 바라보면서 걷고 또 걸으리라. 나는 의연할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테니까. 그리고 이미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형제 친구 등 죽음에 의한 이별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겪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보다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잘 견디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슬픔에 몸을 맡기리라…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6인실 복도 쪽이라 답답하다. 침대마다 커튼이 둘러쳐져 있어서 창밖을 내다볼 수도 없다. 나야 들락날락해서 괜찮지만, 침대에만 누워있는 환자는 종일 햇빛 한 번 보기 힘들다. 하루는 간호사와 함께 침대째 끌고 나와 로비에서 햇빛을 쪼였다. 

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되겠다 싶어 1인실로 옮기기로 했다. 하루 병실료가 큰 부담이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널찍해서 좋다. 일단 내 잠자리가 편해졌고, 화장실과 샤워실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다. 가족 친지들이 와도 여유 있게 머물면서 마음껏 떠들 수도 있다. 처형과 처제가 와서 세 자매가 같이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진작 옮기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주말. 아이들과 아내의 형제자매와 조카 몇 명이 다 모였다. 명절 분위기다. 환자도 컨디션이 너무 좋다. 침대 등받이를 세워 놓으니 편안하게 앉아 있다.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내는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눈길과 미소로 대화에 참여한다. 묻는 말에 고개를 약간 끄덕이거나 예쁜 미소로 답한다. 너무 즐거운 표정이다. 오랜만에 그런 모습을 보니, 마치 이제 병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병세가 더 호전되면,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존 기간을 훨씬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감마저 생길 정도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한나절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아내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따뜻한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이었다. 깊고 그윽한 눈빛이었다. 

문득 가슴이 저릿해 왔다. 그 눈빛. 그것은 피안의 세계에서 던지는 눈빛 같았다. 나는 퍼뜩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눈빛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러나 그것은 어떤 불길한 기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웠을 뿐이었다. 생의 경계를 넘어선, 초월한 세계의 아름다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감마저 감도는 그런 알 수 없는 시선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듯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이틀 후 그 사람은 눈을 감았다. 

그러니 이미 그때, 그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아니었을까? 그 강 너머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조카들을 향해 작별 인사를 담아 던진 눈빛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사랑이 담뿍 담긴 그윽한 시선, 그리고 그것을 내보낸 ‘피안의 깊은 눈동자’는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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