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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by 오분레터


집으로 돌아온 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어제까지 옹알이로 세상과 이야기하던 아이가 오늘은 혼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엄마의 손가락을 잡고 첫걸음을 떼려는 그 순간순간이 기쁨이었다. 아이의 눈빛은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거실 구석의 리모컨도, 창밖으로 보이는 비둘기도,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탐험의 대상이었다.

아이의 성장은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성장을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아내의 우울증과는 상관없이 아이는 계속해서 자라났고, 그 성장의 속도는 아내를 점점 더 깊은 그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기저귀를 가는 손길 하나하나, 아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되어갔다.

그 무렵 나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석 달쯤 되었다.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업무를 다시 붙잡느라 분주했다. 이메일은 쌓여갔고, 회의는 이어졌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적응하려 애쓰고, 조금씩 일의 감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다시 육아휴직을 한다는 건 솔직히 두려움이었다. 아내 곁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나는 흔들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타협안을 선택했다. 도우미를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오십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이모님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아이 셋을 키운 경험이 있는 분이라 손길이 능숙했다. 아이를 안아 올리는 자세도, 우유를 데우는 온도도, 빨래를 개는 손길도 모두 익숙해 보였다. 아이는 낯선 사람의 품에서도 곧잘 웃었다. 문제는 아내였다. 아내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침실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고 이모님이 말을 걸면 짧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무기력함이 타인에게 들키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걸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아무도 집에 안 왔으면 좋겠어…"

도우미 이모님이 오신 지 이틀째 되던 밤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그 목소리는 간신히 내 귀에 닿았다. 아내는 남들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을 자신은 하지 못한다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 그 질문이 아내를 매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는 때로 외부의 도움마저도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다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바로 위 파트장인 친한 형이 사무실 한쪽 회의실에서 나를 조용히 불렀다. 창밖으로는 겨울 햇살이 차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가족이 무조건 우선이긴 하지만… 승진에 영향이 있을 텐데. 괜찮겠어?"

형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진급은 멀어질 게 분명했다. 동기들은 벌써 앞서 나가고 있었고 나는 점점 뒤처지고 있었다. 커리어의 공백은 숫자로 평가될 것이고 그 숫자는 나를 뒤로 밀어낼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급이 아니었다. 아내의 미소, 아이의 웃음소리,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더 소중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가족이 우선이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네."

나는 형에게 말했다. 그 말에는 변명도 핑계도 없었다. 그저 진심이었다. 결국 복직 후 얼마되지 않아 두 번째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동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또 육아휴직이야?' 하는 눈빛들이 느껴졌다. 어떤 이는 부러워했고 어떤 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형광등 불빛 아래 책상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의 따뜻한 숨결이 닿는 곳이었다.

우리는 다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다시 찾은 그곳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던가. 하얀 벽과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차가운 의자와 묵직한 침묵만이 익숙한 곳이었다.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무음으로 뉴스가 흘러나왔고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 채 손톱을 뜯고 있었다.

아내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번호표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풍경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였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처방전을 내밀며 말씀하셨다.

"이전에 좋아졌던 경험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어요."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이미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내에게는 너무 무거운 것 같았다.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 오히려 나아지지 못한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아이는 계속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손으로 엄마의 뺨을 만지려 하고 품에 안기려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아이조차 힘겨워했다. 결국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나는 아이를 안아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이 차가운 겨울이 지나야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올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무거웠다. 차 안은 히터 바람으로 따뜻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아이는 카시트에서 잠들었고 아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모습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차창 밖 세상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동자는 텅 빈 들판처럼 고요했다.

저녁이 되어 아이를 재우고 나니 집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무릎을 껴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은 너무나 작아 보였다. 나는 옆에 앉아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어떤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아내의 체온이 조금씩 내 품으로 스며들었다.

매 순간이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의 봄을 기다리며 버틸 뿐이었다. 아내의 미소가 돌아올 때까지. 아이가 엄마 품에서 웃음 짓는 날이 올 때까지. 다시 찾아온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겨울은 언제나 끝이 있고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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